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순의 「내 봄날은 고독하겠음」 평설 / 문혜원 내 봄날은 고독하겠음
박상순
모란에 갔었음. 잘못 알았음. 그곳은 병원인데 봄날인 줄 알았음. 그래도 혹시나 둘러만 볼까, 생각했는데, 아뿔싸 고독의 아버지가 있었음. 나를 불렀음. 환자용 침상 아래 납작한 의자에 앉고 말았음. 괜찮지요. 괜찮지. 온 김에 네 집이나 보고 가렴. 바쁜데요. 바빠요, 봐서 뭐해요. 그래도 나 죽으면 알려줄 수 없으니, 여지저기, 여기니, 찾아가보렴. 옥상에 올라가서 밤하늘만 쳐다봤음. 별도 달도 없었음. 곧바로 내려와서 도망쳐왔음. 도망치다 길 잃었음. 두어 바퀴 더 돌았음. 가로등만 휑하니, 내 마음 썰렁했음. 마침내 나 죽으면 알려줄 수 없는 집, 여기저기 맴돌다가 빠져나왔음. 모란에 다시 갔음. 제대로 갔음. 길바닥에 서 있었음. 내 봄날이 달려왔음. 한때는 내 봄날, 스무 살이었는데, 이젠 쉰 살도 넘었음. 그래도 내 봄날의 스물두 살 시절, 남산공원 계단을 내려오던 그날에, 내 두 눈이 번쩍 뜨이고 내 가슴속의 쇠구슬들이 요란하게 덜커덕거렸음. 분홍 신, 남빛 치마 잊히지 않는, 계단을 내려오던 내 봄날. 앗, 봄날, 아, 봄날, 그날 오후 내 봄날이, 봄날, 봄날, 봄날. 여기도 봄날, 여기도 봄날, 봄날을 속삭였음. 세월은 갔음. 모란에 갔었음. 봄빛 다 지고, 초가을에 갔었음. 쉰 살 넘은 내 봄날을 다시 만났음. 밥 먹었음, 차 마셨음. 손 내밀었음. 내 손등, 봄날 손등. 찻잔 옆에 모아놓고 보니, 마음만 휑했음. 그래도 내 봄날은 아름다웠음. 다정하고 쌀쌀했음. 그 봄날이, 죽기 전에 다시 올게, 네 죽음을 지켜줄 그 누구도 없다면. 봄날이 내게 말했음. 누가 있겠음? 나 혼자 밥 먹었음. 내 봄날만을 생각했음. 푸르른 나뭇잎 하나 억지로, 쉰 살 넘은 내 봄날의 가방 속에 넣어주고…… 파도 소리 들리는 바닷가 유치원의 점심시간. 요리사가 된 내 봄날이 아침부터 요리를 하고 뒤뚱대고, 자빠지는 아장아장 새싹들이 오물오물 점심을 다 먹고 나면, 바닷가 빵집 지나, 섬마을 우체국 지나 쉰 살 넘은 내 봄날이 파도 소리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길에 모란이 있었음. 그 길에서, 긴 총 옆에 놓고 비탈에 누워 있었음. 총알은 없음. 오래전 남산공원 계단에서 덜커덕거리던 내 가슴속 쇠구슬들이 단거리 대공포 총탄이 되고, 무거운 포탄이 되니, 가슴이 무거워서 누워 있었음. 가을도 내 옆에, 총알 없는 빈총처럼 뻗어 있었음. 가슴이 무거워서 나자빠져 있었음. 그런 모란에 갔었음. 잘못 알았음. 그곳은 병실인데 또 잘못 알았음. 아뿔싸, 겨울이 왔음. 창밖엔 크리스마스트리 반짝이는데, 누가 있겠음? 아직도 치료 중인 내 봄날, 이번엔 고독의 할아버지가 부르셔도 환자용 침상 아래 이 끈적한, 납작한 의자엔 앉지 않겠음. 내 봄날은 고독하겠음. 누가 있겠음? 시집 『슬픈 감자 200그램』 2017년 ..................................................................................................................... 정서적 상태를 대체하는 공간 시에서 공간은 그것이 객관적인 실재라고 하더라도 주체의 의식과 관련됨으로써만 의미를 가진다.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장소나 풍경, 지역 등은 시의 정서나 내용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시 전체의 맥락 속에서 해석된다. 더 나아가 공간은 물리적인 공간만이 아니라 종종 관계 양상이나 심리적인 정황을 지시하기도 한다. 이 시에는 모란, 남산공원과 같은 실제 지역 이름이 등장하고, 옥상, 계단, 빵집, 우체국 같은 생활 속 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이 공간들이 이 시 내용의 얼개를 형성한다. 시의 서술을 액면 그대로 따라가 보자. 1연, 모란에는 아버지로 짐작되는 사람이 입원해 있는 병원이 있고, 문병을 간 ‘나’는 아버지의 권유에 못 이겨 ‘집’에 들렀다가 길을 잃고 헤맨다. 2연에서 모란은 쉰 살이 넘은 내가 스물두 살의 나를 추억하는 공간이다. 남산공원 계단을 내려오는 ‘분홍신과 남빛치마’의 여자를 만나고 사랑한 시간들은 ‘봄날’이라는 단어의 반복으로 대체되어 표시된다(“그날 오후 내 봄날이, 봄날, 봄날, 봄날,/ 여기도 봄날, 여기도 봄날, 봄날을 속삭였음.”). 3~4연, 세월은 가고 봄빛도 진 초가을날 다시 찾은 모란에서 나는 기억 속의 봄날을 만나고 지나온 시간들을 되새긴다. 5연, 겨울이 오고, 봄날은 여전히 병실에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읽어가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자주 어긋나고 사건과 인물들은 겹쳐지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봄날’은 실제 계절이었다가, 병원에 누운 아버지였다가, ‘젊은 날’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비유가 되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가, 그와 함께 한 생활이었다가, 그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이 된다. 그런가 하면 1연에서 병원에 있는 아버지는, 5연 “이번엔 고독의 할아버지가 부르셔도/ 환자용 침상 아래 이 끈적한, 납작한 의자엔/ 앉지 않겠음.”에서 ‘고독의 아버지’가 아닌 ‘고독의 할아버지’로 변주된다. 즉 ‘고독의 아버지’, ‘고독의 할아버지’는 실제 혈육인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아니라 ‘고독이 아니라 고독의 할애비가 불러도 안 온다’라는 식의 관용적인 표현일 뿐이다. 아울러 1연에서 보호자용 의자로 여겨졌던 ‘환자용 침상’ 아래 ‘납작한 의자’ 또한, 5연에 이르면 실제 의자가 아니라 봄날과 관련된 기억이 시작됨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지명 ‘모란’은 집이나 병든 아버지가 있는 실제 공간이 아니라 ‘나’에게 봄날의 기억들을 불러일으킨 상황 혹은 주변 환경이다. 발표 당시 이 시의 ‘모란’이 ‘의정부’였다는 것은, 이같은 해석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이다. 시에서 ‘의정부’를 ‘모란’으로 바꾸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은, 그것이 실제 현실적인 공간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시의 기억들이 대체로 쓸쓸한 정서(병원 혹은 병실로 상징되는)와 연결되어 있음을 감안한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지명은 굳이 ‘모란’이 아니어도 쓸쓸하고 휑한 이미지를 주는 환경적 조건을 갖춘 공간(복잡하고 활기차거나 생산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제외한)이면 어디든 상관없는 것이다. 이 공간적인 특징은 화자의 정서적 상태를 대체한다. 중간중간에 포착되는 화자의 심리 상태를 알게 하는 구절들(‘가로등만 휑하니 내 마음 썰렁했음, 마음만 휑했음, 다정하고 쌀쌀했음, 나 혼자 밥 먹었음, 가슴이 무거워서 나자빠져 있었음, 누가 알겠음?’)은 결국 ‘내 봄날은 고독하겠음’이라는 구절로 집중된다. 봄날은 다정하고 아름답고, 그래서 더 고독하고, 영원히 고독할 것. 내 봄날은 고독했고, 고독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고독하겠음. —계간 《시인시대》 2024 겨울호 ---------------------- 문혜원 / 제주 출생.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문학박사. 1989년 《문학사상》 평론 등단. 저서 『1980년대 한국 시인론』 『한국 현대시와 모더니즘』 『한국 근현대 시론사』 『존재와 현상』 『1980년대 한국시인론』 『비평, 문화의 스펙트럼』 등. 아주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