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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1
이스마엘,에서,요셉을 총리로 세운 애굽의 바로,느부갓네살은 구원받지 못한 버림받은 자들로 치부 당하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상당히 많다.
#20210311
#거짓말
성경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강박중 하나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는것 때문에 이런 경우조차도 정죄 하거나 모르겠다고 유보하는 것이다.그렇다면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과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적질하지 말라는 등의 계명이 상충할 경우에는 어찌할 것인가?나의 거짓말이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적질을 막는것과,나의 정직이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적질을 하게 한다면 어찌하는것이 옳은가?
#신명기 #Deuteronomy 7:12-16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신 28:1-14)
12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지키면 복을 주시겠다는 조건부로 명령을 하시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스스로의 능력과 의지로 여호와의 율법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당신의 영으로써 은밀하게 역사하셔서 부드러운 심령을 가지게 해주셔야만 율범을 순종할 수가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여호와께서 은혜와 복을 베푸시기로 작정하신 성도들에게는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심령을 주시고 성도들은 그렇게 감화되고 감동된 심령으로써 자원하여 순종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자들은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이라 해도 성령으로 자기들의 심령이 감화되지 못했으므로 자기들의 부패하고 패역하며 완악한 심령과 의지대로 여호와의 율법을 무시하다가 저주와 멸망의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이것을 또 꼬투리 잡아서 그렇다면 저주를 당하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버리셨기 때문이 아니냐며 저들의 죄책의 원인을 감히 하나님께 돌리기두 하는데 그런 자들과는 괜히 쓸데없고 무익한 논쟁에 휩쓸리기보다는 주께서 저들을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관두는 것이 낫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다루실 때는 아직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지 않으셨으므로 어린 자녀를 훈육할 때 이것 하면 저것 해줄게 하듯이 행위부터 가르치시고 강조하신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이루신 후에는 믿는 자들에게 직접 보혜사 성령을 주시므로 장성한 자를 가르치듯이 행위에 대한 원리를 내면에서부터 일깨우심으로써 우리로 성령으로 변화된 선한 의지를 가지고 선을 행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도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라도 율법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보다도 크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구악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고 풍성하게 주어졌으므로 그 복음에 대한 책임도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여호와께서 순종에 대해 직접적이고 현세적인 복을 약속하셨다면 지금의 우리에게는 순종의 모습뿐만 아니라 의도까지도 선해야 하며 순종에 대한 직접적이고 현세적인 대가보다는 장차 우리에게 주실 영원하고 내세적인 기업을 믿고 바라고 소망할 것을 요구하신다.
여호와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장 먼저 적용해야 할 대상은 어떤 외부의 무언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영혼이다. 성령께서 내주하시기 전까지는 내 영혼이 마치 가나안을 차지한 가나안 일곱 족속들처럼 사탄에게 전적으로 점령당하고 있었다가 하나님 아버지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 덕분에 그리스도인으로 새롭게 되었으므로 이제부터는 내 영혼을 사탄의 지배로부터 빼앗아 성령께서 지배하시도록 점령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13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14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훨씬 더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의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15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사 너희가 아는 애굽의 악질에 걸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걸리게 하실 것이라
이스라엘은 조상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받은 언약 덕분에 율법 준행을 조건으로 한시적이고 직접적이며 현세적인 복을 약속 받는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과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원불변한 맹세와 언약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모든 구속 사역으로 인해 영원무궁하고 내세적인 복을 약속 받는다. 율법을 준행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부와 건강을 누리게 되나 복음을 누리는 우리는 현세에서 부유하지 못하고 질고에 시달리더라도 우리 영혼이 마치 땅의 풍성한 소산물과 가축의 생육이 번성하고 육체가 질병없이 건강하듯이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고 순전하게 맺게 되어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땅의 소산물과 가축의 번성함과 육체의 건강 정도에 따라 자기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었으나 우리는 우리 영혼이 성경과 성령으로 얼마나 신령한 소산물들을 풍성하게 맺으며 건강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지고 신앙을 판단할 수 있다.
신자라 하나 진정으로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마귀를 받은 자들은 겉으로는 예수와 복음과 성령을 부르짖어도 영혼으로는 전혀 변화되지 않고 도리어 전보다 더 악하여져서 자기 영혼에 복음이라는 극상품 참 포도나무를 심어도 먹지 못할 들포도를 맺고 극상품 향유와도 같은 복음에 파리와도 같은 자의식을 떨어뜨려 감람유만도 못하게 만들며 돌팔이 의사들에게 치료 받다가 증세만 악화된 혈루병 여인처럼 세속적인 이념에만 전전하다가 자기 영혼의 상태만 더욱 악화시키게 된다. 그래서 그런 거짓 선지자들과 신자들은 성경의 인물들이 부귀영화를 누렸으니 이 땅의 교회와 신자들도 마땅히 현세적인 부유함과 건강을 누려야 하며 그런 것들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은 저주 받은 자라고 정죄하기도 한다. 그런 자들은 이 땅의 복을 받으려면 세상과 교회를 철저히 분리해서 오로지 교회에만 충성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하여 교인들의 재산과 시간을 갈취한다. 거짓된 자들은 이 땅에 속하지 않은 신령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뤄지는 것처럼 호도하여 가치중립적인 특정한 정치 경제 체제를 절대 선으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교회 내에 존재하는 그런 거짓된 자들에게서는 보편적 상식과 이웃 사랑과 선악을 판단하는 지성을 찾아볼 수 없고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 하며 주위에 해를 끼치건 말건 상관없이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행동함으로써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훼손시킨다. 이것이야말로 거짓된 자들의 영혼이 심각한 나병에 걸렸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증거들이다.
1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넘겨주신 모든 민족을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고 진멸하며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
성령을 받은 우리는 가나안 족속을 불쌍히 여기지 말고 하나도 남김없이 철저히 진멸해야 된다는 여호와의 명령을 우리 영혼을 점령하고 있는 수많은 죄악들에게 행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가나안 모든 족속들을 이스라엘에게 밥으로 넘겨 주셨듯이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영혼에 잠식해 있는 모든 죄악들을 우리에게 밥으로 넘겨 주셨으므로 우리는 마땅히 그 변하지 않는 언약을 믿고 영혼에 뿌리박힌 죄악들과 싸워 진멸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험난한 영적 전투를 치르고 반드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철저하게 무장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성령의 소욕으로 육체의 소욕을 제압하는데 소홀하면 그 육체의 소욕에 반격을 당하고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20200311
#창세기 #Genesis 제 48 장
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축복하다
1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2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요셉에게 아버지 야곱의 위독함을 알린 어떤 사람과, 야곱에게 요셉과 두 아들이 온 것을 알린 어떤 사람은 왕궁 신하거나 요셉의 청지기거나 기타 요셉이나 야곱이 아는 평범한 지인은 아닌 듯 하다. 왜냐하면 당시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서 바로 다음의 2인자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애굽 전역에서는 자기보다 높은 사람은 바로 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야곱은 그런 요셉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애굽 사람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극진히 존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야곱의 일행들은 애굽 사람과 떨어져서 고센 땅에 머물렀으므로 그 고센에서는 야곱보다 높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어떤 사람은 마치 요셉과 야곱을 자기보다 아래로 보는 듯하게 상황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요셉에게 무언가를 얘기하려면 아무때나 찾아갈 수는 없고 약속을 잡던가 해야 했을 것이다. 또핮 병상에 있는 야곱에게는 병수발을 드는 하인이나 가족들이 이런저런 특이사항을 얘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어떤 사람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홀연히 그들에게 나타나서 각자의 상황을 전한 것 같다. 또한 아버지가 위독하다면 비단 요셉뿐만 아니라 야곱의 모든 아들들이 그 소식을 전달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야곱이 위독하다는 소식은 오로지 요셉만 들었다. 이런 정항들로 추정해보면 이 어떤 사람은 동일인물인 것 같고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어떤 신령한 존재인 것 같다. 그래서 아마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거나 천사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가족의 임종을 지켜보는 것은 분명 가슴아픈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종 시 유언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누구나 그렇듯이 임종을 앞둔 유언에는 일말의 거짓이나 위선이 없이 오로지 진실만이 담겨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의의 사고로 인해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게 된다거나 의식불명으로 의사소통이 불가하여 죽을 때까지 어떤 말도 전할 수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3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복은 맨처음 아담에게 주어졌고 홍수 심판 이후 노아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이 명령이 이제 야곱에게도 주어졌으므로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의 후손들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당신의 구속사역을 행하셔서 죄인들에게 새 생명을 주실 것임을 의미한다.
5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6 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기 손자가 아니라 아들로 삼은 것은 그들이 나중에 각각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될 것을 바라보고 예언한 것 같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이후에 레위 지파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전담하여 가나안 분깃에서 제외되고 요셉 지파가 그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로 분할 되어 총 열두 지파를 이루게 된다.
7 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라헬이 장사 된 곳은 에브랏 곧 베들레헴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곳이다. 그래서 헤롯은 동방의 박사들의 이야기를 듣고서 유대인 학자들에게 메시야가 태어날 장소를 확인한 뒤, 베들레헴 지역의 두 살 아래 남자아이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다. 이러한 헤롯의 만행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라고 한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마태는 기록한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베들레헴에 묻힌 라헬이 평생동안 단 두 명의 아들 밖에 없었던 것과 헤롯에게 죽임당한 아이의 어머니들을 동일시하여 어린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을 라헬의 통곡으로 빗댄 것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처절한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직장에서 작업 중 사고로 감전사를 당한 아들의 새카맣게 탄 시신을 본 70대 할머니를 장정 소방대원 세 명이 저지하지 못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어린 자식을 잃은 어떤 어머니는 그 울부짖음이 과연 사람이 우는건지 짐승이 우는건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울음소리가 한 두 명이 아니라 수 백 수 천의 부모들에게서 들린다고 상상해보라. 주위 사람들조차도 뭐라 말할 수 없는 통분함을 느끼게 하는 이 라헬의 대성통곡을 우리는 바로 4년 전에 듣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해운회사의 안전불감증과 당시 박근혜 정권의 고의적인 구조 방해 등으로 300여 명의 고등학생들과 젊은 교사들이 물 속으로 가라앉아야만 했다. 그리고 당시 박근혜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과 그 지지자들은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빨갱이, 시체팔이 등의 막말을 퍼부으며 부모들의 단식투쟁 앞에서 폭식투쟁을 하는 등의 패륜 행위를 일삼기도 하였다. 부디 하나님께서 세월호 라헬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반드시 공의로 갚아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8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
9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10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11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도다
12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야곱과 요셉은 마주보고 있으므로 요셉은 장자 므낫세가 야곱의 오른손으로, 차자 에브라임이 야곱의 왼손으로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므낫세를 자기 왼편에, 에브라임을 자기 오른편에 세워 아들들의 손을 잡고 아버지 야곱에게 나아간다. 그러자 야곱은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알았는지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주기 위해서 오른손과 왼손을 교차해서 요셉의 두 아들의 머리 위에 얹는다. 이를 본 요셉은 혹시나 아버지 야곱이 눈이 보이지 않아서 착각을 하신 것이 아닌가 싶어 야곱의 교차된 두 팔을 풀어 원래대로 놓으려 한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 눈이 보이지 않아도 누가 므낫세이고 에브라임인지 알고 있다며 바꾸어 축복을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요셉은 이에 순종하여 받아들인다. 요셉의 두 아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축복은 비단 개인적인 것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실 예언의 성취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축복은 오늘날 자녀를 둔 부모나 집안의 어른 또는 교회의 중직자들이 모범을 삼을 필요가 있다. 형보다 아우를 높이는 것을 본받자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과 손주들과 교회의 젊고 어린 자들을 위해 축복을 할 때 그저 이 땅에서 형통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복을 누릴 수 있도록 그 신앙이 사라지지 않고 날마다 새로워지도록 축복하는 것이 일상화 되기를 소망한다.
여기서 야곱이 장자 므낫세보다 차자 에브라임을 더 앞세웠다고 해서 이를 보편적 원리로 삼아서는 안된다. 도리어 요셉처럼 통상적인 혈육의 순서를 존중하는 것을 지키는 것이 성경적인 것이다. 장자의 권위를 뒤바꾸는 것이나 사사 드보라처럼 여자 선지자를 세우는 것 등 통상적인 순서와 원리를 역행하는 성경의 예화들은 우리로 본받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주권이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것이다. 이는 비단 이런 예화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각자가 속한 국가와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도 통상적이고 상식적인 법과 규범들을 지켜야 함을 알아야 한다. 그 정부나 사회의 질서를 완전히 뒤바꾸거나 전복하는 것은 신자들의 역할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일이다. 따라서 교회와 신자들은 신앙의 자유를 빌미로 사회법을 어겨서는 안되며 도리어 남들보다 더 투명하고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불법적이고 꼼수인 방식을 하나님의 은혜로 포장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사탄의 달콤한 미끼인 것이다. 설령 어떤 정책이 그리스도교 가치에 위배된다 하더라도 이를 철회하려는 목적으로 교회와 기독교 이름을 내세워 세력을 모으는 집단 투쟁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이다. 그런 비성경적인 정책이 가급적 철회되도록 교회별 또는 신자 개인별로 기도하되 철회되지 않는다면 각자의 방식으로 손해를 감수하고 저항하는 것이 참된 방식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교회와 신자들이 복음에 기반한 선행으로써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