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억 웃도는 '대권 명당' 풍수지리로는 평범한 터"
남들 시선 받을까 걱정들어와 살기엔 부담돼"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은 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과 일부 동산을 제외한 재산 331억4200만원을 재단법인 청계에 출연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31-119번지에는 매일 구경꾼들이 몰린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에서 퇴임할 무렵부터 작년 2월까지 20개월 동안 살았던 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 부부가 청와대로 옮긴 뒤로 이 집은 18개월째 빈집으로 남아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한옥 밀집지인 북촌(北村)에 있는 이 집은 이 대통령의 재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세입자'였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공개된 대통령의 재산 내역에는 이 집의 전세권 7억원이 명기돼있고 대지 333.9㎡(101평)에 건물 175.2㎡(53평) 규모라고 돼 있었지만, 집주인은 "대지 423㎡(128평) 규모가 맞다"고 했다.
- ▲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전세로 살았던 가회동 31-119번지의 한옥. 집주인이 매매와 전세로 내놓았지만 18개월 동안 아무도 살지 않는 빈 집으로 남아 있다. 오른쪽 사진은 대선 다음 날인 2007년 12월 20일 아침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이 집을 나서고 있는 모습.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이 한옥의 주인은 서울 인사동에서 20년 넘게 D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50)씨다. D식당은 정치인과 문화예술인들이 즐겨 찾는 유명 한식당이다.
이씨는 "10년 전쯤 그 집을 경매를 통해 6억원 남짓한 금액에 사들였다"고 말했다. 100년 가까이 된 고택을 기둥만 놔둔 채 거의 새로 짓다시피 수리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 집을 외국 관광객을 위한 고급 전통여관으로 꾸미려는 생각이었지만 좀처럼 허가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한옥 전문가 H씨는 "그 집은 서울의 전형적인 사대부 한옥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말했다.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된 전통 구조가 아니라 공간 활용에 중점을 둔 현대식 개량 한옥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2006년, 대권(大權)에 뜻을 가진 이 대통령의 눈에 이 집이 띄게 됐다. 집주인 이씨는 "대통령과는 10여 년 전부터 같은 삼청로타리 회원으로서 알고 지낸 인연이 있었다"며 "세를 놓고 난 뒤로 괜히 내가 'MB 애인'이라는 둥 헛소문이 생겨나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강남의 논현동에서 강북의 가회동으로 이사하는 것에 대해 "서울 한옥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역사를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사를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회동이 풍수지리적으로 기(氣)가 좋은 터라서 대선을 앞둔 임시 거처로 삼았다'는 얘기도 있었다.
2007년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 경선에서 승리한 뒤 '진입 골목이 좁아 경호차량의 접근이 어렵다'는 이유로 다른 곳으로 이사할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지만 결국 그대로 눌러 살았다. 그것 역시 '터가 좋으니 옮기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는 말도 돌았다.
과연 그럴까? 김성수 영목풍수지리연구소장은 "가회동 그 집은 평범한 터일 뿐 결코 최고 명당이라고는 볼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뒤가 높지 않고 앞쪽은 낮으며 집이 남향(南向)으로 풍수의 요건을 대체로 갖추기는 했지만 생기처(生氣處)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주자 시절 이곳에서 각종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전통 가옥을 사랑하는 우아한 문화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지난해 2월 "가회동은 제2의 고향이었다"는 말을 남기고 이곳을 떠났다.
집주인 이씨는 대통령이 이사 가고 나서 곧바로 집을 전세와 매매로 내 놓았다. 당시 이씨가 이 집을 50억원에 매물로 내 놓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가격에 대통령 프리미엄이 붙은 것' '대권명당(大權明堂)의 다음 주인이 궁금하다'는 목소리도 생겨났다.
이씨는 "50억원에 내 놓은 적은 없고, 40억원이 좀 넘는 가격인데 주변 시세대로 한 것이지 프리미엄이 붙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살 때 7억원이던 전세보증금에 대해서는 "10억원으로 올렸다가 나가지 않자 8억5000만~9억원 정도로 내렸다"고 했다.
그런데 왜 이 집이 18개월째 팔리지도 않고 세입자가 들어오지도 않고 있는 것일까? 이씨는 "지금까지 30명 넘는 사람들이 집을 보러 왔지만 살 것처럼 관심을 보이다가도 '남들의 시선을 받게 되는 거 아니냐' '안기부(국정원)에서 조사를 받는 것 아니냐'며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부담을 느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의 말은 좀 다르다. 가회동 D부동산 관계자는 "집주인이 처음엔 50억원을 불렀다가 40억원까지 내렸고, 매매가 체결되려면 또 값을 올리는 식으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바람에 팔리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 골목의 다른 집의 시세는 평당 2500만~3000만원 정도인데, 집주인이 내 놓은 가격(평당 3100만~3900만원 정도)은 아무래도 좀 비싸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재산이 공개될 때까지도 이 집에 대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집주인 이씨는 "여유 자금이 없어서 그랬던 것인데 4월에 모두 돌려 드렸다"고 말했다.
이씨는 Why?가 취재에 들어간 직후인 22일 돌연 "집을 팔지 않고 아예 우리가 거기 들어가 살기로 어제 저녁에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9월쯤에 입주한 뒤 음식공방이나 요리연구실로 만들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