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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의 소강상태에서 국지성 호우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또 내일은 전국적으로 폭염이라고 하니 더욱 더 세심히 건강관리에 유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비와 무더위와 싸우는 이 여름을 현명하게 지혜롭게 또 건강제일로 승리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편안한 저녁·행복한 꿈자리 되세요. 감사합니다.
〈월월(月月) 일일(日日) - 이케다(池田) 선생님의 그때그때의 말씀〉
2024년 7월 23일
환희용약(歡喜踊躍)해 조석근행(朝夕勤行)에 임하자.
대우주(大宇宙)의 리듬에 합치(合致)해 생명(生命)의 왕자(王者)의 경애(境涯)로,
건강(健康)을 향하여, 화락(和樂)을 향하여, 행복(幸福)을 향하여!
※ 2022년 8월 6일자 「세이쿄신문(聖敎新聞)」 ‘어서(御書)와 미래(未來)로’에서
〈촌철(寸鐵)〉
2024년 7월 23일
“뒤늦게 후회(後悔)하지 않는 인생(人生)을” 마키구치(牧口) 선생님
명확(明確)한 목표(目標)와 실천(實踐)으로 충실(充實)한 매일을.
◇
미에(三重) 소생(蘇生)의 날.
불요불굴(不撓不屈)의 전진(前進)이 벗의 영예(榮譽)
맹세도 새롭게 사제의 길(道)을 당당히.
◇
“등(燈)은 기름을 부으면 빛을 더하고”(어서신판1897·전집1562)
꾸준한 광포(廣布)를 위한 헌신(獻身)이 무량(無量)의 복덕(福德)으로 빛난다.
◇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장이나 요구가 받아들여지도록) 부탁하는 행동 없이 자기완성은 없다.” 문호(文豪)
자, 인간혁명(人間革命)으로 불연(佛緣)을 확대
◇
차내(車內)에 아이 방치는 엄금(嚴禁).
여름은 에어컨 정지 15분 만에 위험 온도로.
생명을 지키는 행동을
〈명자(名字)의 언(言)〉
‘질문’은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계기
2024년 7월 23일
중·고등학교가 같은 친구와 오랜만에 만났다. 중학교 때의 그는 공부에 서툴렀고 성적도 부진(不振)했다. 수업 중에 매번 질문을 했지만. 내용이 초보적이어서 “저런 것까지 물어보냐”며 급우들은 질색했다.
하지만 몇 년간 학교생활을 함께 하는 가운데 (그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그가 여러 번 질문한 것은 실은 이해(理解)가 안 가는데, 이해가 된 듯이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그 자세는 향학심(向學心)의 표시였다. 재회(再會)한 그는 대학교수가 되어 있었다.
‘질문하는 것’과 관련해 생각나는 어문(御文)이 있다. 묘호니(妙法尼)가 중병(重病)에 걸린 남편을 대신해,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께 여쭌 “제목(題目)을 부르는 것만으로 부처가 될 수 있습니까?”(어서신판2098·전집1402, 취의)라는 질문이다. 남편은 창제(唱題)하는 것만으로도 한계였을 것이다. 대성인은 신심(信心)에 대해 질문한 것을 칭찬하시며 반드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답하셨다.
법화경(法華經)에 설해진 ‘육난구이(六難九易)’. 부처의 멸후(滅後)에 법화경을 수지(受持)하고 홍통(弘通)하는 것의 어려움을, 6가지의 어려운 것, 9가지의 쉬운 것의 대비(對比)로 나타낸 것인데, 그 난사(難事) 중의 하나는 “법화경을 청수(聽受)하고 그 의미를 질문(質問)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에 있어도 질문하는 행동(行動)에는, 진의(眞意)를 알고 싶다고 하는 순수(純粹)한 생각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可能性)을 여는 계기(契機)가 된다. (白)
[용어해설(用語解說)]
육난구이(六難九易)
부처의 멸후(滅後)에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고 홍통(弘通)하는 것의 어려움을 여섯 가지 어려운 것(육난)과 아홉 가지 쉬운 것(구이)을 대비(對比)로 나타낸 것이다. 「법화경견보탑품(法華經見寶塔品) 제11」에 설해져 있다.(법화경 390쪽 이하) 무릇 불가능한 구이(九易)조차 육난(六難)에 비하면 수월하다고 설한 뒤 석존(釋尊)은 멸후(滅後)의 법화경의 홍통을 촉구했다.
육난(六難)이란 ❶광설차경난(廣說此經難, 악세 속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것) ❷서지차경난(書持此經難, 법화경을 쓰고 다른 사람에게도 쓰게 하는 것) ❸잠독차경난(暫讀此經難, 악세 속에서 잠시나마 법화경을 읽는 것) ❹소설차경난(少說此經難,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법화경을 설하는 것) ❺청수차경난〈聽受此經難, 법화경을 청수하고 그 의취(義趣)를 질문하는 것〉 ❻수지차경난(受持此經難, 부처가 입멸한 후 법화경을 수지하는 것)
구이(九易)란 ①여경설법이〈余經說法易, 법화경 이외의 무수(無數)한 경(經)을 설하는 것〉 ②수미척치이〈須弥擲置易, 수미산(須彌山)을 떠서 타방(他方)의 무수한 불국토에 던지는 것〉 ③세계족척이〈世界足擲易, 발가락으로 대천세계(大千世界)를 움직여 먼 타국에 던져버리는 것〉 ④유정설법이〈有頂說法易, 유정천(有頂天)에 서서 무량(無量)의 여경(余經)을 설법하는 것〉 ⑤파공유행이〈把空遊行易, 손으로 허공(虛空)·대공(大空)을 잡고 유행(遊行)하는 것〉 ⑥족지승천이(足地昇天易, 대지를 발등 위에 놓고 범천에 오르는 것) ⑦대화불소이〈大火不燒易, 고초(枯草, 마른 풀)를 짊어지고 큰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 것〉 ⑧광설득통이〈廣說得通易, 팔만사천의 법문(法門)을 연설(演說)하여 청자(聽者)가 6가지의 신통(六神通)을 얻게 하는 것〉 ⑨대중나한이〈大衆羅漢易, 무량(無量)의 중생(衆生)에게 아라한(阿羅漢)의 지위를 득하게 하고 6가지의 신통(六神通)을 갖추게 하는 것〉
【입종(立宗)시의 서원(誓願)과 육난구이(六難九易)】
「개목초(開目抄)」에는 입종(立宗)을 단행(斷行)하실 당시,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께서는 육난구이를 배독하시며 “성불을 구(求)하는 강한 마음을 일으켜 퇴전하지 않겠다고 서원한 것이다.”(어서 200쪽, 통해)라고 밝히셨다. 대성인께서는 입종선언(立宗宣言)에 앞서 사람들을 속이고 진실한 가르침인 법화경에 대한 믿음(信)을 깨뜨려 불행(不幸)하게 만들고 있는 원흉(元凶)이 제종(諸宗)의 악승(惡僧)·악지식(惡知識)임을 오직 홀로 알고 계셨다. 그리고 그것을 한마디라도 말하면 반드시 대난(大難)을 당하고, 말하지 않으면 무자비(無慈悲)여서 다음 생에 반드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진다고 갈등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퇴(不退)의 서원(誓願)을 세우고 법화경을 홍통하자는 결정을 내리는 근거가 된 것이 육난구이였다고 말씀하셨다.
【부처 자신이 세운 교판(敎判)인 육난구이(六難九易)를 신독(身讀)】
또한 「개목초」(어서 218쪽 이하)에서는 제종이 각기 근거로 삼는 경전(經典)에 자신이 제일이라고 기술되어 있어도, ‘이금당(已今當)’이나 육난구이(六難九易)와 같이 부처 자신이 판정(判定)한 가르침의 천심(淺深)을 모르면 거기에 설법되어 있는 법리(法理)의 천심에 헤매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현실에서 육난구이를 분별하여 법화경을 인난홍통(忍難弘通)하고 있는 어자신(御自身)에 대해 “금세에 일본국에서 제일 부자는 니치렌(日蓮)이다.”(어서 232쪽, 통해)라고 선언(宣言)하시고 “법화경의 육난구역을 터득하면 일체경을 읽지 않아도 니치렌에게 따르게 되는 것이다.”(어서 232쪽, 통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얕음은 쉽고 깊음은 어렵다 / 이금당(已今當)
수지(受持)
정법(正法)을 믿고 마음에 받아들여, 잊지 않고 가지는 것. 수지(受持)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❶ 「법화경법사품(法華經法師品) 제10」에 설해진 오종(五種)의 묘행(妙行)의 하나로서의 수지(受持)를 ‘별체(別體)의 수지(受持)’라고 한다.
❷ 이에 비해 오종의 묘행을 모두 포함하여 널리 정법을 신수(信受)하고 호지(護持)하는 것을 ‘총체(總體)의 수지’라고 한다.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께서는 ‘총체의 수지’를 중시하여 수지즉관심(受持卽觀心)의 법문(法門)을 설하셨다.
▷ 오종(五種)의 묘행(妙行) / 수지즉관심(受持卽觀心)
月々日々に――池田先生の折々の言葉
2024年7月23日
歓喜踊躍して朝夕の勤行に臨もう。
大宇宙のリズムに合致し、生命の王者の境涯で、健康へ和楽へ幸福へ!
※2022年8月6日付聖教新聞「御書と未来へ」を基にしています。
寸鉄
2024年7月23日
「後になって悔いのない人生を」牧口先生。
明確な目標と実践で充実の日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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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重蘇生の日。
不撓不屈の前進が友の誉れ。
誓い新たに師弟の道を堂々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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灯は油をさせば光を増し―御書(新1897・全1562)。
地道な広布への献身が無量の福徳と輝く
◇
人々への働きかけなしに自己完成はない―文豪。
さあ人間革命へ仏縁拡大
◇
車内に子の放置は厳禁。
夏は空調停止15分で危険温度に。
生命守る行動を
名字の言
「質問」は新たな可能性を開く契機
2024年7月23日
中学、高校が同じ友人と久々に会った。中学時代の彼は勉強が苦手で成績も振るわなかった。授業中、毎回質問をしたが内容が初歩的で“そんなことまで聞くのか”と級友は閉口していた▼だが数年間、学校生活を共にする中で見方が変わった。彼が何度も質問したのは、本当は理解できていないのに、分かったつもりでやり過ご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からだ。つまり、あの姿勢は向学心の表れだった。再会した彼は大学教授になっていた▼「質問する」ことに関して、思い出す御文がある。妙法尼が重い病の夫に代わって、日蓮大聖人に尋ねた“題目を唱えるだけで仏になれますか”(新2098・全1402、趣意)との問いだ。夫は唱題するだけで精いっぱいだったのだろう。大聖人は信心について質問したことを称賛され、必ず仏になれると答えられた▼法華経に説かれる「六難九易」。仏の滅後に法華経を受持し弘通することの難しさを、六つの難しいこと、九つの易しいことの対比で示したものだが、その難事の一つは“法華経を聴受してその意味を質問する”ことである▼何事においても質問するという行動には、真意を分かりたいとの純粋な思いがある。それは自らの新たな可能性を開く契機となる。(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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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항상 노고많으셨습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