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 가운데 껍질을 벗는 아픔을 겪는 종류가 있습니다. 사람의 키가 커지고 몸무게가 늘듯이 나무도 두께도 키도 성장하기 마련입니다. 일반적인 나무들은 그냥 키가 자라고 줄기도 굵어집니다. 하지만 껍질을 벗는 나무들은 줄기에서 구각(옛 껍질)을 벗는 행위를 합니다. 자 이제 줄기가 커지고 있어요하는 표시입니다. 자기의 껍질을 벗겨내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구각을 벗는 나무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배롱나무와 모과나무 그리고 노각나무입니다.
먼저 배롱나무입니다. 배롱나무는 겉껍질이 없습니다. 그래서 줄기가 맨들맨들합니다. 그런데 줄기가 성장을 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껍질을 벗어냅니다. 그 껍질을 벗겨낼 때의 아픔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렇지만 낡은 껍질을 벗어내지 못하면 성장과 혁신은 불가능합니다. 힘들지만 일년에 한 번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배롱나무는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생존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릅니다.
모과나무입니다. 모과나무도 구각벗기를 합니다. 이렇게 구각을 벗어야 한단계 성장이 가능합니다. 예전 줄기보다 훨씬 선명한 모습의 모과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벗겨진 줄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모과나무 자체의 모습을 되찾게 됩니다. 구각을 벗기 전에 비해 나무도 커지고 모습도 더욱 늠름해집니다.
노각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노각나무도 구각 탈피를 이루는 대표적인 나무입니다. 노각나무는 녹각나무에서 변형된 이름입니다. 녹각 (鹿 사슴 녹/ 角 뿔 각) 그러니까 사슴의 뿔이라는 의미입니다. 녹각나무라고 하다가 노각나무가 되었다고 합니다. 나무 줄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로 이 노각나무입니다. 나무의 줄기가 비단을 수놓은 것 같다고해서 금수목(錦樹木) 또는 비단나무라고 합니다. 노각나무는 차나무과의 교목입니다. 차나무과에는 차나무와 동백나무 그리고 이 노각나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껍질을 벗는 대표적인 나무는 바로 플라타너스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유럽지역에서는 중요한 거리에는 반드시 플라타너스가 존재합니다.
구각을 벗는다는 것은 힘든 과정이지만 꼭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입니다. 구각을 벗지않고 그대로 존재하면 아마도 나무는 고사하고 말 것입니다. 인간사도 그리고 조직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오래된 관습이나 현실에 맞지 않는 형식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혁신이자 자기 성장의 기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다지 유쾌하지도 즐겁지도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추운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으며 내복을 벗을 때 느끼는 그 뭔가 허전하고 추운 기분 다시말해 피부가 느끼는 그 애매한 불편함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내복을 벗지못하면 제대로 된 봄을 맞을 수 없습니다. 조금 불편해도 과감하게 구각 즉 오래된 껍질을 벗어내야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구각은 벗을 때 다소 힘듬은 있지만 아주 조금만 인내하면 더욱 멋지고 근사한 시간을 만들어냅니다. 인간사와 조직사에서 개혁과 혁신이 필요할 때 언급되는 것이 바로 이 구각을 벗는다 아니겠습니까.
2024년 6월 7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