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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나는 적은 무리에 속하는가?/ 누가복음 12:22-34
(설교자: 비전교회, 마경훈목사)
지난 화요일(2023년 11월 21일) 중국 선전 유니버시아드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중국을 상대로 3-0으로 승리했습니다. 저는 경기를 직접 보지는 못했고 울산 장례식장에 다녀오면서 유튜브로 음성 중계를 들었고 후에 하이라이트를 봤습니다. 이제 우리 한국 선수들의 기량이 세계적인 수준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중국인 중에 손흥민 선수의 찐팬 한 사람이 중국응원석에서 손흥민선수의 번호가 있는 토트넘의 유니폼을 들고 손흥민선수를 응원했습니다. 중국 응원단은 그 사람 때문에 흥분했고, 어떤 사람은 그에게 물병을 던지기도 했고, 여러 사람이 그를 비난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쏘니를 응원했습니다. 그는 몰매를 맞기도 했지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결국 경찰까지 출동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사람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그의 용기가 대단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상대팀의 선수를 응원했으니 그의 간은 아마도 보통 사람들보다 두 배는 클 것 같습니다. 용기인지 만용인지 모르겠으나 대단합니다.
32절에서 주님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국응원석에서 쏘니를 응원한 사람은 담력이 대단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적은 무리는 아닙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는 다수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언제나 소수에 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믿음의 길이 좁은 길이기 때문입니다(마 7:13,14). 우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고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멸망의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다수입니다. 반면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습니다. 길은 협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문을 찾는 자가 적습니다. 기독교인은 소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적은 무리가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영적 전쟁을 할 때 850:1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는 850명이었고 엘리야는 혼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습니다. 그때 보고하는 장면을 보면 10:2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10명은 불신앙으로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서 부정적이고 불산앙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의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의 반대편에 섰습니다. 단지 2사람만이 하나님 편에 서서 믿음의 보고를 했습니다. 결국 60만:2였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는 다수보다 소수가 하나님의 편에 섰습니다.
진짜신자는 적은 무리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모두 진짜는 아닙니다. 가짜도 많습니다. 요즘은 명품 짝퉁이 많습니다. 짝퉁은 진품을 흉내 내서 진품과 비슷하게 만들지만 질이나 가격에서 진품에 미치지 못합니다. 제가 송파경찰서 경목목사님들과 중국에 간적이 있습니다. 한 목사님이 길에서 명품 짝퉁 시계를 샀습니다. 가격은 1만원인데 모양은 진품과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가 출발하고 곧 시계 침 하나가 툭 떨어졌습니다. 그 목사님은 속상했겠지만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짝퉁도 A급, B급, C급이 있답니다. C급은 한국으로 오기 전에 중국에서 고장이 나고, B급은 한국에 오면 고장이 나고, A급은 모양도 비슷하고 고장도 잘 안 난답니다.
신앙도 진짜가 있고 짝퉁이 있습니다. 성경을 깊이 들여다보면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공존하듯이 신앙도 항상 진짜와 가짜가 함께 공존합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습니다. 아벨의 예배는 진짜였고 가인의 예배는 짝퉁이었습니다.
기도도 진짜가 있고 진짜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세인은 짝퉁 기도를 했고 세리는 진짜기도를 했습니다. 바리새인은 기도를 빙자해서 남들에게 자기의 의를 홍보했습니다. 가짜 기도지요. 세리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국노로 찍혔고 죄인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죄가 크다고 생각해서 사람들로부터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은 바리새인이 아니고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진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과 짝이 되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진짜신앙은 색깔이 분명합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지 않습니다. 성경과 세상의 가치관을 적당하게 섞지도 않습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은 외식으로 자기의 본 모습을 덮지도 않습니다.
다수라고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소수이기 때문에 늘 옳은 것도 아닙니다. 옳고 그른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맞느냐로 따져야 합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경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 소수입니다.
신앙이 진짜가 되고, 그래서 소수가 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다수의 압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주님은 적은 무리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다수의 사람들과 반대 되는 입장에 선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람들, 진짜 성도들은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있고 내가 원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느 편에 서야 할까요? 당연히 하나님 편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적은 무리는 어떤 사람인가를 나누겠습니다. 설교 제목은 “나는 적은 무리에 속하는가?”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나는 적은 무리에 속하는가?”
1. 적은 무리는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주님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아버지의 나라는 천국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천국은 적은 무리가 받게 됩니다. 구원 받는 사람들이 절대로 많지 않습니다.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이 있었을 때의 인구를 적게 잡아도 10억이었는데, 그 중에서 구원 받은 사람은 8명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구원 받은 사람들은 3명뿐이었습니다. 굉장히 소수였습니다. 너무나 적은 숫자입니다.
여러분! Microsoft Bing을 아시나요? 빙은 입력된 정보를 가지고 AI가 스스로 답을 찾아내는 검색엔진입니다. 제가 빙에게 물었습니다. “전 세계 개신교인은 몇 명이고, 그 중에서 거듭난 사람은 몇 명 정도 될까요?” 빙의 대답입니다. “전 세계 개신교인 수는 약 8억 명 정도이며, 이 중 거듭난 그리스도인 비율은 34.2%로 추산됩니다. 거듭난 사람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 빙은 거듭난 사람의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고 했지만 빙의 대답이 얼추 맞다고 가정을 하면 8억 명의 34.2%는 약 2억3천4백만 명 정도입니다. 그 숫자는 지구촌 인구가 약 80억 명이니까 전체 인구의 3%도 되지 않습니다. 빙의 대답대로라면 1,000명 중에 구원받은 사람은 29명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입니다. 천국 갈 사람이 그렇게 적은데 나머지는 어디로 갈까요? 당연히 지옥이죠. 그런데 어쩌면 거듭난 사람들이 이 보다 훨씬 더 적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적은 무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아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적은 무리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2. 적은 무리는 현세천국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에 보면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적은 무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이지만 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려야 할 현세천국을 말합니다.
인도의 선다싱이 네팔에서 선교하다가 감옥에 갇혀서 살인강도들과 한 방에서 지냈습니다. 그는 그 흉악범들을 전도를 했습니다. 예수 믿고 중생하면 몸은 비록 감옥에 있지만 마음은 천국이라고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흉악범들이 전도 받고 진짜 마음의 천국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간수가 그 방의 죄수들을 보니 언제 사형 당할지 모르는데 초조함이나 두려움이 없고 오히려 기쁨이 넘쳐서 모두 천사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간수가 말했습니다. “천국이 따로 없다.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 그 방의 죄수들은 전도를 받고 은혜를 받아서 현세천국을 누렸던 것입니다.
현세천국과 관련된 성경 구절을 보겠습니다. 마 12:28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세상에서 누리는 현세천국입니다. 눅 17:2입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는데 어디에 임했습니까? 우리 안에 임했습니다. 현세천국은 내면적입니다. 롬 14:17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충만할 때 누리며 특징은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현세에서 누려야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렇게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사람들이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광야생활 그리고 가나안 입성과 가나안 생활은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여정을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출애굽은 구원을, 광야생활은 신앙의 연단 받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요단강 건너가 가나안에 입성하는 것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장례식 찬송 중에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는 가사도 있습니다. 가나안에서의 생활은 순서적으로 보면 영원천국을 보여줄 것 같지만 사실은 현세천국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영원천국에서는 영적 싸움도 죄도 없는데 가나안에서의 생활에는 싸움과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생활은 영원천국이 아니라 현세천국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천국을 누리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12정탐꾼 중에 가나안을 누린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던 것처럼 현세천국을 누리는 사람들도 적습니다.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이 되셔서 그들을 통치하시려고 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인간 왕을 요구하여 사울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가나안생활은 늘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세천국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중에서 가나안을 가장 확실하게 누렸던 때는 다윗의 때였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자신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써 일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때에 현세천국을 누린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려면 먼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적은 것입니다. 그래서 현세천국을 누리는 사람들이 적은 것입니다.
3. 적은 무리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22-31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까마귀를 먹이시는 하나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고 이런 사람이 현세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정해봅시다. 삼성그룹의 이재용회장이 우리를 세계 일주에 초대했습니다. 그가 약 1년 동안 우리의 모든 경비를 책임지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경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통비도, 숙박비도, 식대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다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이 비행기를 탈 때마다 비행기 값을 걱정하고, 호텔에 묵을 때마다 호텔비를 걱정하고, 식사를 할 때마다 식대를 걱정한다면 그 사람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 전체를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장 합당하게 안배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겨울이 되면 자선냄비를 하는 구세군을 아시죠? 구세군은 개신교 교파 중에 하나입니다. 구세군을 설립한 사람은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입니다. 그가 80세가 넘었을 때 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평생 성직을 잘 감당하셨는데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부스가 대답했습니다. “비결을 말씀드리지요. 세상에는 저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보다 좋은 기회가 주어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맡기지 않습니다. 저는 부족한 것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하실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맡긴 것뿐입니다.” 이 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좋으신 분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진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맡기지 못한다는 것은 믿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벧전 5:7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우리가 하나님께 맡겼다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맡기면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들이 적은 무리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4. 적은 무리는 우선순위가 하나님께 있는 사람들입니다.
31절입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적은 무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들이 적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야 하는데 천국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살이가 바쁘기 때문에 늘 긴급한 일에 쫓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우선순위를 세워 놓고 그 우선선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인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축복을 받는 사람은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를 보면 그가 축복을 크게 받은 이유가 분명합니다. 그는 우선순위가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그가 미국의 대통령으로부터 장관직을 제의 받았습니다. “체신부장관직을 맡아주시오” 워너메이커는 한 마디로 거절했습니다. “나는 교회학교 교사라는 일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만약 장관을 맡아서 내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이것은 정말 큰일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교회학교 교사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는 장관직을 수행하면서도 매주 토요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고향에 내려가 어린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한 번은 기자들이 워너메이커에게 장관직이 교회학교 교사직만도 못하느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교회학교 교사직은 내가 평생 동안 해야 할 본업입니다. 그러나 장관직은 한 두 해 하다가 말 부업이지요”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그는 하나님의 교회와 영혼을 세우는 일에 우선순위를 둔 것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 중심의 우선순위를 지켜나가려면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여섯 가지원칙을 말씀드리겠습니다. ①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교회생활만이 아니라 가정생활도 직장생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②항상 성경의 기준을 따르십시오. 성경이 가라하면 가고 서라하면 서십시오. ③성령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성령님께 물으십시오. ④철저한 예배자가 되십시오.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예배에 참석하고 최상의 예배를 드리십시오. ⑤규칙적으로 기도생활을 하십시오. 정시기도입니다. ⑥하나님의 일과 세상 일이 충돌할 때는 항상 하나님의 일을 선택하십시오.
세상에는 하나님 중심의 우선순위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적은 무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는 적은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5. 적은 무리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사람들입니다.
33,34절입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소유를 팔아 낡아지지 않는 배낭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재물을 쌓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①자기를 위하여 땅에 재물을 쌓아두는 것입니다. ②자기를 위하여 하늘에 재물을 쌓아두는 것입니다. 33,34절과 비슷한 말씀이 마 6:20,21입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는 내용이 “오직 너희를 위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땅에 재물을 쌓는 것은 당연히 자기를 위하여 쌓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은 자기를 위하여 사용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와 상관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를 위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땅에서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고 하늘에서는 상급으로 갚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늘에 재물을 쌓는 방법이 있습니다.
①하나님께 헌금의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은 1,2절을 보면 주님의 초림 후에 관한 말씀, 신약 시대에관한 말씀입니다. 거기 보면 하나님께서 헌금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말 3:4입니다.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물이 여호와께 기쁨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다고 하시면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말 3:8,9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난 증거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는데 그것은 십일조와 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주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 3:10에서는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복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헌금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하나님이 헌금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이유는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34절입니다.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하늘에 재물을 쌓으려면 온전한 십일조와 헌금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②하나님의 일에 물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우리가 재물의 헌신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에 풍성하시지만 우리의 헌신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1초에도 방주를 만드실 수 있으셨지만 직접 만들지 않으시고 노아가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성도들의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최근에 우리가 파라과이에 선교센터를 위하여 1,500만원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네팔에 교회 건축과 이 일을 진행하는 진행비로 600만원이 넘는 돈을 준비해두었습니다. 이런 일에 헌신하는 것은 자기를 위하여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입니다.
빌 4:18입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진행하는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헌금을 보내준 빌립보 교우들에게 그들이 보내준 헌금이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절인 빌 4:19에서 확신을 가지고 빌립보 교우들을 축복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저는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저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하나님의 일에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실 것입니다.
③이웃에게 물질을 나누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보면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서 상처를 치료해주고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주었습니다.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며 “이 사람을 돌보아 주세요. 만약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눅 10:37에서 이 사건의 결론을 이렇게 내려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강도만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는 “너도 이와 같이 하라”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를 할 때 밭의 모퉁이의 곡식은 남겨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 곡식은 줍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게 하신 이유는 가난한 이웃과 나그네를 위한 배려였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성경에 그런 내용을 기록해두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말씀하시듯 “너도 이와 같이 하라”입니다.
어느 교회 권사님 한분은 매학기 마다 교인 중에 10가정을 찾아가서 한 가정에 300만원씩 장학금을 준답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런 분들이 많이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구제하는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과 교회는 밭입니다. 가시나무를 심으면 가시에 나도 찔리고 내 아들도 찔리고 손자도 찔립니다. 사과나무 심어 놓으면 나도 사과를 따먹고 내 아들도, 내 손자도 따먹는 것입니다.
잠 11:25에 보면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고 말합니다. 구제하면 하나님이 갚으십니다. 몇 달 전에 아가농 목사님과 사모님이 우리교회 실버예배에 오시면서 목사님 한 분을 모시고 와서 섬겨주었습니다. 그분은 제가 약 20년 전에 대구에 집회 가서 만난 분이신데,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그때 제가 설교하고 그분이 찬양을 인도했습니다. 제가 그분과 식사를 하며 보니 그분의 눈에 하얀 막이 있었습니다. 제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안경 도수가 맞지 않는데 돈이 없어서 안경을 바꾸질 못하여 도수가 맞지 않는 걸 계속해서 끼고 있으니 그렇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 때 성령께서 저에게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네가 심전도사 안경을 해줘라” 여러분! 성령의 음성이 들릴 때는 바로 순종해야 합니다. 제가 지갑을 봤더니 돈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카드를 주면서 안경을 맞추게 했습니다. 그 전도사님이 안경점에 가서 30만 원이 넘는 안경을 맞췄습니다. 저는 섬길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심은 것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제가 집회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오니 어느 분이 봉투 하나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 봉투 안에는 그분의 안경 값의 몇 배가 되는 돈이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저에게 구제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갚아주신다는 것을 실감나게 체험케 하셨습니다. 구제하는 손길은 이 땅에서 여러 배로 받게 하고 천국에는 상급을 쌓게 하는 복된 손길입니다.
오늘은 “나는 적은 무리에 속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주님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는 다수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언제나 소수에 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적은 무리는 진짜 신자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진짜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적은 무리에 속한 사람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1. 적은 무리는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2. 적은 무리는 현세천국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3. 적은 무리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4. 적은 무리는 우선순위가 하나님께 있는 사람들입니다.
5. 적은 무리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