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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성, 어디로부터 왔는가?
에세이: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기
‘인간은 짐승과 다른 존재인가?’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인간’들의 생각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오히려 더 강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물어보는 것 같은 이 질문은 사실 당연하지 않다. 인간과 짐승은 모두 ‘동물
종’에 속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선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들은 틀
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물론 인간은 짐승과 다른, 즉 구별된 존재이다. 이러한 사실은 필연적으로 “무엇이
인간을 짐승과 구별되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동반한다. 첫 번째 질문에서 ‘그렇다’는
답이 타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두 번째 질문에도 합리적인 답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두 번째 질문은 우리가 당연하게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고 생각했
던 것에 대한 근거를 찾게 만든다. 즉, 당연하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봐야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 무엇이 인간을 짐승과 구별짓는
것일까? 인간에게는 있고, 짐승에게는 없는 것을 찾는다면 보다 쉽게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짐승 모두 생로병사를 겪으며, 자식을 낳고, 무리를 형성하기도 한다.
자신 또는 무리의 이익을 위해 싸우기도 하며, 희생하기도 한다. 인간도 동물적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짐승도 이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동
물인 것 같지만, 짐승에게는 없고 인간에게는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도덕규범’이다.
도덕규범은 일종의 도덕적 지향점으로서, ‘살아가며 지켜야 할 것’을 의미한다. 이
러한 도덕규범은 인간의 양심에 의해 정립되고 실행되어 지는데, 양심은 ‘이성’에 속하
여 작용한다. 짐승에게도 규범은 있으나, 그것을 이성에 기초한 도덕규범이라고 보기
는 어렵다. 그들은 단지 본능에 의한 ‘행위규율’을 가지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도덕규범의 근간이 되는 ‘이성’은 우리가 보고 들을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
는 것이 아니므로 그 존재 여부와 이것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과 짐승의 특징을 통해 이성의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모든 생물은 ‘스스로 살아가는 것’을 삶의 최우선 과제로 둔다. 이는 ‘생명체’의 본
능에 각인된 것으로, 인간과 짐승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짐승 모두 생명체
로서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를 느끼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여러 행위
들을 한다. 이러한 행위를 할 때 나타나는 특징에서 인간을 짐승과 구별짓는 가장 핵심
적인 요소를 관찰할 수 있는데, 바로 ‘타존재의 삶의 실현 욕구에 대한 인식 여부’이다.
인간은 자신이 생명체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앎과 동시에 이
를 추구한다. 이때 인간은 자신이 그러한 ‘존재’임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타인 또
한 자신과 같은 ‘존재’임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성’의 근거이며, 삶의 실현과정
에서 도덕규범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반면 짐승은 인간처럼 ‘다른 존재도 자신과 같이 삶의 실현을 원하는 존재’라는 것
을 인식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짐승들의 세계는 먹고 먹히는 ‘동물의 왕국’, 진정한 힘의
질서가 작용하는 곳이 된다. 이때 초식동물이 육식을 하지 않는 이유는 생리적 구조 및
본능 때문일 뿐이며, 어떠한 이성적 작용으로서의 윤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이들
도 본능적으로 살생을 한다). 이처럼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 모두 자신들의 ‘동물적 본
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지배를 받는다.
인간 또한 살인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인간이성의 실재를 부정하
는 근거가 되지 않는데, 살인은 인간의 동물적 본능과 이성의 충돌에서 이성이 밀린 것
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짐승과 달리 동물적 본능과 이성이 공존하는 존재로
서 짐승보다 자유로운 행위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실현할 수 있으며, 이를
보다 잘 이루어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도덕규범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인간이성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을 품게 된다. 우
리가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인간의 짐승과의 구별’, 그리고 이에 대한 근거로서 제
시된 ‘인간이성’에는 분명 근원(원인)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질론적 관점에서는 인간이성을 ‘진화의 산물’로 본다. 즉, 이성으로 여겨지는 것
은 그저 뇌 신경물질의 산물일 뿐이며, 동물과 인간의 이성 보유 여부에 대한 차이는 진
화과정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처럼 인간의 이성이 두뇌 신경 작용
을 통해 나타나는 것일지라도, 과연 신경물질이 그 자체로 본질적인 것인지, 아니면 절
대적인 실재로서 존재하는 이성의 구현 수단인지에 대한 질문이 남아있다.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의 시작, 즉 빅뱅(Big Bang)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물질론적 관점’에서 우주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빅뱅은 하나의 에너지
또는 질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경험적 근거를 그 바탕으로 하는 물질론은 빅뱅 이후
의 과정을 ‘진화를 통해 스스로 이루어진 것’으로 설명해왔으나, ‘태초의 에너지 또는 질
량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답을 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 물질론은
태초에 무엇이 생겨난 현상, 즉 ‘완전한 無에서 有의 생성’을 그 어떠한 이론으로도 설명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성의 근원에 대한 물질론적 접근은 적절치 않다.
이때 ‘완전한 無에서 有의 생성’에 대한 설명은 오직 초월적 존재를 통해서만 이루
어질 수 있는데, 이 존재는 곧 ‘신’이다. 모든 것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신’은 ‘창조’를 통
해 無에서 有을 만들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에 질서를 부여할 수 있다. 이러한 신은 앞서
논했던 ‘인간이성’의 근원으로서 매우 유력하고 매력적인 존재인데, 물질론적 관점에
서 설명할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을 ‘초월적 존재’ 그 자체만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이 우주만물을 창조할 때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인간’을 다른 모든 것
들과 구별하여 만들었고, 그것의 특징으로서 ‘이성’이 나타나는 것이라면 이 글이 시작
부터 지금까지 다루었던 내용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
결국 물리적이고 경험적으로 알 수 없는 존재인 ‘신’은 그가 자신의 특별한 피조물
인 ‘인간’에게만 심어놓은 ‘이성’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나는데, 이와 같은 ‘신의 役事’를
중심에 두고 신을 섬기는 종교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독교’이다.
기독교는 창세 이전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役事하심을 중심으로 한 교리를 바탕
으로 전개되는데, 기독교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그분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존재이다. 인간이성의 한 요소인 ‘양심’은 선악을 구별하고, 악을 물리치는 ‘도덕판단’을
할 수 있게 하는데, 이는 본래 하나님만의 것이었으나 신으로부터 받은 자유의지를 바
탕으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욕망하여 죄에 눈을 뜨게 된 인간 또한 양심을 갖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인간은 완전히 선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죄에 이끌릴 수 밖에 없
게 되었으며(타락), 그분의 피조물로서 태초에 부여받은 ‘이성’을 통해 선과 악을 분별
하며 필멸의 몸을 가지고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타락
한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완전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나님은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
신의 아들, 곧 ‘예수님’을 타락한 이 땅에 보내 그들의 죄를 대속하게 하였고, 이 사실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에 이르러 자신과 함께 영생을 누릴 수 있게 하였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役事하심을 믿고 따르는 기독교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
지만 낯설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들 중에서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인간의 욕
심과 타락 그리고 죄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과 구별되는 점 등)을 신의 성품과 役事
를 통해 매우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나아가 ‘인간’인 우리의 삶의 실현에 대한 이
정표를 제시한다.
첫댓글 신의 존재를 믿는다면, '인간과 짐승은 과연 다른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대상은 내가 아니라 신이 되겠지요. 신의 대답이야말로 가장 완벽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기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신에게 물어볼 도리가 없다면 스스로가 답을 찾아내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만일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인간과 짐승은 과연 다른 존재인가라는 질문은 인간과 짐승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분과학문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완벽하게 짐승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근대 이전과 마찬가지로 결국은 우리 스스로가 묻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본문에 가득하게 질문과 대답을 써 놓은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가 짐승과 다른 점이라고 생각해왔고, 축적해온 것들입니다. 따라서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지금까지 인간의 관점에서는 ~ 이라고 할 수 있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지금 우리는 분과학문을 통해서 짐승은 물론, 생명, 비생명에 대한 탐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해답을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결국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틀 속에서 얻어내는 해답이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