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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출 3: 7-8, 12
<서언>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살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모세에게 사명을 주었습니다.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사명을 부여하면서 하셨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계획을 통해서 영적인 이스라엘인 우리에 대한 계획과 목적도 알 수 있습니다.
<본론>
1. 애굽에서 구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7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고 했습니다. 9-10절에도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살면서 그 수가 남자 20~60까지만 해도 60만명 가량이 되었습니다. 애굽의 바로왕은 소수 민족이 수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잔해하기 위해 박해했습니다. 매일 국고성을 쌓는데 강제노동을 시켰습니다. 흙이기기와 벽돌굽기를 시켰는데 심지어는 짚도 주지 않고 정한 수의 벽돌을 굽게 했습니다. 그래서 수가 늘어나자 아들을 낳게 되면 조산원을 통해 죽이게 했습니다. 그 일도 실패로 돌아가자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에 빠트려 죽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너무 고통스러워 비탄에 빠졌고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계셨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려 했습니다. 우리도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그런 고통의 상황에서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보고 계시고 부르짖음을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가운데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 사단과 죄와 우상과 세상의 풍속 습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건져 주실 것입니다.
2.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8절에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 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17절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물으면 하나님이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게 할 것이라고 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인도해 내는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가나안 땅 곧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려 했습니다. '젖'은 양이나 염소 등 짐승의 젖입니다. 젖이 흐르는 땅이라는 것은 목축이 잘되는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꿀'은 종려나무 열매의 꿀입니다. 이 꿀은 벌 꿀로 생각하기 보다는 종려나무 꿀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이 지역에는 벌 꿀보다는 종려나무 꿀이 많이 사용됩니다. 종려나무는 대추야자나무라고도 하는데 대추처럼 생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추보다는 훨씬 큽니다. 이스라엘 지역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가운데 하나는 종려나무인데 그 나무에 달린 열매는 영양분이 많아서 금식기도 마친 사람들이 많이 먹기도 하는데 먹으면 설탕에 재어 놓은 젤리처럼 굉장이 달고 맛이 있습니다. 그 열매로 꿀을 만들기도 합니다. 종려나무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것은 농사가 잘되는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은 목축과 농사가 잘되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 땅은 애굽 땅에 비하면 비를 금방 흡수해 버리는 척박한 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권고하는 땅입니다. 신명기11:11-12에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에 맞춰 내려 주어 풀이 잘 자라 목축이 잘되게 하고 나무가 잘 자라 농사가 잘되게 하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신명기11:14에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상황도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섬길 때 우리에게 적당한 은혜를 주어 풍요를 얻게 할 것입니다. 영적인 양식인 하나님 말씀을 풍성히 깨닫게 할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풍성하게 하고 성령의 은사가 풍성하게 나타나게 할 것입니다.
3.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12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18절에 보면 바로왕이 이유를 물으면 광야에 나가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기 위함이라고 하도록 했습니다. 19:6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에는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서 궁극적으로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섬기리니'(히.아바드)는 예배한다는 의미입니다. '희생'(히.제바흐)은 제사를 의미합니다. '제사장'(히.코헨)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중보 사역을 한 직책을 말합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므로 그 죄를 사함받기 위해 하나님께 제물을 가지고 모면 그 제물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한다는 것은 이방 족속이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하는 위치에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아 번영하게 되므로 열방 민족이 이스라엘을 흠모하여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왕 때 스바왕이 이스라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간 사건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왕상10:4-10, 대하9:1-19).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를 영적인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벧전2:9, 계1:6).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광받으실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많은 믿지 않는 사람이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미전도 종족들이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결언>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삶에서 느끼는 고통의 문제에서도 건져 주실 것입니다. 영적인 고통에서도 벗어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것 같은 풍성한 복을 주실 것입니다. 영적인 양식인 하나님 말씀의 깨달음과 성령의 감동이 더욱 풍성하게 하여 영적인 만족도 얻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믿지 않는 사람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지역과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까지 선교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입니다. 거꾸로 우리에게 선교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는 목적과 계획을 가지셨기 때문에 반드시 모든 어려움에서 건지시고 풍성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찬양> 여호와 나의 목자 G
해방의 의미와 목적
(출애굽기 3:7-14)
금년 8.15는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6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민족은 주권상실이 얼마나 우리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역사를 왜곡시키는지에 대해서 피부로 직접 경험한 백성들입니다. 꽃다운 나이로 전쟁터에서 짓밟힌 우리 정신대 할머니들, 청년의 모습으로 군대에 갔다가 끝내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사할린에서 외롭게 살고 있는 할아버지와 우리 형제 자매들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우리 가운데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압제의 설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국가의 주권과 자유가 짓밟힐 때, 비참한 결과들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체험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여정 속에도 나타납니다. 질병이 우리의 생각을 구속할 때도 있고, 습관이 우리를 구속할 때도 있습니다. 또 죄를 짓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은 자유 상실과 얽매임의 연속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고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의 고통과 역사를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구체적으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고, 궁극적으로 승리로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과 아픔을 아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고통과 아픔을 아셨던 하나님은 구속과 굴레 속에 살아가며 고통스러워 우리도 역시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요셉을 통해서 애굽이 가뭄으로 위기일 때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은 그들을 430년 동안이나 노예로 구속하였습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백성들의 아픔을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할 때,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았다’는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픔과 고통을 마음으로 같이 감당하며, 아픔의 종류가 무엇이고, 무엇 때문인지를 관심과 집중력을 가지고 살펴보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또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라는 말은 정말 귀를 기울여서 신음소리까지 다 듣고자 하는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듣는다는 것입니다. 즉 단순히 알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행동을 전제로 한 앎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형편과 사정에 맞게 우리의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하시고 받아들이십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때, 주님께서는 나를 저주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길까 진지하게 고민하시다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고통 중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 아픔을 아신다고 말씀하셨고, 울부짖는 신음소리를 들으셨다고 하셨고, 아시고 찾아오시고 구원하실 계획을 분명히 갖고 계신다는 말씀에 새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주님께서는 악재 속에 눌려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사람과 환경과 시대를 초월해서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오늘 너희들의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어줄게’라고 선포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되셔서 아브라함을 도왔던 것처럼, 이삭과 함께 했던 것처럼 함께 하시고, 야곱을 용서하고 야곱을 붙들어 준 것처럼 오늘 너희에게도 함께하여 도와주리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들을 택하여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죄 가운데 있던 불신자였는데,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여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삭은 유약하고 연약한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끝까지 붙들어서 약속의 자녀로 만들었습니다. 야곱은 장자가 중요한 당시 사회에서 차남이고 인간성도 좋지 않은 야곱을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르셔서 세우셔서 하나님 역사에 아름답게 등장되고야 마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그 하나님이 바로 ‘나’라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은 이스라엘 백성이 대단한 민족이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역사에도 나오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애굽의 노예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이름 없고 별 볼일 없는 너희를 세워 나의 언약 백성으로 삼겠다고 주님은 약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저와 여러분이 과연 구원 받을 만한 자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자격이 없는데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는 것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스러운 노예생활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했습니다. 그런데 애굽 생활이 지긋지긋해서 탈출했는데, 광야에서 그보다 더 큰 일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은 분노하며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할 때 주님의 언약을 믿고 열심히 사는데 응답이 없으면, 기대했던 것이 나타나질 않으면, 오히려 고통과 어려움이 가중되면, 하나님이 없지 않는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의 고통과 어려움에 처하도록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광야생활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과정이 됩니다. 애굽 땅에서 노예의 모습과 습관에 매여 있던 우리를 광야라는 무대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으로 만들어 가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를 가까이 두고 사귐을 갖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이 사귐의 목적을 잃어버리면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그것이 저주가 될 수 있습니다.
해방은 기쁜 날이지만 해방이 일제의 악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에만 초점을 두면, 그 목적이 상실되었을 때, 방종과 다툼, 자기 권력과 권익을 위해서 싸우다 6.25라는 비극을 다시 맛보아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통일이 우리의 최종적인 목적이 되면 통일은 우리에게 큰 아픔을 줄 것입니다. 따라서 통일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적 관점에서 이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시겠다는 뜻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종살이하다가 저 초강대국 애굽으로부터 해방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셨다면 애굽으로부터의 해방은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로 해방의 그 감격스러운 날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그 어떤 나라도 스스로 일본과 맞서서 독립을 이룰 수 있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전혀 이해관계가 없었던 미국을 위시한 연합군이 나서서 아직 검증되지도 않았던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하여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받아내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해방은 정말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던 때에 갑작스럽게 주어졌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 민족의 장래는 하나님의 장중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2. 선배들의 수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모세가 처음에는 자기의 자격 없음과 무능함 때문에 사양하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순종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저 가나안 땅으로의 기나긴 여정을 이끌었습니다. 죽도록 충성한 수고가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 역사를 보면 광복 당시 선배들의 죽도록 충성한 수고가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눈부신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독립투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기독교인이었고, 그 핵심 인물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독립운동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독립협회를 주도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었고, 3.1운동의 선봉에도 기독교인들이 있었고, 33인의 민족대표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으며, 상해임시정부의 모체가 된 신한청년단도 대부분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교회는 당시 미미했지만 독립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빛나는 전통을 가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빛나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가 앞으로 조국 통일, 나라의 번영에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선배들의 빛나는 전통을 이어받아 나라 발전에 앞장을 서야 하겠습니다.
3. 구국기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일제시대에 한국 땅에 놀라운 기도의 불길이 일어났습니다. 1884년 시작된 한국교회에 본격적인 기도의 부흥은 1903년 하디 선교사의 설교를 통해서였습니다.
더 놀라운 부흥의 역사는 1907년 평양의 장대현 교회에서 길선주 장로의 회개를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이 열정이 새벽기도회와 철야기도회를 시작하게 했습니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기도의 전통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런 기도의 운동이 구국기도가 되어 하나님께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부르짖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 민족에게 광복의 축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글쓴이: 엘리야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출 3: 7-15
1910년, 우리나라는 일본의 강압에 의해서 ‘한일합방조약’에 조인한 순간부터 나라 잃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 온 우리 민족에게 시작된 36년이라는 식민 지배는 최대의 국난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의 절망에 처한 우리 민족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과 같은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그것은 일제강점기에서의 해방이며, 압박과 설움과 고통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이 날은 해방을 염원하며 목숨까지도 아깝게 여기지 않았던 수많은 선조들의 기도가 이뤄진 날이며,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자 은혜의 날이며, 축복의 날입니다. 이제 올해로 8·15광복 6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나이로 말하자면, 인생에 경륜이 쌓이고 사려(思慮)와 판단(判斷)이 성숙하여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나이인 이순(耳順)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해방은 이념의 갈등과 전쟁 속에서 완전한 해방을 이루지 못하고 남과 북이 나뉘어 대립한 체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실, 제2의 해방인 남북통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에 오늘, 치욕과 학대와 억압된 생활이었던 애굽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가나안 복지로 향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역사 가운데 운행하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 그리고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광복 60주년의 의미를 되새겨보려 합니다.
부르짖음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430년간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핍박과 탄압으로 고통받는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고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호소를 들으셨습니다(출 2:24-25). 하나님께서는 압제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귀 기울여 들으셨습니다(본문 7절). 그리고 그들의 부르짖음 가운데 함께 하시고, 그들을 인도할 지도자로 모세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면 일제강점기에 억압과 수난을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은 어떠했습니까? 나라의 독립을 위해 무수히 피를 흘리면서도 굳은 절개를 가지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애국하는 기독교인들의 부르짖음이 있었습니다.
1919년에 있었던 3·1 운동의 민족대표 33명 중에 16人이 기독교인(基督敎人)이었으며, 그 해 6월 30일까지 통계자료에 의하면 독립운동으로 투옥된 9,456명 중 기독교인이 21%인 2,033명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서재필, 윤치호, 이승만, 안창호, 조만식, 이상재 선생 등 독립투사들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으며,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기독 인사들이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이같이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나라의 독립을 위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생명을 바쳐 애국한 무수한 기독교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하나님은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불의와 부정직과 부패와 범죄는 갈수록 늘어만 가며, 커져가는 빈부격차와 물질만능주의가 우리의 인격과 환경을 지배하고 있는데,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여전히 서로를 비방하며, 싸우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부르짖어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위해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그 은혜에 감사드리며 하나님께로 눈을 돌려 그분에게만 소망을 두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의 손으로 우리 민족, 우리의 분단된 땅을 고쳐 주시고, 회복시키시며 세계에 복음을 선포하는 횃불로 쓰실 줄 믿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출 14:1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능력과 이끄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으로부터 해방되어 승리의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끝까지 추적하고 따라오는 애굽의 바로 군사들로 말미암아 홍해 앞에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경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육지같이 안전하게 건너게 하시며, 바로의 군대들은 모조리 수장(水葬)시키셨습니다. 이 초자연적인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자들의 보호자가 되시고 함께 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범죄한 사람이나 민족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징계를 하신다는 사실입니다(히 12:5~6).
일제강점기에 미약한 우리 민족의 힘으로 해방을 이루기란 건널 수 없는 홍해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연합군의 승리와 일본의 패배로 우리 민족은 해방 되었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우리 민족은 지도자들의 분열과 부정부패, 사치, 거기에 공산주의 이념과 사상싸움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갔고, 특히 교회는 교권다툼과 교파분열을 일삼으며 사명에 소홀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6·25동란이라는 채찍을 주셨습니다.
전쟁이라는 시련을 통해 하나님께 회개하고 부르짖어 기도한 우리 민족을 하나님께서는 강권적으로 축복하셔서 세계에서 위상을 높이시고 경제성장을 이뤄주셨습니다.
지난 IMF의 시련도 이 민족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에 감사하기보다 사치와 허영, 교만과 거만을 일삼았기에 주신 채찍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도 이 민족이 회개하고 주님 앞에 무릎 꿇어 기도하면 끝까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함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끝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모든 억압을 풀어주시고, 모든 증오도 없애주실 것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은 억압과 착취, 학대 등으로 인해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앞이 안보이고, 역사가 여기서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본문 13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창 15:13 이하), 모세를 택하셔서 죽을 것만 같았던, 더 이상의 희망이 없었던,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상황은 우리 민족에게 희망도 찾을 수 없고, 나아갈 길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으며, 하나님의 역사가 끝난 것만 같은 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희망이 없어 보이는 그 순간 이 땅을 위해 역사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이 민족이 온갖 전쟁과 침략과 고통 속에서도, 모든 부분에서 위상을 세계에 드높일 수 있게 된 것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시고, 지켜주신 사랑과 값없는 축복입니다.
오늘날까지 한국교회가, 역사의 격동과 격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믿음의 선진들의 눈물과 피와 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신앙정신과 숭고한 순교정신이 한국교회의 맥을 이어오게 했습니다.
이에 오늘 우리도 선진들의 뜻을 이어 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먼저, 기도하되, 베옷을 입고, 마음을 찢고, 울면서, 이 백성의 죄를 대신 회개합시다.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루살렘이 훼파되고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앉아서 목 놓아 울었던 느헤미야를 기억하며, 민족을 위해 기도합시다.
이 민족의 앞날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로써만이 만들어질 수가 있습니다.
은혜의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망합니다(시 50:22). 그러므로 지나온 역사를 기억하고, 그 속에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대하 7:14).
이스라엘의 해방이 하나님의 섭리와 주관 속에 이뤄진 것처럼 이 민족이 발전하고 세계의 으뜸이 되는 것, 우리의 소원인 남북통일이 이뤄지는 것도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셔야 가능합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우리의 부르짖음 가운데 함께 하실 하나님께, 우리 민족과 끝까지 함께 하실 하나님께, 우리나라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오늘 “정녕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