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연설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여권에서는 찬반 양론이 갈라진 반면, 야권에서는 대체로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편 야권 혹은 진보 지지 성향의 네티즌들은 '그건 어차피 말뿐이다, 좋은 말 하는 걸로만 치면 박근혜야말로 대단한 진보다'라는 식의 비아냥이 들려오기도 한다. 요컨대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대응이야말로 이번 유승민 연설에 대해 나올 수 있는 가장 나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정치는 결국 말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지키지 못한,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 하더라도, 어떤 약속을 어떻게 하고 왜 못 지키느냐에 따라 정치인과 정치 세력의 운명이 좌우된다. '그건 그냥 말뿐이다'라는 반응은 값싼 정치 회의주의에 다름 아니다. 중요한 건 어떤 정치인이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다.
45분에 달하는 연설에 다양한 논점이 있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 세금과 복지에 대한 부분만을 살펴보자. 그 대목을 통해 우리는 유승민의 연설이 왜 이렇게 큰 반향을 얻고 있는지, 반대로 비슷한 이야기를 해왔다고 여겨지는 야권은 왜 그만한 호응을 얻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결국 유승민은 중부담-중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증세"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일단 증세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부자증세, 법인세 인상 혹은 기존 감면분 철회, 자산세'등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유승민의 연설이 야권의 '부자증세'론과 달라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유승민은 국민 전체가 복지 부담을 져야 하며, 그것은 결국 지금보다 높아진 세금이 될 수밖에 없음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있다. 반면 야권은 어떤가? '서민 여러분, 부자 증세가 이루어진다 해도, 아무튼 여러분도 세금을 더 내셔야 합니다'라는 진실을 용감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는가?
4월 8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연설에 이어, 4월 9일에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대표연설이 있었다. 그 내용 중, 앞서 인용한 유승민의 연설에 대응하는 부분을 살펴보자.
분명 문재인이 언급하다시피,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가 깎아준 법인세율만 되돌려 놔도, 연 4조6000억원의 추가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연 4조6천억원이 과연 큰 돈인가? 지난 3년간 부족한 세수만 해도 22.2조원이었다. 법인세율을 원상복귀한다 하더라도 약 10조원 가량이 모자란다. 그 돈은 대체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물론 부자증세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조세감면 혜택이 대부분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돌아가 조세체계의 공평성과 투명성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는 문재인의 지적은 매우 중요한 말이다. 하지만 서구식 복지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미국이나 일본 수준의 사회 복지를 이루려면, 우리는 지금보다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부자들뿐 아니라 '서민'들에게도, 증세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전체 국가 인구는 노령화되고 있고, 경제 활동 인구는 줄어들며, 돈 버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돈 써야 할 일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경제적 현실이다. 그리고 유승민과 달리 문재인은, '서민증세'를 전혀 하지 않고도 현재 수준의 복지를 유지하거나 그보다 더 복지 지출을 늘릴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올해 연말정산 파동에 대한 문재인의 언급은 보는 이를 더욱 답답하게 한다. 물론 "국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한 것은, 세 부담이 크게 느는데도 "세율은 건드리지 않았으니 증세는 아니다"라는 정직하지 못한 주장"이었다는 그의 지적은 매우 정당하다. 그렇다면 그걸 잘 아는 문재인은, 왜 '월급쟁이 증세' 없이 복지 유지는 불가능하다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가? 정직한 태도를 박근혜 정부에게 요구한다면, 스스로도 정직해야 하지 않는가?
연말정산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꾼 것은 대단히 정당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소득공제는 돈을 많이 벌고 많이 쓰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유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액공제로 전환함으로써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덜 돌려받고, 낮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가령 이런 경우,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과 문재인은 '서민증세 반대'를 기치로 삼고 세액공제로 전환된 연말정산에 대해 끝없이 공격을 가했다. 그 기조는 그가 대표연설을 한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아니 세상에, 과세표준 7천만원 이상인 직장인의 세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 어떻게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단 말인가? 과세표준 7천만원인 직장인이 '고소득층'이 아니면 대체 누가 '고소득층'이란 말인가?
문재인의 연설과 유승민의 연설은 같은 달을 가리키는 다른 손가락이다. 하지만 유승민의 손가락이 훨씬 더 곧고, 용기 있게, 그 달을 가리고 있는 구름까지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증세를 피할 수 없다. 적절히 국민의 세 부담을 높히고 그것을 통해 소득재분배를 이루어내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문재인은 바로 그 점에서, 국민에게 사실을 사실로 전하고 설득할 용기를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부자뿐 아니라 서민들도 세금을 더 내야 한다. 그래야 복지를 더 할 수 있고, 그 이전에 지금 수준의 복지를 간신히 유지할 수 있다. 유승민은 그 사실을 말했다. 문재인은 진실을 회피하고 있다. 두 연설 전문을 다 읽어본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윈스턴 처칠의 가장 유명한 연설 문구를 떠올려보자.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피와 땀과 눈물뿐이다.' 물론 그것은 전쟁 중의 연설이긴 하나, 정치가 왜 '말'로 하는 일인지, 그리고 정치인의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곱씹어볼 기회를 제공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가 거짓말이라면, '서민증세 없이 부자증세만으로 복지' 역시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의 정치가 국민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증세와, 그 증세에 따르는 복지일 뿐, '서민증세 없이 부자증세만으로 보편복지'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정치권은 국민들 앞에 정직해져야 한다. 서민증세 없이는 서민복지도 없다. 정치인은 국민들에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라도, 그것을 가장 정확한 언어로 전달하고 보편적인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복지가 필요하다면 증세를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유승민은 증세를 이야기한 반면, 문재인은 자꾸 중요한 대목에서 말꼬리를 흐리고 있다. 두 사람의 연설이 불러오는 파장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승민이 옳다.
http://www.huffingtonpost.kr/jeongtae-roh/story_b_7031568.html?utm_hp_ref=kore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