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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길(1) |
이스라엘이 2000년 발행한 우표 속에 담긴 ‘전설의 스파이’ 엘리 코헨의 사진 |
여기 두 사람이 있다. 이들은 모두 비슷한 시대에 유대인으로 태어나 활발하게 활동했고, 아내와 아이들을 끔찍이 사랑했다. 남모르는 비밀을 품고 늘 불안 속에 살았으며 마침내 비밀이 드러났을 때는 온 나라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재판 끝에 한 사람은 사형을, 다른 사람은 징역형을 받아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전자는 엘리 코헨, 후자는 버니 메이도프다. 엘리는 이스라엘의 정보원으로 활동하며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버니는 월 스트리트에서 금융 회사를 경영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나락에 빠트린 희대의 사기꾼으로 남았다. 엘리의 삶부터 살펴보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엘리는 1957년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간호사인 나디아를 만나 결혼했다. 비밀 정보부는 담력과 아랍어 구사 능력을 높이 사 그를 정보원으로 채용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국가의 존망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1948년 팔레스타인 지방에 국가를 세운 뒤 아랍 국가들과 두 차례나 격전을 벌였고, 언제 또 다시 전쟁이 시작될지 몰랐다. 엘리는 나디아에게 해외에 직장을 구했다고 거짓말하고 정보원 활동을 시작했다. 콧수염을 기르고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아랍인들과 어울렸다. 여기서 시리아 장군 하페즈 알아사드와 친해졌다. 그가 권력을 잡자 엘리는 1962년 시리아로 이주했다. 알아사드는 나중에 대통령이 됐다. 현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가 그의 아들이다. 엘리는 권력층에 정치 자금을 제공하고 유능한 사업가 행세를 하며 권력의 핵심에 다가갔다. 뛰어난 친화력으로 대통령 특사로 임명되는가 하면, 국방부 차관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는 아랍 국가들의 극비 전쟁 계획서를 입수했고, 친한 장군의 안내로 시찰한 골란 고원(시리아와 이스라엘 국경 지대)의 군사 기지 정보를 이스라엘로 보냈다. 그 정보는 제3차 중동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아랍 연합은 이스라엘에 비해 인구가 스무 배 가량 많고 군사력도 압도적 우위에 있어 이스라엘이 승리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1967년 6월, 전쟁이 시작되자 이스라엘군은 난공불락이라는 골란 고원을 하루 만에 함락시켰다. 엘리의 정보 덕에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전투 계획과 전력 배치도를 손바닥 보듯 훤히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 코헨이 아니었다면 골란 고원 점령은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거나 영원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령관 모세 다얀의 말이다. 엘리가 이스라엘의 승리를 이끈 셈이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헤르지산 국립묘지의 ‘무명용사의 정원’에 세운 코헨의 추모 석판. [사진 이스라엘 정부] 하지만 엘리는 이 전쟁이 나기 전인 1965년 1월, 시리아 정보국에 체포됐다. 이스라엘과 통신을 하다 덜미가 잡힌 것이다. 시리아에서 지낸 지 3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전부터 이스라엘 정보국은 엘리에게 귀환을 권유했지만 전쟁 정보가 시급한 때라 여러 차례 일정을 늦출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시리아측 간첩 열 명과 막대한 돈을 교환 조건으로 제시했고, 교황까지 나서서 엘리의 석방을 요청했으나 시리아는 거부했다. 엘리가 시리아 내부에 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엘리는 극심한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았고 결국 긴급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5월 18일 새벽, 그는 수천 명이 모인 다마스쿠스의 한 광장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나디아와 가족들은 이 장면을 텔레비전 생중계로 볼 수밖에 없었다. 엘리는 사형 직전 아내에게 편지를 남겼다. 용서를 구하며 다른 사람을 만나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디아는 혼자서 삼 남매를 키웠다. 1977년 막내 아들 샤이가 열세 살이 되어 유대인 성인식을 치르는 날이었다. 그날 샤이는 자신을 축하하러 온 이스라엘 총리와 장관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연설은 곧 이스라엘 국민들을 하나로 묶었다. "나는 어머니께 아버지에 대해 한 번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너무 슬퍼할까 봐서요.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나라에 헌신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것이 아버지께 드리는 나의 맹세입니다." 엘리는 이스라엘 현대사에서 가장 빛나는 영웅 중 한 사람이다.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세워졌고, 매년 추모 행사도 열리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 버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다음호에 계속) 두 사람의 길(2) 650억달러 규모의 다단계 금융사기를 저지른 혐의를 받은 버니 메이도프가 2008년 법정에 출두하기 위해 뉴욕 맨해튼의 저택을 나서고 있다. 그는 법원에서 11개 혐의에 대한 유죄를 인정한 뒤 150년형을 선고받았다. 버니 메이도프는 1938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러시아에서 이민 온 유대인이었는데 하는 일마다 실패해 가족 모두가 가난하게 살았다. 버니는 고등학생 때 만난 아내와 일찍 결혼해 회계사였던 장인의 사무실 방 한 칸을 빌려 주식 거래 중개업을 했다. 투기성이 높은 주식 거래가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침 주식 시장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컴퓨터에 능숙한 버니가 1970년경 최초로 주식 거래 전산화를 이끈 것. 주식 거래 기간을 3일로 단축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화려한 언변과 그럴 듯한 전문성을 내세워 증권 회사를 키웠고, 주식 거래소 의장을 맡는 등 월스트리트의 핵심 인물로 성장했다. 가족 재단을 설립하고 대학교 이사장을 맡았으며, 거액 기부 등 사회 공헌 활동도 활발히 해 존경을 받았다. 아내와 두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가정적인 사람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뒤로는 인가도 받지 않은 주식 투자업을 하고 있었다. 투자자들에게는 연 9퍼센트의 고금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명성을 믿은 유력 인사와 퇴직자들이 앞다투어 돈을 맡겼다. 그러나 버니는 투자금을 다른 곳에 쓰고 있었다. 새 투자자에게 받은 돈을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으로 지급하는 전형적인 다단계 금융 사기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도 그가 사기를 치리라고 의심하지 못했다. 그를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이 엄청난 영광일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년 금융 위기가 터져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투자금을 돌려 달라고 하자 그의 사기 행각도 더 버틸 수 없었다. 수십 년간 쌓아온 범행의 전모가 드러났다. 그의 두 아들이 공범 혐의를 벗기 위해 그의 죄를 고발했다. 사기를 친 액수는 자그마치 640억 달러, 피해자는 5000명에 달했다. 미국 사회 전체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많은 이에게 존경받던 금융인이 사기꾼이라니, 피해자 중에는 전 재산을 맡긴 고령의 은퇴자가 많았고, 충격으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여럿 나왔다. 그는 법원에서 징역 150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2021년 사망했다. 그의 장남은 "아버지가 저지른 죄를 용서할 수 없다. 피해자들의 인생을 망쳤다."라며 2년 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 후 차남도 암으로 숨을 거뒀다. 그의 아내는 집에서 쫓겨나 차를 타고 떠도는 신세로 전락했다. 자가용 비행기와 호화 별장을 애용하던 가족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그의 삶은 지난 9월 호에서 다룬 엘리 코헨과 정반대다. 엘리가 시리아에서 사업가로 위장해 군사 정보를 빼낸 덕분에 이스라엘은 제3차 중동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정보부는 발각될 위험성이 커지자 엘리에게 복귀를 명령했으나 그는 전쟁이 임박한 상황에서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으려다가 체포돼 사형 당했다. 조국을 지키려는 사명감이 자신과 가족에 대한 사랑보다 앞선 것이다. 하지만 버니는 자신의 성공과 재산만이 삶의 전부였고, 진실이나 타인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그의 사건을 맡은 조사관은 버니를 '거리낌 없이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망친 사악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자기 목숨을 바쳐 수많은 사람을 구한 영웅과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수많은 사람을 파멸로 몰고 간 사기꾼이 나란히 서 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간 두 사람의 삶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두 사람이 남긴 삶의 열매가 이렇게 다르다니. 엘리는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세워지고, 아들의 성년식에 이스라엘 전 각료가 참석할 정도로 존경받고 있다. 하지만 버니는 금융 사기범의 대명사로 역사에 남았다. 수많은 사람을 끔찍한 고통 속으로 밀어 넣은 버니는 무엇을 위해 살았을 까? 그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언젠가 범죄가 드러날 것이 확실하고, 가족들이 견딜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을 텐데 왜 그런 짓을 계속했을까?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이 이전에 보인 행동과 그 이유가 상당 부분 드러나기 마련이고 이는 남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나는 엘리와 버니가 걸어간 두 개의 길 사이, 어디쯤을 걸어가고 있을까. 두 사람을 보면서 내 속에서 어떤 씨앗이 자라고 있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까운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해 본다. 윤재윤 | 변호사 텔아비브(Tel Aviv)는 이스라엘 서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이다. 이스라엘의 실질적 수도이며, 국제법적 수도이다. 시내 인구는 405,300명으로 예루살렘 다음으로 많다. 유대인(Judea人): 셈 어족으로 히브리어를 사용하고 유대교를 믿는 민족. 고대에는 팔레스타인에 거주하였고, 로마 제국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파괴되자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다가 19세기 말에 시오니즘 운동이 일어나 1948년에 다시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을 세워 살고 있다. My Way - Frank Sinatra Cover By Vanny Vabiol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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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고운 방문길 흔적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하루
아침이 밝아오는 건
새로운 기회와 기쁨을
누리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행복한 오늘되세요
동트는아침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