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한 글자를 오래 보다 보면 종종 익숙함 속에서 낯섦을 발견할 때가 있다. 분명히 평소에도 자주 사용하던 글인데 그 글을 집중해서 보거나, 의식해서 보다 보면 이 글이 맞나 하고 낯설어진다. ‘볼펜’이라는 단어를 예로 들었을 때 볼이란 글자와 펜이란 글자가 같이 있는 것이 어색해지며 볼이라는 글자 자체도 없는 단어로 느껴질 때가 있다. 또한 평소에 자주 사용하던 맞춤법이 갑자기 낯설게 보이며 이게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이를 친구에게 말하면 친구 또한 갑자기 이 맞춤법에 대하여 의심을 가지게 된다. 철학자인 데카르트의 저서인 「성찰」에서 ‘내가 지금까지 아주 참된 것으로 간주해 온 것은 모두 감각으로부터 혹은 감각을 통해서 받아들인 것이다. 감각은 종종 우리를 속인다는 것은 이제 경험하고 있으며 한 번이라도 우리를 속인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편이 현명한 일이다.’라는 말을 했다. 또한 데카르트는 감각경험을 통해 주어지는 모든 지식의 확실성을 의심하였으며 확실한 앎의 정초를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하고 의심을 통해 확실한 앎의 출발점을 발견하려고 하였다. 내가 평소 눈이라는 감각을 통하여 글을 받아들였을 때 이 글이 유난히 낯설게 보인다면 그것은 감각이 지식을 속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또한 이러한 낯섦을 의식하며 감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이성을 인식의 원초로 하여 이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진짜 이상한 것인지, 맞는 것을 이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댓글보통 이런 경험을 두려워하고 꺼려합니다.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불수의근', 곧 심장과 호흡처럼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들에 집중하면 의미과잉이 되어서 호흡곤란이나 심부전에 빠질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언어도 마찬가지지요. 볼펜이라고 하는 것이 볼을 이용하여 용액의 흐름을 조절하는 펜이라고 하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는 것은 괜찮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볼은 왜 볼이라고 하며, 펜은 왜 펜이라고 하는지, 그리고 'ㅂ ㅗ ㄹ'은 과연 볼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을 생각하게 되면 한글 또는 한국어에 대한 모든 것이 붕괴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반인의 경우에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언어학자, 그리고 특히 메타언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주요한 연구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상에서 별 의미를 두지 않는 것들이 사실은 각각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까지 인식을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세계관이 확장되고, 삶이 풍요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보통 이런 경험을 두려워하고 꺼려합니다.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불수의근', 곧 심장과 호흡처럼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들에 집중하면 의미과잉이 되어서 호흡곤란이나 심부전에 빠질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언어도 마찬가지지요. 볼펜이라고 하는 것이 볼을 이용하여 용액의 흐름을 조절하는 펜이라고 하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는 것은 괜찮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볼은 왜 볼이라고 하며, 펜은 왜 펜이라고 하는지, 그리고 'ㅂ ㅗ ㄹ'은 과연 볼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을 생각하게 되면 한글 또는 한국어에 대한 모든 것이 붕괴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반인의 경우에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언어학자, 그리고 특히 메타언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주요한 연구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상에서 별 의미를 두지 않는 것들이 사실은 각각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까지 인식을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세계관이 확장되고, 삶이 풍요로워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