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를 보는 접수 직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내가 접수대에 앉아 마사지 숍에 걸려 오는 예약 전화를 대신 받고 있었다.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지 문에 달린 종이 딸랑 소리를 냈다. 나는 전화를 급하게 끊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 방향으로 시선을 두고 인사를 했다. 손님에게 접수 직원이 잠시 자리를 비웠으니 응접 소파에 앉아 기다려 달라 양해의 말을 건넸다. 상대는 한동안 대답 없이 내 앞에 서있었다. 나는 의아해하며 재차 소파에 앉아 기다려 달라 말했다. 상대는 알겠다고 했지만 대답과 달리 꼼짝하지 않고 내 앞에 서있었다. 나는 손님이 소파에 앉는 소리가 나지 않아 엉거주춤 서서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때마침 접수 직원이 돌아왔다. 그 바람에 그녀와 나의 대치가 마무리됐다. 나는 접수대를 나와 대기실로 향했다. 등 뒤로 접수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손님의 대꾸는 없었다. 다만 나는 뒷머리에 꽂히는 시선을 느꼈다. 안내를 마친 직원은 날 쫓아와 방금 전의 손님을 아느냐고 물었다. 목소리도 이름도 생경한 사람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직원은 손님의 시선이 계속 나를 향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고는 내게 마사지를 받고 싶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예약 손님이 있었다. 한 시간 후 시술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손을 닦고 있던 중이었다. 누군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길래 얼른 한쪽으로 비켜섰다. 그러고는 핸드타월을 뽑아 젖은 손을 닦았다. 상대는 세면대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자리를 피해주었다. 화장실을 나서는데 작은 발소리가 나를 따라왔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 예약까지는 시간이 여유로웠다. 커피 한 잔을 뽑아 비어 있던 손님용 응접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나를 뒤따르던 이도 커피를 뽑아서 나와 한 칸 떨어진 소파에 자리 잡았다. 나는 편안히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꼬았다. 실내에 감도는 잔잔한 피아노곡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했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옆자리에 앉았던 여인이 내 쪽으로 몸을 틀어 바라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내게 말을 걸고 싶은 듯했다. 자세를 바로 하고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결국 망설임이 결단으로 바뀌었는지 그녀가 내게 물었다. "아가씨, 혼인은 했나요?" 나는 엉뚱한 질문을 받고 눈동자를 굴렸다. 여인은 자기가 내뱉고도 실수라 생각했는지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녀는 나를 처음 보자마자 내가 결혼도 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 말끝에 여인이 울컥 슬픔을 토해내며 울기 시작했다. 약간 당황했지만, 사실 몇 차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나는 티슈를 뽑아 그녀에게 내밀었다. '나의 어떤 면을 보고 저들은 자신의 슬픈 기억을 복기하는 걸까?' 나는 그녀 옆에 앉아 끄집어냈던 상처의 피가 멋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계속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웃는 입가가 자기 아들을 닮았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또 울까봐 얼른 입꼬리를 내려뜨렸다. 여인은 1년 만에 아들을 입에 올려본다고 했다. 그녀는 '아들'이란 단어를 발음하며 다시 목이 메는지 억지로 커피를 한 모금 삼켜 목에 걸린 슬픔을 내려보냈다. 숨을 돌린 여인이 후회 어린 독백을 시작했다.
그녀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산가에게 시집을 갔다. 슬하에 남매를 두었는데 아이들은 영특했고 성실했다. 그녀의 가정은 모자란 게 하나도 없는 완벽함 그 자체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자만에 빠져 거만한 사람이 되어 갔다. 남편의 사업은 계속 승승장구했고 아이들은 명문 대학에 합격했다. 속상한 일을 억지로 만들려 해도 만들어지지 않던 시기였다. 그녀에게 최고의 기쁨은 역시 자녀들이었다. 아이들은 부모를 존경했고 실망을 준 적이 한순간도 없었다. 유대감도 각별해 아이들에 대해 그녀가 모르는 비밀이 없었다. 남매간에 나이 차이가 있어 우애도 깊었다. 상냥하고 마음 여린 큰딸이 대학 4학년 때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고백했다. 딸은 남자 친구를 이야기하며 사랑에 빠진 사람이 으레 그러하듯 수줍어했다. 상대는 같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으로 진중하며 다정한 성격이라 했다. 성적도 우수해 4년 내내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딸이 남자 친구를 사귈 정도로 성장했다는 감회에 젖어 잠자코 딸의 이야기를 듣다가 무심코 군대는 다녀왔냐 물었다. 그러자 신나서 떠들던 딸이 주춤하더니 입을 다물고 눈치를 살폈다. 의문 섞인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딸이 말했다. 남자에게 장애가 있다고. 그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청소년기에 실명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해 재활하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녀는 딸의 이야기가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제정신이냐고 소리를 치고 관계를 당장 정리하라 꾸짖었다. "너 미쳤어? 눈먼 장님이 감히 누굴 넘봐." 딸은 모친의 거친 반응에 충격을 받은 듯 꼼짝하지 않더니 처음으로 엄마를 향해 대들었다. 여태껏 공정하고 자애로운 부모를 존경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소리치고 집을 뛰쳐나갔다. 그날부터 딸과 서로를 비난하며 전쟁을 치렀다. 결국 그녀가 이겼다. 그때부터 완벽했던 가정에 균열이 갔다. 관계는 회복된 듯 싶었지만 자녀들과 알 수 없는 거리감이 생겼다. 누이와 엄마의 분란을 옆에서 지켜본 탓이었을까? 아들은 대학에 입학해서도 연애를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자녀들이 가정을 꾸릴 나이가 되었다. 그녀의 아들은 작년에 부모가 정해준 여성과 선을 봐 결혼했다.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던 월요일, 그는 출근길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여 유명을 달리했다. 아들의 나이 겨우 서른 살이었다. 세상에 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금도 믿을 수 없다는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다시 목이 멧다. "아들을 잃고 나는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남의 소중한 아들을 아프게 했던 죄가 돌아온 거라 여겼어요." 나는 그녀가 평생을 자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갈 걸 알았다. 그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에 없는 위로도, 쓸데없는 참견도 필요치 않다고 여겼다. 때마침 여인의 딸이 엄마를 모시러 왔다. 그녀의 딸은 어린 아기를 안고 있었다. 갓난아기가 어미 품에서 옹알이를 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여인이 아기 손을 내 손에 대주었다. 조그마한 손이 내 검지손가락을 온 힘껏 움켜쥐었다. 그 감각이 너무나 경이로워 나는 진심으로 미소를 지었다. 여인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단 걸 알았다. 나는 일부러 더 환히 웃었다. 그녀가 내 얼굴에서 찾은 것은 아들의 그림자가 아닌 숨겨놨던 죄책감이었다. 글 조승리(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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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과 음악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안녕하세요
동길짱 님 !
다녀가신 고운 흔적
멘트 감사합니다~
일교차 큰 환절기,,
건강과 보람으로 미소짓는
행복한 나날들보내세요
~^^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고운 방문길 흔적
감사합니다~
결실의 계절인 10월,
소중한 주변 사람들과
따뜻하고 즐거운 시간
나누시고 풍성한 기쁨이
함께하길 기원하겠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반갑습니다
사랑천사 님 !
다녀가신 고운 걸음
감사합니다 ~
시원한 바람과
맑은 하늘이 함께하는
10월을 맞이합니다 ~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이 가득한 한 달
되시길 소망합니다 ~^^
긴 글 잘받습니다
9월 마지막 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안녕하세요
아름다운풍경 님 !
다녀가신 고운
멘트 감사합니다 ~
일교차 큰 환절기,,
건강과 보람으로 미소짓는
행복한 10월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