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니샤드 사상에 관한 의문과 의의
2022101245 철학과 오지효
우파니샤드 문헌이 성립하게 된 배경은 왕족의 증가와 영토 확장에 의한 왕권의 신장으로 바라문 중심의 계급 사회에 변화가 생기고 브라흐마나 시대의 제사 만능주의에 대한 반발로 인간의 내면적 사색을 기본으로 한 진리와 해탈을 추구하는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우파니샤드의 사상 중 나는 범아일여 사상과 오화 이도설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는데 교재를 읽는 동안 범아일여 사상이 성립되고, 이를 지나치게 중시한 나머지 결국 우파니샤드 문헌이 성립하게 된 이유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우파니샤드 사상이 귀결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말하기에 앞서 범아일여 사상과 오화 이도설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하고자 한다. 범아일여 사상이란 ‘브라흐만과 아트만은 일치한다.’를 주장하는 사상으로 아트만을 자아, 그리고 만물에 내재하는 영묘한 힘인 본체로 상정한다. 이렇게 개인의 본체인 ‘아트만’과 최고 실재인 ‘브라흐만’이 동일하게 되는 것이다. 둘 모두 이름과 형태를 초월하였고, 언어로 표현이 불가하며 오로지 직관으로만 체험이 가능, 양자가 우주의 통일적 원리이므로 그 본질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범아일여 사상은 우리의 존재 근저에 있는 본래의 아트만이 바로 절대자 브라흐만이고, 결국 “절대자는 자기 자신에 불과하다.”고 해석된다. 다음으로 오화 이도설이란 우파니샤드의 조직적인 윤회설 중 하나이다. 이도설은 神道와 祖道를 설정하여, 죽은 자가 생전에 ‘오화의 가르침을 알고 경건하게 진리를 명상’하였다면 죽은 뒤 선조의 신령 푸루사의 인도를 받아 브라흐만에게 가서 다시는 지상으로 돌아오지 않게 되고, 죽은 자가 ‘집에서 제사·보시·선행’을 하였다면 선업의 응보를 받아 향락을 즐긴 뒤 그 업이 다했을 때 오화하여 다시 여자의 모태에 들어가 재생하게 된다. 이와 같이 오화 이도설이란 생전의 행위에 대한 응보로 인하여 그 행위에 따라 윤회하게 되는 것으로 이 윤회의 원동력은 자신의 업이다. 이러한 무한한 윤회로부터 벗어나서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본질적으로 동일함을 자각하고 내가 브라흐만과 하나가 되는 것, 다시말해 범아일여를 깨닫고 ‘해탈’하는 것이 우파니샤드 사상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 중 오화 이도설을 읽으며 나는 우파니샤드 사상이 출범한 의의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오화 이도설에 의하면, 신도에 가기 위해서는 오화의 가르침을 알고 경건하게 진리를 명상해야하고 해탈하기 위해서는 요가에 의해 감관을 제어하고, 욕망을 버리고, 명상에 의해 정신을 통일시켜 브라흐만이 아트만임을 깨달아야 한다. 어떻게 일반 평민이 신도와 조도를 걸을 수 있는가? 신도는 차치하고 조도에라도 들기 위해서는 집에서 제사와 보시를 해야한다, 나는 이러한 오화 이도설의 주장이 우파니샤드가 브라흐마나 시대에 문제점으로 꼽았던 제식만능주의와 동일한 폐단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바라문 계급을 대신하여 크사트리아가 지식 전달의 주체로 등장한다고 쳐도 결국 일반 천민의 입장에서 바라문과 크사트리아는 소위 ‘있는 집안’ 사람들이다. 천민들은 다음 생에 더 좋은 계급의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 바라문과 크사트리아에게 기대게 된다. 또한 브라흐만을 실현하는 네 가지 단계에서 1. 우파니샤드의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을 따르고, 그에게서 진리를 배운다. 2. 요가의 수련에 의한 명상. 두 가지 단계가 천민에게 있어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어째서 제사 만능주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운동에서 더 나은 다음 생을 위한 방법으로 제사가 언급되며, 생해탈자가 되기 위해서 요구되는 사항들을 어떤 천민이 수행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나는 브라흐마나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고, 우파니샤드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 했기 때문에 우파니샤드 사상이 브라흐마나 사상보다 얼마나 더 진보되었는지를 체감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현대의 무신론자인 나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종교라는 것은 결국 시간이 흐르고, 자본이 쌓일수록 돈이 많은 자들의 여흥으로 생각된다. 명상도 시간이 있어야 하고, 제사도 물질적 자본이 필요하며 이 모든 요구 사항은 천민에게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파니샤드 사상의 의의를 생각해보자면 “참 다운 지혜는 그 가르침을 전수받을 자격이 있는 자, 즉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 부부가 마주앉아 비밀스럽게 전한다는 것이다. 자격이 없는 자가 바다 만큼의 재산을 바치겠다고 하더라도 그에게는 전수해서는 안된다.”고 물질 만능주의와 도덕적 해이에 대한 경계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종교가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글이 발견되기 전부터 인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를 믿었다. 물론 기술의 발전으로 자연의 법칙을 알기 전에는 자연 재해가 보이지 않는 절대자의 행위로 보일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인간은 사고할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향해 소원을 빌고, 부탁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 종교가 나라를 장악하고 있는 것도, 마녀사냥과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조차 종교의 이름 아래 모두가 이해했다는 것도 신기하다. 종교와 신화는 그 시대상을 제일 잘 담고 있는 역사적 사료 중 하나라고도 생각한다. 결국 나는 우파니샤드의 사상을 현대의 관점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다. 기우제도, 종교의 대신관이 왕과 동일한 권력을 쥐고 있던 것도, 마녀 사냥도 그 당시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내용이지만 오늘날에는 아무도 믿지 않는 것처럼 우파니샤드의 사상 역시 오늘날 받아들이기엔 힘이 든다. 하지만 우파니샤드의 사상이 중요한 이유는 인도불교철학의 ‘발전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이상 종교는 사라지지 않고, 종교는 사회의 발전에 맞추어 변화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지금으로서는 작지만 그 당시로서는 거대한 진보들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나는 우파니샤드의 사상 뿐만 아니라 모든 사상에 관해 의문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사상은 끊임없이 진보하고 과거의 사상은 항상 도태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당시의 최선은 그것이었을 것이다. 계급사회가 조금이나마 변화되고, 제사 만능주의에서 인간의 내면적 사색을 기본으로 한 진리와 해탈을 추구하는 것으로 사상이 변화한 것이 당시 인도 불교 철학의 최전선이다.
첫댓글 우선, 과거 특정 시기에 제출된 철학적 담론이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진리가 될 수 있고,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도 신화적인 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철학적 사유가 되었건, 과학적 탐구가 되었던 당시 시대 배경 속에서 요구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일반 평민이 신도와 조도를 걸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시대 비평적 관점에서는 성립될 수 있지만, 오화이도설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성립될 수는 없습니다. 당시는 신분 사회로서 오화이도설의 대상에서 일반 평민은 배제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방식으로 신분사회가 유지된다고 생각했던 지배계급에게 유의미한 것이지, 오늘날과 같은 시민사회에서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정일치시기인 브라흐마나시대에 비해 사회문화적으로 발달한 우파니사드시대에 들어오면서 크샤트리아의 목소리가 강화되었다는 점에서 오화이도설은 신의 권능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던 브라흐만 시대의 안티테제로서 역할을 충분히 해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