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이여!
몇 년 전만 해도 오빠 소리를 들었다. 그때야 오빠가 당연했다. 그러기에 별 감흥 없이 들었다. 그러나 몇 년 후 어느 날, 일이 있어 농협에 갔었다. 번호표를 뽑아 들고, 내 차례가 되어 창구 앞에 앉았다. 예쁜 직원이 날 보고 아버님이라 한다. 내가 잘 못 들었나, 혹시나 하고 뒤를 힐끔 봤다. 아무도 없었다.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당연한 듯 그렇게 불렀다. 놀라운 일이었다. 어제의 오빠가 오늘은 어르신이다.
마음이 묘했다. ‘내가 벌써?’ 말도 되지 않는 호칭을 들어야 하나? 그렇게 늙어 보였나. 어쨌든 어딜 가도 그렇게 불러준다. 이젠 그 호칭이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하지만, 내 가슴엔 젊음이 꿈틀거리고 있는데, 주름은 언제 졌는지 할배가 되어야 했다. 정말 할배 반열에 올라야 하는가, 국민학교(당시 명칭) 동기들을 만나면 아이 적 시절로 돌아가, 지난 일들로 한 바탕 웃음 짓고 동심을 안고 오는데, 어딜 가나 아버님, 어르신이다. 그런 인사를 받으니 그리 즐겁지가 않다. 아, 옛날이여, 옛날이 그립다.
한편, 할배 같기도 하고, 아재 같기도 한, 나 같은 사람을 뭐라고 부를 것인가. 아저씨보다는 오래됐고, 그렇다고 한때 유행했던 사장님도 맞지 않고, 회장님은 말도 안 되고, 학교 선생님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냥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면 무난할 것 같다. 옛날 길에서 “사장님”하고 부르면, 다들 뒤돌아보는 것과 같이, 이제 “선생님”하면, 똑같이 그럴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참으로 적합한 호칭이 없다. 생각해서 높여 불러주는, 좀 무거운 호칭이지만, 가끔은 ‘어르신’이 그래도 무난할 것 같아 보인다.
난 지금 노인 군번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젊은이는 될 수가 없다. 마음이야 한창이지만, 몸이 따라가지 못한다. 몸 따로 마음 따로, 따로 국밥이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옛날엔 상상도 하지 못한 변화로 가끔은 깜짝깜짝 놀란다. 오히려 한적하고 느리게 흘러갔던 지난 세월이 그립기도 하다. 추억은 그렇게 배반을 한다.
한편으로 노인이 되어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어릴 땐, 감히 이런 세상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구경도 못해 본 통조림에, 두루마리 화장지에, 미국인이 까먹던 귤 하며, 하나에서 열까지 궁핍해서 불편했던 시절이었다. 고생만 한 조상들이 맛보지 못한 편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은 급하게 변한다. 의식주 모두가 상상 이상으로 발전에 발전을 하고 있어, 상품들로 빼곡한 수퍼나 e 마트에 가면 별에 별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하도 많은 것을 봐서 그런지, 무덤덤하다. 특히 먹을거리가 그렇다. 입맛은 그대로인데 딱히 먹고 싶은 게 없다. 집에서 먹는 밥 한 그릇이면 족해서 그럴까, 아무튼 풍요로운 마음이 식욕까지 변하게 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돈만 생기면 구멍가게로 직행했다. 「또 뽑기」나 「눈깔 사탕」 하나면 군것질로는 최고였다. 두 개 살 돈이 없어서 한 개만 사서, 내가 좀 빨아 먹다가 동생 입에 넣어주고, 그러다가 또 내 입에 넣고 하면서 지냈다. 지금은 널린 게 과자고 매장에 깔린 게 먹을거리다. 옛사람들이 와보면 뭐라고 할까 궁금하기도 하다. 이젠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고, 눈이 행복하다. 그렇게 먹고 싶었던 과자들과 먹을거리들이 이젠 애타게 먹고 싶지 않다. 풍족하면 그렇게 되는 것일까, 천지간 변하지 않는 게 없지만, 믿음과 사랑만은 변함이 없어야 한다. 끝.
첫댓글
아이고, 그냥 생각나서 써 봤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