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2)
각시탈
여자보기를 돌같이 하던 신관 사또
고을 열녀에게 효부상을 주었는데…
젊은 신관 사또가 강원도 영월에 부임했다. 그 이름은 공덕수. 나이는 아직 서른에 못 미쳤지만 신언서판(身言書判)에 모자람이 없었다. 게다가 후덕한 인품에 인의(仁義)를 중히 여겨 한점 부끄럼도 없었다. 공 사또는 처자식을 한양에 두고 홀로 내려와 동헌에서 홀아비 생활을 했다. 이를 알고 육방관속이 진수성찬을 차려 질펀하게 연회를 베풀자 공 사또는 휘어진 상다리를 내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리더니 갖은 아양을 떠는 수청 기생의 손목 한번 안 잡고 연회를 파했다. 이후 모든 관리들은 그달 녹봉에서 연회비를 공제한 걸 알고선 아연실색했다.
정월 대보름이 코앞에 닥친 어느 날, 공 사또가 이방을 불렀다.
“대보름날 동헌 마당에서 윷놀이와 널뛰기를 한다지?”
“네. 매년 해오던 전통이라….”
“그날 효부 열녀상도 주게 상 받을 사람을 찾아보렷다.”
행사를 취소하랄까 봐 조마조마하던 이방이 냉큼 대답한다.
“나으리, 찾아볼 필요도 없습니다. 이 초시네 며느리 빼고선 효부 열녀를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온 고을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이 초시의 3대 독자 외아들한테 시집온 열일곱 홍실이는 반년도 안 돼 청상과부가 되었다. 새신랑이 죽고 나서 입덧을 하더니 유복자를 낳아 그댁의 대를 이었다.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시부모가 손자를 보자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온 듯 손자를 품속에 안고 살았다.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던 홍실이도 아들에게 젖을 물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며느리가 아이를 업고 야반도주라도 할세라 이 초시 내외는 밤새 아이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다 날이 새면 홍실이 품에서 손자를 뺏어 갔다.
손자가 젖을 떼자 이 초시 내외는 밤에도 데리고 잤다. 손자는 제 어미보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더 좋아했다. 그렇지만 홍실이는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어디서 돈이 생겼는지 툭하면 고깃국을 끓여 올리고, 이 초시의 비단 마고자를 짓고 시어머니의 공단 장옷도 마련했다.
정월 대보름, 영월고을 백성들 앞에서 사또는 홍실이에게 효부상을 내리고 열녀비도 동헌 밖에 세웠다. 그런데 인의와 예절을 중히 여기는 공 사또 귀에 묘한 소문이 들어왔다.
점잖은 이 진사와 술잔을 나누며 시를 짓는데 그가 이렇게 전하는 것이 아닌가.
“사또 나으리! 동강 주막에 가끔씩 돈 많은 거상이나 부잣집 도령이 들러 하룻밤 객고를 푸는데 그 상대가 주모나 기생, 유녀(遊女)가 아니랍니다. 시문에도 능하고 말과 행동에 품위가 있어 억만금을 주더라도 천박한 남정네에게는 몸을 주지 않는답니다. 은밀하게 이틀 전에 주모에게 예약을 해야 되고. 이상한 것은, 그 여자가 각시탈을 썼답니다. 이불 속에서도 탈을 써 남자가 벗기려 들면 은장도를 빼든다네요. 호사가들이 지어낸 헛소문인지…. 허허허.”
정선 금광에서 노다지를 찾았다는 광산주가 이틀 전 주모에게 예약을 하고 금침 깔린 안방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삼경(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이 가까워지는 늦은 밤 주모가 들어왔다.
“나으리, 오래 기다렸습니다요. 왔습니다. 약조하신 대로 절대 탈을 벗기면 안 됩니다.”
장옷으로 두 눈만 남기고 온몸을 가린 여인이 들어와 장옷을 벗었다. 소문대로 웃는 모습의 각시탈을 쓴 여인이 붉은 매화가 수놓인 비단치마에 연녹색 저고리를 우아하게 입고 살포시 앉았다.
“낭자도 한잔 하구려.”
여인이 뒤돌아앉아 탈을 올리고 술 한잔을 비웠다.
“저도 대인께 약주 한잔 올리겠습니다.”
목소리가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다.
“치마에 수놓인 홍매에 나비가 날아들 것 같구려.”
젊은 금광주와 각시탈은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나누며 매화 시도 한구절을 주면 대구절을 척척 받아넘겼다. 술상을 치운 뒤 각시탈이 저고리 옷고름을 풀고 치마를 벗자 촛불 역광에 망사속치마 속의 여인네 몸매가 고혹스럽게 드러났다. 금광주가 ‘후~’ 촛불을 끄고 눌러 썼던 갓을 벗었다. 일진광풍에 몰려온 먹구름이 폭우를 쏟고 천둥번개에 하늘과 땅이 붙어버렸다.
이튿날, 봄볕이 내리쬐는 동헌 마루 의자에서 코까지 골며 낮잠을 자고 난 공 사또가 혼자 중얼거렸다.
“맞아, 틀림없어. 아무리 얼굴을 가렸지만 효부상을 탔던 그 여인이야.”
시부모님 아침상을 차려주고 안방에 드러누운 홍실이는 “금광주? 아니야, 사또야"
첫댓글 즐감했어요
대단한 사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