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일 (군인주일)
2026년 10월 10일
오늘의 말씀, 최 빠코미오 수사
1독서: 이사 25,6-10ㄱ <주님께서 잔치를 베푸시고,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리라.>
2독서: 필리 4,12-14.19-20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복음: 마태 22,1-14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제목: 군복 속에 입는 거룩한 예복
1. 사크라멘툼과 영적 전투
오늘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국군 장병들과 군종 사목을 위해 기도하는 군인 주일입니다. 칠성사를 뜻하는 라틴어 ‘사크라멘툼’(Sacramentum)은 본래 고대 로마 군인이 조국과 황제에게 바치던 입대 선서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주님께 충성을 약속하며 하느님의 군대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군 복무는 청춘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단절의 자리가 아닙니다. 자신을 단련하며 하느님을 깊이 만나는 은총의 광야입니다. 『성 베네딕도 규칙』에서도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를 위해 싸우는 수도자들을 ‘그리스도의 군사’라고 불렀습니다. 군인들이 거친 비바람 속에서 전우와 무거운 군장을 나누어 지듯, 우리도 악한 유혹과 맞서 싸우며 이웃의 짐을 함께 짊어져야 합니다.
2.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의 자족
이러한 영적 전투를 꿋꿋이 치러 내려면 내 힘이 아니라 하느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감옥에 갇힌 채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필리 4,12) 이는 단순한 배짱이 아니라,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3)라는 굳건한 믿음에서 나온 힘이었습니다.
베다 성인은 내 힘을 과신하는 교만을 버리고 하느님의 은총에 자신을 맡기는 겸손이 참된 강인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엄격한 규율과 결핍을 견디는 군인이나 매일의 무게에 지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힘은 바로 이 겸손한 신뢰입니다. 주님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릴 때 우리는 어떠한 메마른 땅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버텨낼 수 있습니다.
3. 잔치의 부르심과 혼인 예복
이렇게 하느님을 신뢰하며 영적 싸움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영원한 승리의 자리를 약속하십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시온 산에서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이사 25,6)라고 선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동서양에서 모여든 이들이 아브라함과 한 식탁에 앉으리라 선언하시며(마태 8,11 참조), 대연회의 비유(마태 22,1-14; 루카 14,16-24 참조)를 통해 구원의 잔치를 열어주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나누신 잔과 빵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를 미리 맛보는 표징입니다. 요한묵시록은 이를 “어린양의 혼인 잔치”(묵시 19,9)로 선포하며,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묵시 21,4)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에서 온전히 완성합니다.
오늘 복음의 임금은 거리의 모든 사람을 잔치에 불렀지만, 혼인 예복을 갖추지 않은 사람은 바깥 어둠으로 내쫓았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 22,14)라는 말씀은 우리를 향한 엄중한 가르침입니다. 은총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 부르심에 걸맞게 삶의 매무새를 바르게 고쳐야 합니다.
혼인 예복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로 갈아입은 옷(갈라 3,27 참조)이며, 매일의 삶에서 실천하는 회개와 사랑입니다. 비록 겉에는 거친 군복과 고단한 일상의 작업복을 걸치고 있을지라도, 우리 영혼 속에는 진실과 자비라는 거룩한 예복을 단정하게 갖추어 입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차려주신 영원한 식탁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