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지체장애’ 이동·식사 등 인력지원 필요한 당사자
“명백한 법 위반에도 지자체 손들어준 법원” 분통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10일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특수교육대상자 초등학생에 대한 보조인력 미지원 차별 손해배상청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특수교육대상자에 대한 보조인력 미지원으로 인해 고통받은 장애학생과 그 가족이 경기도를 상대로 법정 싸움에 나섰지만 끝내 패소했다.
수원지방법원 민사8단독은 10일 중증지체장애인 하 모 양과 부모가 경기도를 상대로 한 특수교육대상자 초등학생에 대한 보조인력 미지원 차별 손해배상청구에 대해 원고 기각 판결을 내렸다.
판결 직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당사자인 하 양은 결국 지난해 우리나라를 떠났다. 이후에라도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작한 소송에서 법원은 행정청의 손을 들어줬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법률 규정이 있음에도 지자체가 이를 이행하지 않는 상황에서 법원은 무슨 근거로 소송을 기각했는지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수동휠체어 모습.ⓒ픽사베이
소송의 원고인 하 양은 장애의 정도가 심한 지체장애인으로,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으며 전반적인 근육 발달에 이상이 있다.
실내에서도 약 50cm의 매우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것 외에는 보행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밖에 의자에 앉기, 앉은 상태에서 일어나기, 화장실 이용하기, 하의 입고 벗기 등을 혼자 수행할 수 없어 일반학교 통합학급에서의 원활한 학교생활 및 이동권·학습권의 보장을 위해서는 특수교육지도사 등 전담 보조인력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
2020년 학교에 입학하며 보조인력을 신청해 지원을 받았으나, 다음 해인 2021년에는 교육청 특수교육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전담 보조인력을 배치받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교육지원청이 일괄적으로 관할 구역 내 학교들에 대해 ‘1개교당 1명’의 특수교육지도사를 배정하도록 결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하 양이 다니는 학교에는 이미 8명의 지적장애학생이 다니고 있어 1명의 특수교육지도사가 특수학급에 배치돼 있었고, 그 때문에 통합학급에 다니는 하 양만을 위해 추가로 인력을 배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전담 보조인력을 배정받지 못한 하 양은 3월 한 달 동안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3월 말에서야 특수학급 부담임·자원봉사자 등이 요일을 나눠 지원하고, 2학기부터는 사회복무요원이 배치됐지만, 지원은 수업시간뿐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대한 지원은 없었다.
아무런 지원 없이 방치당한 하 양은 교내에서 넘어지고, 다른 아이들이 밟고 지나가는 등의 사고가 있었고, 결국 지난해 2월 새 학기를 앞두고 아버지가 근무하고 있는 베트남으로의 이주를 선택했다.
또한 같은 해 4월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생활에 꼭 필요한 인적지원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한 차별행위에 대해 경기도를 상대로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0일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개최된 ‘특수교육대상자 초등학생에 대한 보조인력 미지원 차별 손해배상청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공익법률센터 김재왕 변호사.ⓒ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이날 판결이 끝난 직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와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이하 부모연대)는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1심 판결에 대한 유감을 표했다.
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공익법률센터 김재왕 변호사는 “특수교육대상자에 대한 보조인력 지원은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하 특수교육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당국과 학교는 은연중에 부모나 활동지원사가 지원을 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는 비단 경기도뿐 아니라 전국에서 매년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헌법에서도 모든 학생이 교육받은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며 “소송을 통해 무상교육·의무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보조인력 지원에 대한 특수교육법 및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에 대한 자태를 밝혀줄 것을 요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아직 판결문이 나오지 않아 어떠한 사유와 근거로 법원이 기각을 결정했는지 모른다”면서 “향후 판결문을 분석하고, 원고와 논의를 거쳐 항소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통합교육학부모협의회 정예현 회원은 “너무나 침통한 심정”이라며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에 교육 및 특수교육에 대한 법을 열심히 살펴봤고 장애학생이 교육받을 권리가 법으로 잘 보장돼 있음에 안심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처벌조항이 없어 학교장에게 특수학급 신설을 강제할 수 없기에 다른 학교를 찾아야 한다는 교육청의 설명에 좌절했고, 아이의 교육권을 보장해 줄 것이라 생각했던 법 조항은 그저 이상적인 상황들을 나열해 놓은 문구에 불과했다”며 “학교는 학생이 교육받기 적합한 환경을 갖추기 위해서 학교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교육기관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