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 때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지금 새롭게 시작할 수는 있습니다. 물론 시간도 공간도 다릅니다. 같은 공간이라 할지라도 환경이 다릅니다. 사람도 그 사람이지만 당시의 사람은 아닙니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달라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때의 감정도 되찾을 수 없습니다. 그냥 바람일 뿐입니다. ‘나 다시 돌아갈 거야’ 하는 것은 바람일 뿐 이룰 수 없는 꿈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꿈속으로 사라지려는 모양입니다. 안타깝고 아픈 일입니다.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고 그 시절입니다. 반복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냥 추억에 잠겨있을 따름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생을 상상해볼 수 있고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지독한 인생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비극의 밑창으로 내던지게 만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나아갈 희망도 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더 잃을 것도 없다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품은 희망이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룰 수 없는 희망이지요. 아니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입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시간은 오로지 앞으로만 움직이니까요. 그러므로 희망하고 다음으로는 만들 수 있도록 달려가야 합니다. 소위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이룰 수 없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시간을 거꾸로 하여 전개합니다. 2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호’가 왜 달려오는 기차에 마주하였는지 그것을 설명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어느 공장의 직원이나 직공으로 짐작합니다.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1979년 가을 직원들이 야외 소풍을 갑니다. 철교가 보이는 강가로 나가서 둘러앉아 노래 부르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거기서 여직공 ‘윤순임’을 알게 됩니다. 순임은 매일 자기가 작업하여 포장하는 박하사탕을 건네주고 영호는 들꽃을 꺾어 답례합니다. 남녀의 교감이 이루어집니다. 아직 사랑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씨가 심겨집니다. 그리고 영호는 군에 입대합니다.
1980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해입니다. 영호가 근무하던 부대가 현장으로 출동합니다. 하필 그 때 순임이 면회를 갔다가 비상사태 시국이었기에 거절당합니다. 순임이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그 먼짓길에서 출동하던 영호는 수송 트럭에서 순임을 봅니다. 멀어져가는 차 안에서 군가만 목 터져라 부릅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헤아리겠습니까? 그 후로 순임과의 관계도 멀어집니다. 더구나 출동한 현장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를 목격합니다. 아마도 그 충격이 그의 성품을 별나게 바꾸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영호는 제대 후 형사가 됩니다. 그 별난 성품이 피의자 다루는 일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순임이 어렵게 추적하여 영호를 찾아옵니다. 하지만 영호는 이미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행동을 합니다. 순임이 어쩔 수 없이 떠납니다. 마지막 배웅해주면서 그래도 영호의 마음은 읽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생활하면서도 늘 마음에 품고 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남편에게 마지막 소원으로 영호를 찾아 만나게 해달라고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 즈음 이마 자신의 삶을 포기하려던 참이었던 영호는 아마도 자신의 죽음을 함께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픈 눈물을 흘리며 병실을 떠나옵니다.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기에 마음만 아프지요.
피의자 심문 중에 그의 일기장에서 읽은 구절이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삶은 아름답다.’ 과연 그러한가? 늘 생각하며 지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고문을 당한 피의자에게 묻습니다.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면서 나중에 자신에게도 묻습니다. 내 삶이 아름다웠는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속된 말로 ‘이 빌어먹을 세상!’ 하면서 아름답다고? 말이 안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현실 또한 그렇습니다. 도저히 아름답다고 해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 속이고 등쳐먹고 남김없이 빼앗고는 지들 잘 먹고 잘 사는 세상, 이게 아름답냐? 하고 묻고 싶을 것입니다.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해주고 싶지도 않습니다.
반복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달리는 철로입니다. 무엇인가 상징하고 있는 듯싶습니다. 철로 위로만 달려야 합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로지 한 길, 자신의 운명을 안고 살라는 뜻인가요? 그 위를 달려오는 기차에 맞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요.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장면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더군요. 왜 그렇게 되었는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순진(?)했던 한 청년의 ‘아름다운 삶’을 그려줍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삶을 아름답다고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영화 ‘박하사탕’을 보았습니다. 1999년 작품입니다. 사회적 저항을 공감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