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0일 82세 되신 저의 친정어머니께서 소천하셨습니다.
간경화 증상이 조금 있으셨지만 수치상으로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계셨고
병원에서도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오셔서 체크 받으시면 되시겠다고
진단 받은 상태였습니다.
일상생활을 하시는데 불편함이 없이 생활하고 계셨는데
말씀 교제가 있어 동역자 분들과 교제중이었던 그 날
동생들로부터 엄마가 집에서 쓰러지셨는데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동생들은 물론 저도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실감이 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장 선한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며
망연자실해 있는 동생들을 위로하며 우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래서 주께서 지난 2~3년 동안 친정어머니에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그렇게 집중적으로 섬기게 하셨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권사님으로 교회에서도 늘 사역의 중심에 계셨지만
성령님과 동행하며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시는 믿음은 아니셨습니다.
지난 2~3년 동안 전화를 통하여 보통 30분에서 1시간 정도 말씀을 전하게 하셨는데
엄마는 지금 신부대기실에 계시는 것이며 신랑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손을 잡고
곧 결혼식장으로 들어가야 하는 바로 그 지점에 계시다는 것을 늘 저로 하여금
말씀 드리게 하셨습니다.
평소 어머니는 건강하시고 일상에서도 아무 부족함이 없으셨기에
처음에는 말씀의 물이 깊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점차 아멘으로 화답하시면서 차후 육체의 연약함에서 오는 불안감까지도
담대함과 평강으로 이기시며 점차 믿음이 뿌리내리는 심령으로 변화되셨습니다.
이러한 과정중 한 번의 고비가 있으셨었는데
그 때 어머니의 믿음이 완전히 준비되어 계셨음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돌아가시기 전 6개월 동안은 주께서 에스더와 세라를 통해 매일 카톡으로
말씀 한 구절과 더불어 일상을 전하며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3~4일 전 에스더를 통해
이제 메세지를 그만 보내도 된다는 마음을 주셨고
전도사님을 통해서도 다 되었다는 마음을 동시에 주셔서
문자 메세지를 중단하게 되었는데
뒤이어 돌아가시게 된 상황이 발생이 되는 것을 보며
이미 예비된 상황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랑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한 신부단장이 끝난 어머니를
바로 데려가셨구나! 깨달아 졌습니다.
목요일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 토요일에 저희가족이 모두 찾아가려고
전화를 드렸지만 엄마는 건강히 잘 지내고 있으니
너는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 일 열심히 하라고
하시면서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연로한 어머니가 입원도 하시고 몇 차례 응급실을 다녀오시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너는 올 생각 말고 하나님 하라고 하신 일을 열심히 하라고
늘 그렇게 말씀을 주셨었습니다.
저도 사역이 없을 때는 쉬어야 될 정도로
올 1년은 몸의 컨디션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기에
그것을 아신 어머니께서 저를 배려하시면서
사역에 올인 할 수 있도록 도우신 말씀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어머니의 소천하신 모습을 확인하고
먼저 와 있던 동생들과 함께 장례절차를 의논하였습니다.
시기가 코로나 2.5단계 였기에 일단 문자로 지인들에게 부고 소식은 알리고
전화로 알려야 될 분들에게는 가족들과 조용히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는 말씀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저녁 늦게 병원에 도착하게 되었고 발인은 새벽 5시 30분으로 정해져
실제적으로 조문객들을 맞이할 시간은 하루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쓸쓸한 장례식장이 될 것이라 예상을 했고
이러한 상황에 오실 분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부고 소식을 들으신 분들이 믿기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시간 간격을 두고
한 분 혹은 두 분씩 늦은 시간까지 많은 분들이 오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장례식장이 분잡스럽지 않다보니
오신 분들에게 엄마가 어떻게 믿음으로 죽음이 준비되도록
인도해 주셨는지를 간증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조문객들이 오지 않는 시간에는 동생들에게도 그 동안 엄마를 섬기며
주께서 주신 말씀들과 더불어 동생들을 위로하는 말씀을 전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장례식장은 저희 가족 외에는 돌아가신 분이 없었기에 조용히 교제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말씀 잔치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장지도 결정된 바가 없었지만 장례식장에서 담당자가 소개해 주는 곳을 듣던 중
저도 모르게 경기도 광주 쪽에는 없는지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휴 추모공원”이 있다고 하여 알아보니 저희 센터 3층에서도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고 진행 절차도 매우 순적히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발인 날 추모공원에 도착해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전망이 좋은 추모공원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담하면서도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예비해주신 주님께 오직 깊은 감사의 고백만을 올려드렸습니다.
장지로 떠나는 날 비가 내려 수목장으로 바로 진행할 수가 없어
납골당에 유골을 임시로 안치하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납골당에서 느껴지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지대가 높아 그 곳도 정말 밝고 아름답고 전망이 좋은 곳이었습니다.
2~3일 지난 후 수목장으로 안치하게 되었는데
어머니의 유골을 묻기로 한 곳에서 바라본 경관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 같았습니다.
그 날은 더구나 화창한 날씨여서 광주시와 경안천이 굽이굽이 흐르는 전망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습니다.
장례비용 일체도 부족함 없이 채워주셨고
발인하면서 바로 수목장으로 안치하지 않고 이렇게 쉼표를 갖고
장례절차를 치르도록 인도해주시는 그 모든 과정에 감사드렸습니다.
쉼표를 갖게된 것으로 인해 동생들에게는 경관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셨고
센터에서도 11분 거리임을 알게 하심으로 정말 좋은 곳을 허락해 주심을
다시금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수목장으로 장례의 모든 절차를 마친 그 날도 동생들과 조카들 모두
센터에 와 함께 식사를 하며 교제하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전도사님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함께 들으며 기쁘고 감사한 교제가 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결정해야할 남은 사안들이 있었는데
모두 화목하고 순적하게 진행이 되도록 인도해 주셨습나다.
언제든 추모공원에 오면 센터에 들르라는 말을 전하며
교제의 시간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돌아가고 난 다음 전도사님께서
주께서 어머니의 장지를 센터와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하도록 인도해 주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막벨라 굴을 허락하여 주셨던 것처럼
저희 가족에게도 막벨라 굴을 허락하여 주신 것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막벨라 굴이란 예수그리스도 그 분이 계시는 궁극적인 지점으로
우리가 도달해야할 최종 목표지입니다.
동생들의 삶의 방향성이 이제는 그 지점, 믿음의 사람들만이 들어가 안식할 수 있는
막벨라 굴을 향해야 하며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해 믿음의 싸움을 싸우며 나아가는
삶의 모든 여정을 통하여 모두들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다 되어야 함을 말씀해 주시는 메시지였습니다.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저희가 섬겨야 하며
어머니의 소천으로부터 비로소 시작되었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향한 계획과 모사는 신비롭고 경이로우며
인간의 생각으로 감히 상상해 볼 수도 없는 절대적 주권의 영역임을
다시금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어머니의 소천을 통해 크고 놀라운 깨달음과
더 깊은 말씀의 깊이를 열어주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어머니가 천국으로 입성할 수 있도록 모든 여정을 친히 도우신 성령님과
주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찬송하며 경배합니다.
더불어 장례절차에 함께 해주신 모든 동역자 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선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영혼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의롭고 한량없으신 은혜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