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주에서 애리조나주 피닉스란 도시로
이어지는 62번 지방도로. 난 30분 넘게 내 앞에서
달리는 밴을 따라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 밴은 뒤에 네발 오토바이 같은 것을 실은 작은
철망짐통을 매달고, 평균 50마일(80킬로)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 달리고 있었는데, 나 또한 급할 것이 없으니
추월할 생각도 없이 그저 따라가고 있었다.
같은 전망을 보며 같은 길을 앞뒤로 줄 맞추어 달리는
길동무 인연은 그 전날 밤에 본 어느 간추린 영화에서
시작된 것 같다.
'노매드랜드'란 영화로 2020년 아카데미 상을 받았고
한국에도 2021년에 상영되었다는데 성공여부는
모르겠다.
영화제목에 나오는 '노매드(Nomad)는 원래
유목민이라는 뜻이었지만 지금은 자유로운 떠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바꾸어 나가며 창조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뜻한다고 한다.
예전의 히피와 그 개념적인 뿌리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 영화의 주인공인 펀은 갑자기 남편을 잃고 남편의
흔적과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낡은 밴에 싣고 무작정
집을 떠나 떠돌이의 삶을 살아간다.
일이 생기면 일을 하고 일을 잃으면 길을 떠나고..
밴을 타고 다니며 길 위에서 살다가, 여러 인연들로
노매드 무리들의 모임에도 참여하면서 지켜야 할 것들을
잃고 집을 떠나 길에서 떠도는 사람들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길과 삶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
그 이야기도 좋았지만 이십여분으로 간추려 놓은
그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그 영화의 배경들이
내가 미국 땅을 떠돌며 보는 여명이고 노을이며
산이고 황야고 바다였기 때문이었다.
앞에 달리는 차를 보며, 저 사람도 노매드일까?
밴 모양도 그렇고 다른 차들과는 달리 급할 것 없이
천천히 달리는 것도 그렇고 왠지 노매드일 것 같아
그의 뒤를 계속 따라 달려본 것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연기(緣起)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달리는 저 차의 사람과 내가 이 낯선 길을
삼십 분 넘게 같이 달리는 이 인연을 위해 얼마나
많은 순간의 기적 같은 인연들이 쌓여왔을까...?
조상의 조상의... 거슬러 올라 공룡의 시대도 거슬러
올라... 어쩌면 빅뱅 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
몰라 모른다 골만 아프지만, 그 가운데 더 또렷해지는
것이 있었다.
사이버 세상이건 현실 세상이건, 지금 시공을 함께하는
인연은 모두 도반의 인연이라는 사실, 우리 모두
길동무라는 사실.
그런 것들이 길이 말없이 일러주는 일상의 지혜라는
사실.
생각에 빠져들다 보니 앞서가던 그 길동무는 언제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첫댓글
같은 길을 가는 것이 동행이라 한다면,
동행 + 정 = 길동무가 됩니다.
길동무란 말 속에는
익숙하지 않는 곳에서의
의지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카페에 처음으로 왔을 때,
길동무란 말이 정겨워
일주일에 한 번은 따라 다닌 것 같습니다.
낯선 곳과 낯선 사람 만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 했던 시절이지요.
길동무라는 친근감으로
카페생활에도 익숙해졌습니다.^^
저도 길동무가 많이 있는 이곳
수필방이 참 좋습니다. ㅎ
동무라는 말은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
(북쪽 사람들은 예외)
영화 속의 주인공을 운전중에 만난것으로
연상 하시는 마음자리님의 상상력은 제가
상상하지 못합니다 .ㅎㅎ
그분을 상정한 건 아니지만
그분과의 동류라는 느낌만으로도
뒤따르는 기분이 참 즐거웠습니다.
생각에 잠겼다가 앞의 동반자가 사라졌군요.
드넓은 미국의 황야를 달리는 기분은 어떻까? ...상상해 봅니다.
영화 노매드랜드. 나도 보고 싶습니다.
네. 기회되면 꼭 보세요.
푸른비님도 공감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황야를 달리는 기분?
많은 시간과 많은 인연을 만나지만
기분은 가볍고 홀가분한...
저는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음, 제가 노매드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투밴을 구입해서 떠돌이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아... 그래서 '길위에서'란 아이디를
쓰시나 봅니다.
소원 이루시기 바랍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순위에 들어가는 회사의 대형트럭들은
속도도 65마일 이하로 제한되어 있고
시간도 급하게 재촉하지 않으니
그런 앞차 압박은 거의 하지 않는데
오너 트럭이거나 중소 트럭 회사 차들은 종종 그렇게 앞차들을 압박하는 것이 보이곤 합니다.
저는 워낙 추월을 많이 당해서 ㅎㅎ
어지간해서는 압박이나 추월 시도
안합니다.
광활한 대륙을 달리면서 자연히 철학자가 되는군요.. 우리모두가 사실 노마드이지요.. 잠깐 이지구에 놀다가 가는 사람들이지요.. 글내용이 참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