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양무리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가득차고
♣ 곧 삭제가 예상되오니 미리 미리 스크랩 해 주세요*^^*♣
그냥 지나가려다가 아무래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서요^^;
천로역정님의 글씨는 삘간색으로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결코 헌금을 가르친 적도 없으시고 헌금을 반드시 내야한다고 한 적도 없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언제나 이런식으로 이러한 성구를 들이밀어서 식상하기도 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피곤함도 있지만...그래도 혹시 처음 접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넘치도록 수고하신 "바울 형제"님의 해산의 수고에 비한다면 이런것은 아주 가벼운 것이라 여기며 손을 놀려 볼랍니다. ^.^
헌금이나 십일조에 대하여 성경적이지 않다는 주장을 하면 꼭 제시하는 본문입니다. 소위 개혁주의(칼빈주의)에서 늘상 단골매뉴로 등장하고 어설픈 목사나부랭이들(제가 좀 쎄게 표현했습니다만 사실은 더 심한 표현을 자재하려다보니 속이 울렁거리는걸 겨우 진정시켰거든요^^ '목사 나부랭이'는 목사로서의 자질이 형편없는 자들을 지칭한것입니다. 아니신 분들은 통과하세요)이나 이단 사이비교주들이 돈을 갈취하려는 욕심을 정당화 시키기 위하여 힘써 강조하는 본문입니다.
한가지 의문은 정통 기독교의 개혁주의자라는 교단에서는 왜 그렇게 엉터리로 십일조나 헌금을 강조해서 돈 걷어서 수백억 수천억씩 발라서 건물 크게 짓고 교회라고 하며 예배드린다고 하는 것을 보고도 단속이나 주의나 경고조치를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 교회들이 사실 그것을 모조리 하나님의 은혜요 영광이라고 포장을 하기는 하지만, 과연 그렇게 웅장하고 호화스러운 교회당이 하나님의 뜻인가에 대하여 신학적인 논의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그놈의 삼위일체신론이니 하는 따위의 교리 논쟁은 치열하게 목에 핏대 세워가면서 서로 정죄하고 이단판정하고 난리를 치더니만 정작 교회건축에 대하여는 함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젠 조용해졌나요? 남의 교회 일로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지만...
사랑의 교회 건축은 잘 하고 있는가요? 한동안 논란거리로 사회일각에서도 초미의 관심을 둔 일이 있었는데 조용해졌나 봅니다. 과연 오정현 목사가 믿는 하나님의 능력은 대단하긴 하군요^.^ 그렇게 많은 부정적인 견해와 반대의 소리가 있었으나 전혀 주눅들지 않고 진행하는것을 보면 또 설교시간에 목에 힘이 들어가겠군요.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들이 교계에 만발하고 있으나 교단적으로나 노회적으로 아무런 역할도 할수 없는 것은 아시는 것처럼 개혁주의나 한국기독교 교단, 교파들이 거의 일심으로 십일조나 헌금이 성경적으로 정당하다고 입을 모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결코 헌금을 가르친 적도 없으시고 헌금을 반드시 내야한다고 한 적도 없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제가 이렇게 주장했더니 대뜸 나오는 반응이 바로 위에 "마 이삼 이삼"(마23:23)절 입니다.
제가 일일히 글을 쓰자니 시간도 없고 해서 글을 링크시켰습니다. 아래 각 제목을 클릭하세요^.^
34
Re:십일조는 지극한 성경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 말씀입니다.
10.08.05
3
33
마태복음23장23절이 십일조 하라고 한것이라고 거짓말하는 이유
10.08.05
1
32
마태복음 23장23절이 신약교회가 십일조를 하는 근거인가?
10.08.05
0
31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10.08.05
1
한번 일독들을 하신다면 신앙의 큰 유익함이 있을줄로 압니다.
아래 천로역정님이 주장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요?
율법의 정의, 자비, 믿음 등은 소홀히 하면서 십일조를 하는데, 둘 다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단 한 구절도 없다고 자신하는데, 그렇다면 이 글을 쓰신 분은 위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실까요?
저는 위에 링크한 글의 내용으로 이해합니다. 됐나요^.^
그래도 귀차니즘때문에 안읽으신 분들을 위하여 간단하게 대답해 드릴께요...역정님...
우선 마이삼이삼절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셨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천로역정님. (목사님이신진 모르지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라는것은 바로 화 있을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랍니다.
그러니까 마이삼이삼절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고...화 있을 자들,
즉 외식하는자들, 서시관들,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것이다 그말입니다.
아직도 이해가 안되십니까? 이 말이 그리도 어렵습니까? 아님 인정하고 싶지 않은것입니까? 신학을 공부하신 목사님들이 설마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하는것도 아니고...어린아이들에게 설명해줘도 금시 알아들을 것을 왜 유독 목사님들은 못알아듣고 고집들을 부릴까요???(연구대상입니다. 정말...)
그러면 이렇게 답하더구만요. 성경의 모든 말씀은 광의적으로 모든 신자들(참고:교단교파진영에서는 그리 표현하고요 교단 교파를 초월한 거듭난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라 하더구만요)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하고 적용시켜야 한다고요.... 얼핏 들으면 엄청나게 믿음좋은 표현이지만 정말 아찔한 표현이거든요?
그렇게 주장하는것이 옳다면 우린 지금 화 있을진저 라는 그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고스란히 정죄당할 저주도 동일하게 받아야 합니다. 안그래요? 화 있을것이라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받은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구원 얻은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하게 받아야한다는 것이 옳아요? 그런 주장이 정당한가요? 다시 천로역정님의 글을 봅니다.
혹은 “오늘날 우리가 성전시대에 살고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이냐, 목회자가 레위인이냐?” 등.
물론 아니죠. 그러나 영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고 레위인이라고 해도 그 해석이 틀리지 않습니다. 자주 들어 식상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지요. 아닙니다. 영적으로는 아브라함과 함께 상속받을 하나님의 자녀들만 있는것이랍니다. 십자가로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막힌 담이 허물어졌기에 예수 안에서 형제요 자매요 모친들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가족들, 영어로 페밀리요.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이제 예수 안에서는 무슨 무슨 지파라든가 레위인이나 족속들이 필요 없다니까요. 영적인 제사장이니 레위인이니하는 말은 정말 우수워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신분적으로 혈통적으로 민족적으로 전혀 구별하지 않아요. 아시겄어요? 그런 개념은 사람의 개념이며 유대주의나 민족주의자들이나 종교에서나 가능한 소리라고요. 즉 다시 말해서 천로역정님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구약적 사고라는 말이랍니다. 아고 힘들구만...헉헉...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8-29)
할례 받았다고 다 유대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따라 마음에 받는 할례가 진정한 할례인데, 진정한 할례를 소유한 사람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이장이팔이구절은- 예를 든것이랍니다. 할례라는 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차별하는 종교(유대교)인들에게 따끔하게 충고하는 바울 형제님의 권고랍니다. 진정한 의미의 할례가 외적인 형식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성경의 모든 것은 십자가 이전과 십자가(이후에) 안으로 들어온 것에 대한 것입니다. 십자가 안으로 들어온 자들에게는 형식과 혈통과 신분이 상관 없게 되고요. 십자가 밖에 있게 되면 여전히 신분과 혈통을 따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십일조 폐지를 주장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예배 등을 언급했는데, 이상한 것은 십일조 폐지와 밀접한 관련이 없는 말씀을 증거로 채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십일조 폐지를 주장함이 아니라 원래부터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과 교회에는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먼가 오해하신것 같습니다. 십자가 이후 은혜시대 교회안에서는 십일조나 헌금이라는 것이 끼어든적이 없었답니다. 이런것들은 다 믿음이 오기 전에만 유효한 제도였고요. 믿음(예수 그리스도)이 온 후로는 당연히 옛 것이 사라진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이것이 이해가 안된다니 참 안타까워요...
더 나아가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십일조를 시행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임을 아직도 모르십니까?
십일조를 시행하면 사탄이 박수를 치면 좋아한다고 주장하며, 십자가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행위라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 그것을 가르치면 이단이라고 합니다.
글 말미에 좋은 말을 넣었습니다.
사람의 사상과 제도를 따를 것이냐 예수님을 따를 것이냐.
이 글을 쓰신 분은 사람의 사상을 따라 쓴 글이지만, 십일조는 율법 이전부터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즐겨하시던 거룩한 행위입니다.
참으로 갑갑하군요. 율법 이전부터 믿음의 조상들이 즐겨? 하던 거룩한 행위라고요? 아브라함이 단 한번..그것도 멜기세덱에게 한것을 아브라함 일생에 걸쳐서 행한 것이라고 하는 거짓주장을 태연하게 하시다니...
그리고 천로역정님이 볼때 제가 사람의 사상을 따라 쓴 글로 보이나보군요 ㅠㅠ
오늘날 구약과 신약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구약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신약에 와서 달라지셨다는 말 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거 참...
구약과 신약은 당연히 다르지요.(구약은 장차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그림자,예표들...이고 신약은 실체이므로 다르다는 것인데...) 이것을 하나님이 다르다는 것으로 해석을 하신다니 할 말이 없네요. 그림자와 실체를 동일하게 보는 오류인데...
구약의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생각해보세요. 아들에 관하여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그림자요 예표이며 모형이라는 것은 동의하시는지요?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살아나셨고 부활 승천 하셨다는 것을 미리 예언한 것이 구약성경 전체의 내용입니다.
10.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느니라.
11. 그러므로 만일 레위의 제사장 체계를 통해 완전함이 올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의 제사장 체계 하에서 율법을 받았느니라) 다시 아론의 계통에 따라 부르심을 받지 아니하고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르는 다른 제사장이 일어날 필요가 또 있었겠느냐?
12. 제사장 체계가 변하였은즉 율법도 변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히7:10-12)
18. 앞서 나가던 명령은 그것의 연약함과 무익함으로 인하여 진실로 폐하여졌도다.
19.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으나 주께서 더 나은 소망을 가져오심은 완전하게 하였으므로 우리가 이 소망을 힘입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느니라.(히7:18-19)
7. 만일 그 첫 언약이 흠이 없었더라면 둘째 것을 구할 여지가 없었으려니와(히브리서8장)
12. 내가 그들의 불의에 대하여 긍휼을 베풀고 다시는 그들의 죄들과 그들의 불법들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느니라. (히브리서8장)
13. 그분께서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첫 언약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으니 이제 쇠하고 낡아지는 것은 곧 사라지리라. (히브리서8장)
19. 모세가 율법에 따라 온 백성에게 모든 훈계를 말한 뒤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물과 주홍색 양털과 우슬초와 함께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 이르되,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상속 언약의 피라, 하였고
21. 또한 성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피를 뿌렸느니라.
22. 율법에 따라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깨끗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면이 없느니라.
23. 그러므로 하늘들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은 이런 것들로 깨끗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의 것들 그 자체는 이런 것들보다 더 나은 희생물로 하여야 할지니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손으로 만든 거룩한 처소들 곧 참된 것의 모형들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하늘 그 자체 안으로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느니라.(히브리서9장)
백보 양보하여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하나님께 받치던 그 십일조를 시행하고 싶은데 오늘날 성전도 없는데 어디에 십일조를 해야 할까요?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주었는데, 그는 거룩한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율법이 주어진 후에는 레위인에게 주었는데, 그들은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시편 110편 4절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제사장이 누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주님입니다. 곧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을 지칭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조상들이 행하시던 십일조를 받치고 싶은 분들은 과연 누구에게 헌금해야 합니까? 영원한 제사장 되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계시질 않으므로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교회에 내야 합니다.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교회라니오? 여전히 교회의 본질에 대한 무지를 자랑하고 있네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세워진 것은 조직이나 건물이 아니라 "사람" 입니다. 거듭난 자들이 교회의 지체요 거듭난 자들의 모임과 교제가 교회의 본질이지요. 조직과 시스템에 의한 교회는 로마 카톨릭의 산물이며 종교개혁자들이 만들어낸 제도입니다. 그들이 교리와 신조를 만들어서 유대교와같이 형식과 예전등을 강화시키고 더구나 칼빈에 의하여 조직적으로 목사라는 것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목사는 누가 세웠을까요?
166
칼빈주의는 복음과 일치할까?(3)
사랑그리고편지
10.05.12
1
165
칼빈주의는 복음과 일치할까?(2)
사랑그리고편지
10.05.12
1
164
칼빈주의는 복음과 일치할까?(1)
사랑그리고편지
10.05.11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의 보이는 조직과 제도의 교회를 세운적이 없습니다. 천로역정님이나 개혁주의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진실로 양심에 거리낌 없이 성경을 읽었다면 그것을 부인할 수 없을것입니다. 제 주장이 이단적이라고요? 당연히 거북하겟지요. 개혁주의의 근간인 칼빈을 정면으로 부정하니 엃마나 황당하겠어요. 당연히 그 마음 이해합니다. 결코 부인할 수 없고 포기할 수가 없겠지요.
교회제도를 부정하면 여지것 믿어왔고 쌓아왔고 누려왔고 앞으로도 누릴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될것이니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마음 다 알아요. 알고말고요. 저도 그랬었으니까요. 그러나 인정해야합니다. 이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인정하게 되면 그동안 소속해 있던 모든 곳에서 백이면 백 내어 쫒김을 당해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단 소릴 들어야 하고 모든 기득권에서 철저하게 퇴출당해야할 것입니다. 광야로 내어 몰려야할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틀렸다고 인정해야합니다.
지금 누리는 개혁주의나 조직과 제도권 교회의 위상이 아무리 그럴듯하고 멋지고 아까워도 말입니다.
그것을 놓아야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
목사라는 매력적인 옷을 벗어야만 주님이 보입니다.
칼빈의 신학과 사상을 놓아야만 성경이 보입니다.
교리와 잘못된 기독교 역사를 놓아야만 말씀이 열립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왜 화 있을찐저라는 저주를 들어야 했을가요?
그들이 놓기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동안 익숙했던 전통과 율법을 버릴 수가 없었기에 저주를 당했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알고 이미 화 있을것을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수 많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주님의 말씀을 버렸지만...
율법에 열심이었던 사울이 바울형제로...
유대인의 관원이었고 이스라엘의 선생이었던 니고데모가...
아볼로가...
거듭나야 하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들은 모든것을 버렸고 배설물처럼 버렸고 예수 그리스도를 얻었습니다.
유대교에서 출회를 당했지만 생명의 주님을 얻었습니다.
모든것을 버렷고 오히려 생명의 주를 소유한 것입니다.
지금은 버려야 하고 나와야 할 때입니다.
지금 있는 그 자리가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고 존경받을 자리라해도 말입니다.
예수님의 뜻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면 돌아 서야합니다.
저는 이미 넘치도록 십일조와 율법과 십자가의원수로 행하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증거하였습니다.
제가 개혁주의자들(칼빈주의자들)에게 이단으로 정죄를 당한다 해도 하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신 복음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더 이상 빼앗길 것도 없으며 지켜야 할 것도 없습니다.
욕심도 없습니다. 다만 욕심이라면 거짓된 소리와 비 복음에 속는 자들이
한 사람이라도 빨리 깨어나서 온전하게 예수 그리스도안에 들어서기를 바랄 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불러 죄를 씻겨주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 증인으로 살아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숨쉬고 살아갈 동안 해야할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세주 되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는 입으로 삶으로서의 소명입니다. 이것이 집단과 조직을 이루워서 사람들을 개종시켜 기독교 조직에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 없는 종교들이나 하는 것이고 예수님은 그런것에는 도무지 관심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서에 넘치도록 증거되었지요.
부활의 목격자들이요 증인들인 사도들이 어떻게 살았는가요? 그들은 조직을 만들거나 세운적이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때로는 광야로 빈들로 가서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증거하고(빌립) 감옥의 간수에게(바울과 실라) 복음을 전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고 증거하며...사마리아 땅에 물 길으러 나온 한 여자를 만나서(예수님) 생명의 말씀을 전하시며 온전한 예배를 말씀하셨고, 삼십팔년 동안 병상에 눟었던 자를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였고....
신약 성경 어디에도 없는 십일조를 가르치는 것은 분명히 이단적이며 주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부정하는 사악한 행위입니다.
거룩한 행위를 비웃고 사탄이 박수치며 좋아한다는 식으로 해석한 것도 죄입니다.
거룩한 행위가 아니라 주님 보시기에 가증한 행위를 지적하는 것이지요...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사 5:20)”
말씀을 앞뒤로 살펴서 해야한답니다^.^
18. 헛된 것의 끈으로 불법을 끌며 수레 줄로 끌듯이 죄를 끄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19. 그들은 이르기를, 그분께서 서둘러 자신의 일을 속히 이루사 우리가 그것을 보게 하고 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계획이 가까이 임하게 하사 우리가 그것을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고 어둠으로 빛을 삼으며 빛으로 어둠을 삼고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21. 자기 눈에 지혜로운 자들과 자기가 보기에 분별 있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22. 용감하게 포도주를 마시며 독주를 섞어서 마시는 힘센 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23. 그들은 보상을 받으려고 사악한 자를 의롭다 하며 의로운 자에게서 그의 의를 빼앗는도다. (이사야5장)
37. 오직 너희 의사 표시는,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라. 무엇이든지 이것들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느니라.(마태복음5장)
12. 그러나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 먼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다른 어떤 맹세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예는 예라 하고 너희의 아니오는 아니오라 하라. 이것은 너희가 정죄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라.(야고보서5장)
저는 주님의 말씀대로 십일조는 신약의 그리스도인들과 상관 없다고 증거하였습니다. 악을 악하다고 한것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그것은 저의 개인적인 사상이나 생각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도들은 전혀 십일조나 헌금에 대하여 전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처럼 외식하는 자들 종교적인 경건으로 의로운척 하는 자들, 자기 의로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강하게 화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다고 정죄하는 것은 분명 잘못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소유 전부를 바치는 행위로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올바른 것입니다. 십일조의 정신을 가르치는 것도 올바른 것입니다.
십일조의 정신은 그런것이 아닙니다. 나눔입니다. 가난한 자들과 고아들과 과부와 나그네들을 구제하고 더불어 살아가도록 최소한의 안전망을 위하여 제정한 것입니다. 이 나눔정신이 어떻게 십자가 안에서조차 건물 유지와 목사들의 호주머니와 베를 채우는 것이 된단 말인가요? 결국 목사와 교회유지를 위하여 낸 십일조를 하나님이 냉큼 받으신다는 괘변인가요?
십일조는 이스라엘국가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의무적인 세금인것을 자꾸만 하나님것이라고 가르치는 거짓을 조심해야할것입니다. 위에 인용한 이사야 5장20절에 혹시 해당할 수도 있을 것이니까요^.^
십일조에 대한 다른 글을 참고 하시라고 알려드립니다.
아래 제목을 클릭하세요^.^ ↙↙↙
1 | 세계의 십일조와 한국의 십일조의 비교... | 10.08.02 | 4 |
30 | 십일조는 그런 것입니다 - 미국의 경우 | 10.08.05 | 2 | |
29 | 교인들에게 사기 치는 번영복음 전파자들 | 10.08.05 | 2 | |
28 | <십일조> 다시 정리하여봅니다 | 10.08.05 | 3 | |
27 | 십일조 - 신약에는 한마디도 언급이 없었다. 왜? | 10.08.05 | 3 | |
26 | 아..십일조..이를 어찌하리요.. | 10.08.05 | 2 | |
25 | 장기려, 그 사람-십일조에 관한 충격적인 사건 | 10.08.05 | 2 |
주님의 십자가는 은혜의 법으로 상위법입니다. 그것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며, 동시에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신 것(엡 2:15) ’입니다. 이것을 이루신 이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쉽게 말해, 은혜가 정죄보다 우선하는 법입니다. 상위법이 제정되면 하위법은 그 상위법에 맞게 채택 또는 탈락합니다.
골로새서 2장에 있는 ‘의문에 순종한다’는 표현이 이에 적합니다. 이 의문들은 규칙들인데 모세의 율법도 섞여 있습니다만 세상 규칙에 가깝고 장로들의 유전에 가까운 것들입니다. 이런 가르침에 대해서는 상위법인 그리스도의 은혜의 법이 폐했다고 해도 성경의 가르침이 모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이 글은 더러 맞는 표현이 있다고 하나 분수에 지나치는 판단을 담고 있어서 더욱 문제가 됩니다. 질문자의 글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니 과히 교만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또한 그릇된 일반화로 진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자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딤후3:14). 그러나 자신은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오히려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십일조를 언급하시면서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그 주님이 율법을 폐하신 것이 아니라 의문에 속한 계명들, 즉 인본적이고 세속적인 장로들의 유전은 폐하셨으나 말씀으로서의 율법은 더욱 완전해졌으니, 누가 감히 십일조와 그 정신을 자신의 생각대로 폄론하며 그것을 판단하기를 주저하지 않는지 의문입니다.
저도 이제 마무리 해야겠군요...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말씀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소개합니다.
3. 지혜로운 자들은 궁창의 광채같이 빛나고 많은 사람을 의로 돌아서게 하는 자들은 별들과 같이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다니엘12장)
19. 형제들아,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진리를 떠나 잘못하는데 누가 그를 돌아서게 하면
20. 그 죄인을 그의 길의 잘못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한 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을 그가 알게 할지니라.(야고보서5장)
2010.08.09 ⓒ 사랑그리고편지
출처 : 비공개 카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