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일(토)
* 시작 기도
주님...
어느덧 9월이 가고 10월의 첫 날입니다.
이곳 베트남은 우기여서 계속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무더운 더위가 가시고 선선해서 좋습니다.
하지만 내 영혼에도 추수의 계절 가을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내리는 비와 같이 주의 보혈로 나의 영과 육을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 주옵소서.
주님으로 가득 채워져서 다른 존재물들이 침투해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되 예수로 부요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오늘 하루를 거룩한 불구자로 살되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잘 살아낼 수 있도록 나를 장악하여 주소서.
새로운 한 달도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과 동행하여 연합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코웃음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나를 쳐서 복종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창 30:1-13
제목 :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오만함조차 주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2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3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4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5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6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7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8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9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10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으매
11 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12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13 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 나의 묵상
레아는 야곱에게 4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 이름은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이다.
이들의 이름을 면면이 살펴보면 레아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다.
르우벤의 이름은 아들을 낳아주었으니 이제 나를 사랑할거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둘째를 낳고 시므온이라 이름한 것은 야곱의 사랑이 자신을 향한 온전한 사랑이 아닌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억울함을 들으셨다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셋째는 이제 아들을 셋이나 낳아주었으니 남편이 자기와 연합할 것이라는 뜻으로 레위라 지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남편이 자기와 연합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사람 곧 야곱에게 집중하던 그가 이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넷째를 낳고 그 이름을 하나님을 찬송하겠노라는 뜻을 가진 유다라 지은 것이다.
이처럼 레아는 연이어 아들 네 명을 낳았다.
이런 언니를 보고 있던 동생 라헬은 조바심이 났다.
자기도 아들을 낳아야 하는데 도무지 임신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 야곱에게 화를 내면서 나로 하여금 자식을 낳게 하지 않으면 내가 죽겠다고 한다.
이에 야곱은 오히려 라헬에게 화를 내면서 말하기를 내가 당신에게 임신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고 다그친다.
그러자 라헬은 겸연쩍은 듯이 그러면 내가 자식을 낳지 못할지라도 내 시녀인 빌하에게 들어가서 아들을 낳으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그 아들을 내가 내 아들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에 야곱이 빌하를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다.
빌하는 임신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
라헬은 그 아들의 이름을 단이라 지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억울함을 푸셨다는 뜻이다.
후에 라헬의 요구에 못 이겨서 야곱은 다시 빌하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또 아들을 낳았다.
이에 라헬은 빌하가 낳은 둘째 아들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다.
그 이름의 뜻은 내가 언니와 경쟁하여 이겼다는 의미이다.
한편 레아는 자기의 임신이 멈춘 것을 보고 그녀 또한 자기의 시녀인 실바를 야곱에게 들여보낸다.
실바를 아내로 얻은 야곱은 그에게로 들어가고 실바는 아들을 낳는데 레아는 그 아들의 이름을 갓이라 지었다.
그 이름의 뜻은 복되다는 의미이다.
또한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두 번째 아들을 낳았다.
그 이름은 아셀이다.
아셀의 뜻은 기쁨이라는 뜻이다.
오늘 본문까지 보면 야곱은 12명의 모든 자녀를 다 출산하지는 않았다.
레아를 통하여 4명, 그리고 라헬의 시녀인 빌하를 통하여 2명, 레아의 시녀인 실바를 통하여 2명 해서 모두 8명을 낳았다.
우리는 이미 야곱의 아들이 12명이라는 사실을 안다.
따라서 그는 앞으로 4명을 더 낳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아들을 낳는 출산 경쟁이 가관이다.
언니와 동생의 출산 경쟁, 이것은 질투와 시기가 어우러진 시기심 경쟁이 아닐 수 없다.
이들 두 아내들은 자녀들을 출산하면서 그 이름을 지을 때 하나님을 들먹인다.
이는 마치 그들의 신앙이 굉장히 좋은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유사 신앙이 좋은 것일 뿐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결코 이용될 수 없는 존재 그 자체이시다.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여기서 ‘만홀히 여기다’는 말은 헬라어 ‘뮉테리조’로서 이는 코웃음치다 조롱하다 비웃다는 뜻을 가진다.
다시 말하면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조롱하게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는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삶을 살면서도 거기에서 영생의 열매를 얻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는 자들의 행위에 대해서 하나님은 결코 조롱을 당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야곱의 두 아내, 레아와 라헬은 시기와 질투로 하는 출산 경쟁을 마치 하나님의 이름을 만홀히 여기는 그런 모습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만홀히 여기는 이 일은 결코 이들 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만홀히 여기는 자였기 때문이다.
나야 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조롱하고 업신여겼던 자이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는 것처럼 보이고, 설교단에서 설교도 하니까 사람들이 볼 때 우리 목사님은 얼마나 예수를 잘 믿을까 하는 신뢰를 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
겉으로야 예수를 이 세상 누구보다 잘 믿는 자처럼 행동했고 또 설교를 할 때면 틀린 말을 안 하니까 나의 삶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나는 하나님 앞에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 자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아닌 것처럼 할지라도 내 안에 숨어 있는 응큼함은 감출 수 없다.
내 안에 레아와 라헬의 하나님의 이름을 만홀히 여기는 응큼함이 숨어 있다.
설교단에서는 복음을 선포하지만 나의 실제적인 삶에서는 전혀 복음과는 거리가 먼, 나아가 생명과는 괴리감이 있는 그런 삶을 사는 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기와 경쟁으로 점철된 레아와 라헬의 출산 경쟁을 넘으셔서 이들의 질곡의 삶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게 하시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이름을 만홀히 여기는 나의 모습은 하나님의 심판만이 마땅하다.
묵상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생각은 전혀 딴 곳을 지향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 마음에 기준을 두지 않고 오직 나를 구원하시는 우리 주님의 뜻에 기준을 두고 오늘도 주님께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것은 나의 마음의 의지는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고 넘어질 수 있기에 그것에 의존하지 않고 결코 변함이 없으신 우리 주님의 말씀 곧 복음에 의지하여 파레시아로 나아간다.
나는 연약하고 부족하여 넘어지지만 날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다시 담대히 일어나 아버지 품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오늘은 10월의 첫 날이다.
정말 세월은 화살과 같이 빠르다.
한국은 지금 완연한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계절, 가을이다.
내가 있는 이곳 베트남 하이퐁도 가을에 접어들었다.
새벽과 저녁 날씨는 많이 선선해졌다.
아직 낮에는 많이 덥지만 그래도 선선한 날씨 탓에 피부에 와 닿는 촉감이 너무 좋다.
그리고 11월부터 내년 4월까지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 지내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 된단다.
정말 세월은 유수와 같이 빠르게 흘러간다.
이럴 때 우리에게 허락하신 때를 잘 계수하여 시간을 구속할 줄 아는 지혜를 구한다.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나 아담의 생명으로 살다가 아담의 생명으로 죽는 인생이야 말로 가장 비참한 인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담의 생명으로 태어났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아들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곧 위로부터 태어나는 아들의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 비록 아직 구속되지 못한 육신으로 그림자와 같은 이 세상을 살지만 아들의 생명으로 오늘도 하늘을 바라보며 영생을 누리는 실재적인 삶을 산다.
내 안에 아버지의 아들 곧 인자와 신실함이 가득한 독생자의 영광이 임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연약한 육신의 모습이 때로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우를 범하게 합니다.
마음으로는 주님을 잘 믿고 섬겨야지 하면서도 너무나 쉽게 넘어지고 자빠지는 나의 모습을 봅니다.
이런 모습으로 인하여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우울증에 넘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는 믿습니다.
우리 주님의 창세전 언약이 있기에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 그리고 시기와 질투로 점철된 모습조차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믿습니다.
육신으로는 비록 이 땅에 속하여 살지라도 나의 영은 늘 주님과 함께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영생의 삶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심판은 나를 진멸이 아니라 징계를 통하여 새롭게 회복하시는 줄 믿사오니 오늘도 주님의 그 심판 아래 거하여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 삼아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