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연금은 제자들이다.”>/구연식
나에게는 연륜이나 사회적 삶 그리고 심성(心性)이 큰 누님 같은 팔순이 넘으신 교육계 선배이신 H 여선생님이 계신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물욕(物慾)보다는 베풂이 몸에 배고 생활화되어 삶의 철학으로 굳어져 있다. 서울에서 부유한 가정의 독실한 기독교 집에서 태어나 물질과 정서가 풍요한 집안이라 몸도 마음도 반듯하게 성장하셨다. 그래서 매사(每事)는 성경 구절에 따라서 정하고 행동하셨다.
어느 날 누님 교사와 안부 전화 중에 “구 선생 나에게 평생 연금은 제자들이다.”라고 하신다. 얼마나 교직에 대한 애착과 평생 살아오면서 가꾸어 온 수확물 중 하나를 자신 있게 번쩍 들춰낸 금자탑(金字塔) 일까! 순간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찡했다. 이것이 국가 백년대계의 동량(棟梁)들을 길러낸 무명 교사의 숭고한 땀의 결실이라, 생각할 때 나의 일천(日淺)한 교직 사명감을 돌이켜 보니 부끄러움이 앞서면서 H 누님 교사를 그간 지켜본 주마등(走馬燈)의 잔재들을 간추려 보려 한다.
누님은 서울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E여대학교에는 생물학과를 S여대학교에는 가정학과에 합격했다. 무슨 운명의 나침판 계시인지 아버지는 제2 성직자인 교사를 적극 권장했다. 그래서 S여대 가정학과에서 교직과목을 이수하면서 교사의 길을 수학(修學)했다.
그런데 운명의 퍼즐 맞추기가 은연중 실시되고 있었다. 같은 학과 클래스메이트 중에 전라도에서 유학(遊學) 온 친구가 있었다. 졸업 무렵에 자기 집에 놀러 내려가자고 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전라도 친구 집에 갔다. 그런데 어느 종가 집처럼 식구가 꽤 많이 모였다. 알고 보니 누나를 친구 오빠의 색싯감으로 공개 선뵈는 자리였다. 등치에 어울리지 않게 여린 성격이라, 순간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콩닥거려 낯선 곳에 엄마 따라간 어린애처럼 친구의 치맛자락을 잡고 앉아 있었다.
많은 식구들의 시선을 주체할 수 없어 묻는 말은 속에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눈치를 보니 식구들 모두는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언제 준비했는지 전라도 한식 8첩 반상이 방으로 들어왔다. 누님의 식성을 보는지 여전히 식구들의 시선은 집중됐다. 모두 다 먹어 보고 싶었지만, 앞의 반찬만 먹고 있으니 시어머니 될 분이 먼데 반찬을 앞으로 옮겨 준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상경 길에 친구는 누나의 마음을 다독거리고 기분전환을 위해서인지 공주의 갑사(甲寺)를 들렀다. 그때까지도 계룡산 정상의 쫑긋쫑긋 솟아오른 닭 볏처럼 누나 가슴의 두근거림과 얼굴의 열꽃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도 인연이 되려는지 친구 집 가족들은 화목하고 모두 다 좋은 분 같았다.
여자대학교 가정학과 졸업생은 1960년대에는 현모양처(賢母良妻) 정통 교육과정 이수자로 최고의 며느릿감이었다. 그렇게 해서 친구 오빠와 결혼하게 되어 친구에서 시누이와 올케 사이로 바뀌게 되었다. 그 후로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둘이나 낳아서 시댁 어른들께 안겨 드리니 시댁에는 하하 호호 웃음이 그칠 줄 몰랐다. 그 당시 시어머니는 지방에서는 최고급 한식 대형음식점을 운영하고 계셨다. 손자 2명이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시어머니 음식점을 돌봐 주며 중학교 입학하면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꿈에 그리던 교사가 전라도에서 합격하여 출근하게 되었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집안일은 소홀히 해도 학교 일은 최선을 다하도록 하라고 육아를 돌봐 주셨다.
출근하면 학교에서 학생들과 하루해를 보내는 것이 너무 짧을 정도로 보람 있고 즐거웠다. 퇴근 후에는 아이들을 돌보며 시어머니 일을 도와주는 것도 신혼생활과 같이 묻혀 그리도 좋았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두 아들은 서울에서 대학교를 졸업 후에 취업과 결혼하여 잘 살고 있다.
학교에서도 어느덧 세월이 흘러 누나도 중견(中堅) 자리에 들어섰다. 교직에 들어오기 전에는 성경 말씀을 실천하는 삶이었다면, 교직의 입문 후에는 성경과 페스탈로치의 교육사상을 교육 현장에서 실천하는 삶이었다. 특히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에게는 관찰의 눈길을 소홀히 하지 않고 지속적 상담과 학생 몰래 학비 대납 등 늘 토렴해 낸 손으로 학생들을 다독거려 주면서 어머니처럼 안아주셨다. 대학 시절 교육학에서 많이 인용되었던 <페스탈로치의 교육학>과 특히 그의 저서 <은자의 황혼>은 교육 현장에서 교육과 종교를 결부시킨 참스승의 실천 길임을 깊이 인식하였다.
그래서 누나에게 찾아온 관리자(管理者)의 연수 선택 기로(岐路)에서도 서슴없이 평교사의 길을 천직으로 알고 교실에 남아서 정년을 마쳤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전국과 외국에서 모인 기수별 제자들과 카네이션 향기 속에 파묻혀 어느 제왕 부럽지 않다고 한다. 물질과 관료 사상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숨어서 유리 조각을 줍던 살아있는 페스탈로치 여교사가 아닌지 고개 숙여진다.
언제인가 퇴직 교사들이 우연히 누님 댁을 방문한 적이 있다. 벽 한쪽에 걸려있는 ‘헨리 반 다이크’의 <무명 교사의 예찬> 족자(簇子)가 살짝 열어놓은 창문 바람이 흔들어 달그락 소리를 내면서 눈에 띈다. ∼위대한 장군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나,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무명의 병사이다. 유명한 교육자는 새로운 교육학의 체계를 세우나 젊은이를 건져서 이끄는 자는 무명의 교사로다. 그는 청빈 속에 살고 고난 속에 안주하도다.∼를 클로즈업하듯 바람은 더 세게 달그락 치면서 읽게 한다.
지금도 누나 집의 탁자 위에는 성경책이, 벽에는 ‘헨리 반 다이크’의 <무명 교사의 예찬>의 시구가 아른거려 누님의 “나의 평생 연금은 제자들이다.”를 다시 한 번 상기하면서 누님의 참 교육 실천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