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편지」
-노고할미, 노고할미여!
날이 좋아서 눈이 와서 구름이 좋아서 복주머니꽃이 함박꽃이 지리터리꽃이 물매화 꽃이 피어서 아이들이 와서 친구가 와서 노고단에 간다. 일 년에 몇 번 설렁설렁 다니던 노고단을 한 달에 몇 번씩 다니기 시작한 것은 구례로 이사를 하고부터다. 10년 동안 한 200번쯤 올라 돌탑 위의 노고할미께 인사를 올리고 소원할 일이 있으면 부탁을 드리고 위안을 삼곤 했다.
지난 5월 19일 날은 구례에 내려온 막내아이와 둘이서 노고단에 오르며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이야기 중의 하나가 노고할미에 대한 시나리오를 써서 AI영화 공모전에 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란다. 노고단에 올라 노고할미에게 당신 이야기를 썼으니 잘되게 해달라고 인사를 하라고 아이에게 권했었다.
그런 일이 있고 까맣게 잊었었는데 8일 후에 노고단 돌탑 앞에 다시 서니 그 일이 생각나서 나도 공모전 결과가 좋기를 노고할미에게 소원하였다. 산을 내려와 피곤하여 일찍 잠이 들었는데 밤늦은 시간 아이의 전화가 왔다. 공모전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우연이겠지 하면서도 전율이 느껴졌다. 내가 노고단에서 노고할미에게 소원하였던 한 시간 뒤에 공모전 선발 발표를 한 것이다.
노고할미!
신라적부터 나라의 큰일이 있으면 제를 올리고 당신 앞에 머리를 조아리던 성모이신데 지리산 주능선 중에 가장 가까이 내려와 뭇 생명을 품어주고 고하는 작은 소리 하나하나까지 귀 기울여 주는 노고할미를 내 어찌 사랑하지 않겠는가!
-섬진강 /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