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일이 있어도 꼭 해야 할 일을 사명(使命)이라 말합니다.
죽는 일이 있어도 꼭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을 사역(使役, ministry)이라 하고요.
직장에서 월급 받으며 일하는 것과 다릅니다.
나는 설교하는 걸 사역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어도 강대상에서 죽고 싶습니다.
예배의 중요성을 압니다. 예배시간을 목숨같이 지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드리는 정규예배를 빼먹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준 거룩한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합니다.
사명자는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눈치보는 것도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명자입니다.
또 하나의 사명이 있습니다.
무료급식입니다.
나에게 무료급식은 목숨과도 같습니다.
분신과도 같아서 죽을 때까지 붙잡을 각오가 돼있습니다.
세계적으로 펜데믹이 일어났습니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 등 전 세계에 전염병이 휘몰아쳤을 때 많은 급식소가 문을 닫았습니다.
정부 방침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우리도 행정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많이 고뇌했고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습니다.
결코 쉽게 결정내릴 수 없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아무리 역병이 창궐했어도 당장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해야 했기에 마냥 손 놓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가 어려웠을 때 무료급식은 늘 있어왔습니다.
드디어 우리만의 해법을 찾았습니다.
정부시책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에서 전열을 가다듬었습니다.
처음에는 컵라면과 빵을 나눠줬고, 점차 도시락을 만들어 끼니를 해결해줬습니다.
취약계층에게 우리 급식소는 생명줄과도 같았습니다.
이때 많은 후원자가 힘을 보탰습니다.
전국에서 관심과 사랑이 모여들었습니다. 대단했었습니다.
이때 후원자들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자부심 한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힘들었어도 급식소 문을 닫지 않았다는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만나무료급식소는 어떠한 역경과 고난이 오더라도 사명을 감당할 자세가 돼있습니다.
묵묵함과 끈기, 투지가 우리의 강점이 됐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오늘날의 만나무료급식소가 된 게 아닙니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16강에서 이탈리아를 만났습니다.
선수교체로 차두리가 나와 맹활약을 했습니다.
윙백수비수로 피지컬이 유럽선수보다 좋았고 공보다 빨랐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오버헤드 킥을 날렸고 아깝게 골키퍼에 의해 막혔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슛팅에 온 국민이 깜짝 놀랐습니다.
만약 이게 들어갔다면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등극했을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쇄도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은퇴하던 날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린 나이에 골을 넣어 갑자기 대스타가 됐다면 지금쯤 거만해진 자신 때문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지 모른다. 골이 안 들어갔기에 겸손을 알았고 지금껏 롱런할 수 있었다”라고.
벼락 졸부가 되기보다는 하루하루 천천히 가는 게 으뜸임을 깨닫습니다.
수원시에서 생선장사를 하는 사장님이 고등어를 후원했습니다.
미리 짜 논 메뉴 때문에 고등어 요리를 곧바로 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고등어는 어떠셨나요? 요리해서 잘 대접했나요?”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네, 잘 대접했습니다. 후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임기응변으로 거짓말 할까?
아니면 정직하게 “아직 요리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할까?
결국 정직하게 말했습니다.
정직함은 우리의 무기가 됩니다.
믿어주는 만큼 더 정직하고 더 깨끗한 급식소가 되겠습니다.
더 성실한 만나무료급식소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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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손아동에게 후원한 황나임, 황서하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동에게 필요한 것을 주문했고, 돌아오는 주일에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