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흥리 최씨일가의 가문의 영광 옛골 최경주와 친척뻘 된다는 일본에서 최고성공한 간다이 대표 최병욱씨 알대기
1936년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화흥리 마을에서 2남 1녀의 둘째로 태어나
완도읍 화흥초등학교 1회 졸업생으로
부친은 정미소, 소주공장, 면제조 공장, 여관 등을 경영한 완도에선 유명한 부자였다.
광주고 졸업 이듬해인 1956년 19세(19살) 맨손으로 일본에 밀항으로 건너갔다.
부족할 게 없었던 그가 일본 밀항을 하게 된 것은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한 1955년 그의 나이 19세 때. 당시 출세했다고
명함 내미는 이들 중에 상당수가 일본 와세다대학을 다닌 엘리트들.
나름대로 입신양명을 그리던 그에게 일본에서 사는 숙부는 구세주였다.
일본에 오면 넣어주마 라는 지나가는 말에 넘어가 결국 밀항을 선택한 것.
1956년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 여수항구 외진 곳에 있던
100톤급 화물선에 올라타 27시간 만에 현해탄을 건넜다.
물론 주민증도 없는 밀입국자가 와세다대학은커녕
3개월 만에 강제송환당하는 처지가 됐다.
오기를 품고 다시 밀항선을 탄 그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뻥튀기 장사, 청소부,
석유난로 공장 아르바이트 직공으로 일 등을 전전하다
생활고에 한때 자살까지 기도했다.
식사는 주로 빵으로 해결했고
친구의 자취방에서 잠자리를 해결했다.
틈만 나면 도서관에서 일본어와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오사카 긴기(近畿) 대학총장의 눈에 띄게 되었고
이들의 도움으로 주민증을 손에 쥐게 되었다.
이후 나니와(浪速)단기대학과 오사카 긴기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오사카 시립대학원을 수료하게 되었다.
친구의 소개로 32세 되던 때 27세 되는 재일교포를 만나 결혼을 해
큰딸과, 쌍둥이 딸 그리고 아들을 낳았다.
최 사장은 조그만 금융업 사업을 하며 가정을 꾸려 나갔지만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좌절을 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가족들과 다같이 동반자살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많이 힘들었고 포기도 생각했지만 죽
을 각오로 새롭게 시작하기로 결심했죠. 더 이상 두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그 후 그는 나고야를 등지고 돗토리(鳥取)현으로 이사를 하면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 1974년 친구로부터 1800만엔을 빌려
현재의 슬롯머진 사업을 시작했다.
기계 88대와 종업원 2명이 전부였다.
사업은 번창하기 시작해 사업장을 늘려갔고 연수익 1000억엔대의 거부로 성장하며
현재 80명의 직원을 보유하는 성공의 신화를 맛보게 되었다.
지금은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아들에게 경영을 맡겼다.
19세 때 밀항, 대학원까지 공부
실패하면 죽을 결심을 하고 200만엔으로 시작한 슬롯머신 사업이
오늘날 1300여대로 늘어나 연간 1000억엔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최 대표는 일본에서도 영·호남 지역감정의 골을 느꼈다.
자식 혼사에서도 퇴짜를 맞을 정도. 전라도 사람이 무에 그리 못할 짓을 해서
그러나 되뇌인 적이 수 없이 많았다.
일본인한테 받은 차별에 서러움이 더할 수밖에.
최 대표는 대외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데 대부분 교류화합 관련 단체가 많다.
현재 사카이미나토(境港)시 민단지부지단장, 돗토리현 상공회의소 상임고문,
돗토리현 서부지구 한일친선협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또 한일교류와 영호남 화합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인구 14만의 소도시인 돗토리현 요나고(米子)시와
김포공항을 연결하는 주3회 직항로가 개설된 것도 그의 공이다.
또한 영·호남 화합운동의 하나로 학교 자매결연, 한일 문화정보 교류,
남북통일지향의 민족이념 교육,
야스쿠니 참배 오명 벗기기 운동 등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귀국 할 때마다 자신의 모교에 금일봉을 내고
광주고교 모교에 음악당 등을 기증하기도 했다.
“한국서 공부하던 아들이 일본은 잘 사는데 한국은 왜 못사느냐고 그러더군요.
일본은 검소하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국민이 의식개혁을 하지 않으면 선진국이 안 됩니다.
일본에서 와서 그 고생을 하면서 얻은 게 있는데 바로 노력입니다.
노력을 안 하고 요행만 바라는 게 요즘 현실입니다.”
호남에서 태어나 19세에 일본에 밀항, 일본서도 지역차별을 겪는 등
갖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슬롯머신 대부(大富)가 된 최병욱(74)
긴다이(金田)관광 대표. 2002년 파란만장한 자신의 생애를 적은 자서전
《눈물의 현해탄을 건너서(恨の海峽お越えて)》를 펴낸
그가 한국을 오가면서 다시 가슴속에 눈물을 삼키고 있다.
그가 보기에 한국은 놀면서 쓰는 것 하나는 천국이고 선진국이다.
일본인들은 세계의 부자나라임에도 정말로 검소하게 산다.
그 역시 동남아 여행 한번 못해 봤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의 좋은 점은 검소하게 살고 단결하는 힘이다. 또 반성을 할 줄 안다. ”
△ 간다이 대표 최병욱 씨 사진
1년에 1000억엔 이상을 버는 그지만 그저 평범하고 소박한 동네 할아버지 같다.
일본어와 전라도 말투가 섞인 말투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받은
손목시계를 자랑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실제로 최 대표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내실을 기해야지 겉만 번지르르한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다.
일본에서 제일교포로 최고 성공한 간다이 대표 최병욱씨 걸어온 발자취를
담은 출생(출신), 학력, 이력(경력)을 담은 성공의 메시지 자서전 2종 소개
최근작 : 《눈물의 현해탄을 건너서(恨の海峽お越えて)》 2002년 5월 15일 출판
총 2종 《‘바닥을 치고 일어서라 (한얼사)’》자전 에세이를 2009년 7월 초 출간했다
눈물의 현해탄을 건너서 책(도서) 소개
? 저자 : 최병욱 |
? 출판사 : 한일문화교류센터 |
? 출판일 : 2002년 05월 15일 |
열아홉에 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슬롯머신 사업으로 성공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을 써내려간 책.
60 평생을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지은이의 삶의 과정이,
전체 9장으로 구성된 한 권의 책 속에 온전히 담겨져 있다.
목차
제1장 60세를 넘어 새로운 사명에 불타며
제2장 내 고향 완도에서의 나날, '일본바람'
제3장 이쿠노 구 이카이노 생활
제4장 대학합격, 1퍼센트에 대한 도전
제5장 등록취득 그리고 인생의 대전환
제6장 슬록머신(파친코)에 꿈을 걸고
제7장 가족의 끈
제8장 한일 친선교류의 가교로서
제9장 조국과 일본과 재일교포에게
추천글 : 최병욱씨는 경제적으로 성공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인물이 아닙니다.
'조국에 도옴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소년시절의
큰 뜻을 다른 모양으로 실현하여 오셨습니다. - 김수한 (전 국회의장)
재일한국인의 성공신화! "죽을 각오라면 무엇도 무서울 것이 없다.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다." 저자 소개 최병욱
긴다이관광유한회사 최병욱 회장은 ‘바닥을 치고 일어서라(한얼사)’
자전 에세이를 2009년 7월 초 출간했다.
△(사진설명)화흥초등학교 1회 졸업생인 재일교포 최병욱(73)씨가(사진 중앙)
통폐합 위기에 처한 모교에 최경주 선수처럼 훌륭한 골퍼들을 배출하는
골프명문학교를 만들어 달라며 3천만 원의 거액을 기탁했다.
통폐합 위기에 처한 모교소식에 거액을 쾌척한 선배가 있어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
최경주 프로골퍼의 모교이기도 한 완도읍 화흥초등학교 1회 졸업생인
재일교포 최병욱(73)씨가 최경주 선수처럼 훌륭한 골퍼들을 배출하는
골프명문학교를 만들어 달라며 3천만 원의 거액을 기탁했다.
최 씨는 지난 2009년 2월 23일(월요일) 오후 3시 완도교육청 2층 교육장실을 방문해
화흥초 안규양 교장에게 골프연습장 부지매입 기탁금 3천만 원을 전달했다.
물론 기탁금은 골프연습장 확충을 위해 쓰이게 된다.
최 씨는 이날 “세계적인 프로골퍼 최경주 모교인 화흥초등학교가
농어촌 인구 감소로 인해 매년 입학하는 신입생이 줄어 분교되거나
폐교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너무 가슴 아팠다.”고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
이어 “모교인 화흥초 활성화를 위해 학교 특색 교육인 골프학습장 확충으로
전국 명문 골프 초등학교를 만들기 위해 참여했다.
앞으로도 모교에 꾸준히 관심갖고 장학사업 등 지역 후배들을 위해
계속 동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곽영체 교육장은 “학생수 감소로 화흥초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폐합을 막기 위해 이 학교 출신 최병욱씨가 후배들을 위해 골프연습장
부지매입 기탁금을 전달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고장의 명예를 빛낼 제2의 최경주 선수가 탄생할 수 있도록
골프교육에 최선을 다 할 방침이다.”며 최 씨의 모교 사랑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편, 화흥초등학교는 2006년 특기적성 교육으로 시작한 방과후 골프 학교가
2007년 골프부를 창단한 이후 지난해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등 상위권에 입상했다.
골프선수 최경주 아버지께서는
옛골(장흥 박순진 시인) 고종사촌 오빠(오라버니)입니다 ~~
세계 골프선수 최경주 아버지 이지만 여전히 순순하게
농사와 소를 키우며 구수하게 옛날 그대로 변하지 않고
시골의 순수함 간직하신 모습이
지금의 세계 골퍼의 당당한 아들 키워내신 훌륭함에 존경을 표합니다
첫댓글 성공한다는거, 반드시 그만한 고통이 동반됩니다. 지금부터는 평생을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