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의 최고봉 )
2월 24일 희생의 즐거움
고후 12:15 “내가 너의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으실 때 우리의 마음은 다른 사람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과 일치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애착에 따라 사역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시험하는 최대의 시험입니다. 희생의 즐거움이란 나의 “친구(예수님)”를 위하여 나의 목숨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단번에 목숨을 내던진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주님 및 주님이 관심을 가지신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나의 삶을 내려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단 한가지 목적만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였습니다.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을 믿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사람들을 자신이 아니라 주님께로 사로잡히게 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사람이 하나님과 홀로 거룩한 삶을 살겠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멀리 떠나 있으면 그는 그의 동료들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이는 사람이 다니는 길에서 벗어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멋지게 동상으로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디를 가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삶을 맘껏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사람을 쓰실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예수님께 헌신되었다는 뜻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울의 삶은 예수님만을 위하여 헌신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분을 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신발 떨이개”가 되는 비결을 안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헌신하기 보다 우리를 영적으로 자유하게 해 준다는 여러 견해들에 헌신하기 쉽습니다. 바울의 헌신의 동기는 그러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동기는 예수님과의 사랑이었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들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 너무 거칠고 과장된 표현일까요? 사랑에 빠진 자라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과장이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랑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희생의 기쁨 The Delight of Sacrifice
The Delight of Sacrifice By Oswald Chambers
I will very gladly spend and be spent for your souls… —2 Corinthians 12:15
Once “the love of God has been poured out in our hearts by the Holy Spirit,” we deliberately begin to identify ourselves with Jesus Christ’s interests and purposes in others’ lives (Romans 5:5). And Jesus has an interest in every individual person. We have no right in Christian service to be guided by our own interests and desires. In fact, this is one of the greatest tests of our relationship with Jesus Christ. The delight of sacrifice is that I lay down my life for my Friend, Jesus (see John 15:13). I don’t throw my life away, but I willingly and deliberately lay it down for Him and His interests in other people. And I do this for no cause or purpose of my own. Paul spent his life for only one purpose— that he might win people to Jesus Christ. Paul always attracted people to his Lord, but never to himself. He said, “I have become all things to all men, that I might by all means save some” (1 Corinthians 9:22).
When someone thinks that to develop a holy life he must always be alone with God, he is no longer of any use to others. This is like putting himself on a pedestal and isolating himself from the rest of society. Paul was a holy person, but wherever he went Jesus Christ was always allowed to help Himself to his life. Many of us are interested only in our own goals, and Jesus cannot help Himself to our lives. But if we are totally surrendered to Him, we have no goals of our own to serve. Paul said that he knew how to be a “doormat” without resenting it, because the motivation of his life was devotion to Jesus. We tend to be devoted, not to Jesus Christ, but to the things which allow us more spiritual freedom than total surrender to Him would allow. Freedom was not Paul’s motive at all. In fact, he stated, “I could wish that I myself were accursed from Christ for my brethren…” (Romans 9:3). Had Paul lost his ability to reason? Not at all! For someone who is in love, this is not an overstatement. And Paul was in love with Jesus Christ.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고린도후서12:15)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은 바 되면 (롬5:5), 우리는 예수님이 다른 사람에게 쏟으시는 관심을 내 것으로 품게 도비니다. 주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깊은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섬김의 길에 선 우리는 이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을 권리가 없습니다. 사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시험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희생의 기쁨은 나의 삶을 친구이신 예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내던지는 것이 아니고 주님과 주님이 관심을 두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정성을 다해 기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때 나는 나의 주장이나 목적을 추구하려 들지 않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오게 하는 목적에 인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언제나 예수님께 이끌렸고 자신에게 끌리지 않았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고린도전서9:22)
거룩하기 위해 하나님과 단둘만 있으려고 하면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는 자신을 주위로부터 격리하여 대좌 위에 올려놓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거룩한 사람이었지만, 어디에서나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사용하시도록 했습니다. 많은 사람은 자신의 목적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기 때문에 주님은 그들을 쓰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온전히 주님께 몰입했다면 다른 목표를 품지 않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헌신이 삶의 모든 동기가 되었기 때문에 조금도 화내지않고 다른 사람들의 신발털이개가 되는 것을 터득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기 보다는 우리를 영적으로 해방시켜 주는 그 무엇에 헌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동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동족을 구원할 수 있다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그것을 택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분별력을 잃고 과장하고 있습니까?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