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 크래시가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요즘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기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예전 공중파방송이 휩쓸던 그 드라마 시장에 숱한 매체가 동원되니 경쟁도 치열해지고 시청자들의 눈도 너무 높아져 웬만해서는 관심도 끌 수가 없습니다. 한때 전통의 드라마 강자였던 공중파와 종편이 가세하고 예능 전문 채널까지 경쟁을 벌이니 정말 시청률 높이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습니다. 드라마 피디들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예전 공중파 드라마는 그냥 20%가 넘었고 주말 드라마일 경우 30%는 보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젊은층들은 공중파 별로 보지 않습니다. 뉴스는 물론이고 예능프로그램이나 드라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다보니 시청률 10% 넘기면 잘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런 상황에 월화드라마 크래시가 나름 히트를 치는 것에 대해 이런 저런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주말드라마도 아닌 월화 그것도 밤 10시 드라마인데 말이죠. 드라마 크래시는 영어로 crash 즉 충돌,추락,붕괴, 폭락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드라마의 주된 내용속에 충돌과 추락 붕괴 그리고 폭락 등의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 크래시는 범죄수사극입니다. 인간이 등장하고 나서 범죄는 연속적으로 벌어져 왔습니다. 인간 세명이 모이면 범죄가 일어나고 남녀 열명이 모이면 성병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사에 범죄는 항상 옆에 존재해온 악마와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범죄의 형태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는데 그가운데 교통관련 범죄와 컴퓨터관련 범죄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드라마 크래시는 바로 교통관련 범죄입니다.
단순한 교통관련 범죄가 아닌 그 안에는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범죄요소 그리고 죄악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경찰이다보니 경찰에 한정되는 이야기일 것 같지만 그 안에는 권력과 조폭 그리고 빈익빈 부익부 또한 권력과 악,폭력의 융합체들이 모두 등장합니다. 최고 높은 지위가 경찰의 고위급으로 표현되지만 그 높이를 조금 높이면 최고 권력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구도입니다.
사소한 교통사고를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경험하는 도로상 갖은 비리집단의 유착관계를 비롯해 부당한 힘을 동원해 가해자를 타인으로 둔갑시킨다던가 그런 비리를 지키지 않는다고 처참한 보복을 가하는 불의적 집단, 자신의 조직적 힘을 이용해 부하 직원들의 인생을 송두리채 빼앗아버리는 악의 축들의 등장하니 이것이 이 사회의 악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입니다. 불의에 대항해 정도의 길을 가려는 일부 정의로운 부류가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그 과정의 길을 가야하는 지도 잘 묘사하고 있어 이 드라마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몰리고 있는 것 아닌가 판단됩니다.
흔하디 흔한 경찰내부적 이런 저런 이야기에서 벗어나 교통경찰에 국한하지만 그 가운데 이 사회가 품은 비리와 그 비리를 추적하고 파헤치려는 정의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박진감있게 표현하는 것에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리에 맞서 싸우기에 너무도 힘에 부친 약자들의 슬픈 마음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통탄스런 비참한 대우 그리고 그런 비리에 맞서 싸우다 힘에 겨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원한을 갚으려는 아들의 행위에서 이 사회가 가진 모순을 리얼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살려면 싸워야 한다. 하지만 거대한 힘에 대항하는 것이 두려웠다. 아버지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내자식이 나의 이 약한 모습을 알까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슬픈 현실을 아들이 알게 될까봐 너무도 두려웠다" 는 아버지의 회한에 가득한 독백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이 사회에 사는 힘없고 빽없는 아버지들의 공통된 기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범죄가 또 다른 범죄로 가려진다는 말이 정말 실감이 나는 사회적 구조가 아닌가 생각이 되는 것은 비단 저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이 문장은 단지 드라마상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이 나라 이 사회에 두루두루 통용되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이자 사회적 단면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문장이 아닌가 판단됩니다. 드라마 크래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지만 불의를 처단하기 위한 정의로운 부류들의 힘겨운 도전의 모습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드라마 크래시가 좋은 결말을 맺기를 바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소시민들의 바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24년 6월 7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