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청직공도(皇清職貢圖) 조선국(朝鮮國) 中
朝鮮古營州外域週封箕子
於此漢末扶餘人高姓據其地改國號高句驪亦稱高麗
唐李勣徵之高氏遂滅至五代時有王建者自稱高麗王
歴唐至元屢服屢叛明洪武中李成桂自立為王遣使請改國號為朝鮮
本朝崇徳元年太宗文皇帝親征克之其國王李倧出降封為朝鮮國王賜龟紐金印
自是朝鮮遂服慶賀大典俱行貢獻禮
其國分八道四十一郡三十三府三十八州七十縣
王及官屬俱仍唐人冠服
俗知文字喜讀書飲食以籩豆
官吏嫻威儀婦人裙襦加襈公會衣服皆錦繡金銀為飾
朝鮮國民人俗呼為高麗棒子
戴黑白氊帽衣袴則皆以白佈為之
民婦辮髪盤頂衣用青藍色外係長裙布襪花履
崇釋信鬼勤於力作
조선(朝鮮)은 옛 영주(營州)의 외역(外域)을 주(週)가 기자(箕子)에게 봉(封)하였다.
이에 한(漢)의 말엽(末)에 부여인(扶餘人) 고씨(高) 성(姓)이 그 땅에 근거(據)하여
국호(國號)를 고구려(高句驪)라 개(改/고침)하였는데 또한 칭(稱)하길 고려(高麗)라 하였다.
당(唐)의 이적(李勣)이 징(徵/징계懲戒)하여 고씨(高氏)를 드디어 멸(滅)하였는데,
오대(五代) 때에 이르러 왕건(王建)이란 자가 있어 고려왕(高麗王)이라 자칭(自稱)하였다.
당(唐)을 지나 원(元)에 이르기까지 누차(屢) 신복(服)하고 누차(屢) 반(叛)하였다.
명(明) 홍무(洪武/명 1대 황제 태조의 #1연호) 중(中)에 이성계(李成桂)가 스스로 왕(王)에 올라
견사(遣使/사신을 보냄)하여 다시 국호(國號)를 조선(朝鮮)이라 청(請)하였다.
본조(本朝/청나라) 숭덕(崇徳/청 2대 황제 태종의 #2연호) 원년(元年/1636년)에
태종(太宗) 문황제(文皇帝)께서 친정(親征)하시어 극(克/함락함, 승리함)하시니,
그 국왕(國王) 이종(李倧)이 출항(出降/항복하여 나옴)하였고,
(태종께서) 조선국왕(朝鮮國王)으로 봉(封)하고
귀뉴(龜紐/손잡이 부분에 거북의 모양을 새긴 도장)와 금인(金印)을 하사(賜)하시었다.
이로부터 조선(朝鮮)이 마침내 신복(服)하여,
경하(慶賀/축하)하는 대전(大典/나라의 큰 의식)를 구행(俱行/구비하여 행함)하고 공헌(貢獻/조공)의 예(禮)를 하였다.
그 나라는 8도(道) 41군(郡) 33부(府) 38주(州) 70현(縣)으로 나눈다.
왕(王)과 더불어 관속(官屬)이 당인(唐人)의 관복(冠服)을 구잉(俱仍/따르고 갖춤)한다.
풍속(俗)은 문자(文字)를 알아 독서(讀書)를 즐겨 하며 변두(籩豆/그릇 종류)로써 음식(飲食/먹고 마심)한다.
관리(官吏)는 위의(威儀/예법에 맞는 몸가짐)하게 한(嫻/우아함, 단아함)하며,
부인(婦人)은 군유(裙襦/치마저고리)를 가선(加襈/소매 끝, 섶, 깃 등에 다른 빛깔의 옷감으로 두르는 것)하는데,
공회(公會/공식적인 모임)의 의복(衣服)은 대개 금수(錦繡/수를 놓은 비단)와 금은(金銀)으로 꾸민다.
조선국(朝鮮國)의 민인(民人/백성)는 풍속(俗)이
머리 위에 올려놓은 흑백(黑白)의 전모(氊帽/두건, 삿갓)와 의고(衣袴/윗옷과 바지)가 곧 모두 백포(白佈/하얀 베)로 만드니,
(중국인이) 고려봉자(高麗棒子/고려 몽둥이)라 호칭(呼)한다.
민부(民婦/백성의 부인)는 변발반정(辮髪盤頂/머리를 땋아 정수리에 쟁반처럼 얹어놓음)하며,
옷은 청남색(青藍色)을 사용하여 밖으로 긴 군포(裙布/베로 만든 치마, 무명치마)를 묶고,
버선(襪)과 화리(花履/꽃신)를 신는다.
숭석(崇釋/불교를 숭상함)하고 신귀(信鬼/귀신을 믿음)하며,
역작(力作/온 힘을 기울여 짓거나 만듦)에 근면(勤/부지런함)한다.
첫댓글 가오리빵즈가 여기서도 언급되는군요.....
22
말이 좀 복잡하지만 내용을 보니
우리 민족이 수천년 동안 자존을 세우다가 조선 인조때 굴북하고 중국의 신하가 되었다는 말이네요.
태종(太宗) 문황제(文皇帝)께서 친정(親征)하시어 극(克/함락함, 승리함)하시니,
그 국왕(國王) 이종(李倧)이 출항(出降/항복하여 나옴)하였고,
(태종께서) 조선국왕(朝鮮國王)으로 봉(封)하고
귀뉴(龜紐/손잡이 부분에 거북의 모양을 새긴 도장)와 금인(金印)을 하사(賜)하시었다.
이로부터 조선(朝鮮)이 마침내 신복(服)하여,
경하(慶賀/축하)하는 대전(大典/나라의 큰 의식)를 구행(俱行/구비하여 행함)하고 공헌(貢獻/조공)의 예(禮)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