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설의고향
#49금
3화 용의 눈물
1987년 가을 밤, 불야성인 석촌호수변 포장마차촌을 걷는 두 과객이 있었으니 편의상 용과 미꾸라지라고 부르기로 한다.
둥글넙적한 동안인 60대의 용이 가로되
; 정말 낭만 있구만. 이런 독특한 포장마차 문화는 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게야. 안 그런가?
꾀돌이 같이 생긴 40? 50대의 미꾸라지 가로되
; 그렇긴 해도 너무 대형화하고 폭력배의 이권다툼도 심해지는등 부작용도 많다고 합니더.
둘 다 평범한 옷차림이었건만 왜인지 커다란 선그라스를 쓰고 있었다.
용; 마 차차 나아지지 않겠노. 그런데 참말로 별별 이름이 다 있다카이. 맨발의 청춘, 라스베가스, 참새방아간, 이판사판, 눈물의 곡절,..저건 또 머꼬?
미꾸리; 묘기대행진? ...어째 질이 좀 안좋은 곳 같심니더만..
용; 아이다, 봐라. 열두시부터 공연을 시작한다 안카나, 재미있겠는데 함 드가보자.
묘기대행진이란 포장마차안엔 이십여명의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30대의 젊은 남자주인은 별다른 점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용과 미꾸리도 자연스레 한켠에 끼어 앉았다.
소주와 간단한 안주가 나왔을 때는 벌써 열두시가 되어 있었고 손님하나가 공연시간임을 상기시켰다. 하여 열려진 문을 신중히 단속한 주인..이하 죠스로 칭한다.
죠스가 가로되
; 야아, 이제부터 공연을 시작하것써유. 첫 번째 순서는 지가 지왼쪽 눈알을 이빨로 깨물 수 있을까유 읍쓸까유?
손님들은 다소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대부분 재미있어 하는 표정이었다.
죠스; 그냥 하면 재미가 없으니 여러분은 못 깨문다는 쪽에 백원도 좋고 천원도 좋고 걸어주세유.
해서 십시일반으로 수천원정도의 판돈?이 걸렸다. 당연 용과 미꾸라지도 천원씩 걸었다.
죠스; 감사혀유, 그럼 정답을 공개함니다유.
하더니만 다짜고짜 왼쪽 눈을 빼내어 이빨로 깨무는 시늉을 하는 것이 아닌가! 여자 손님의 비명이 조금은 났어도 실소들이 터졌다.
손님1; 에끼 여보쇼, 그건 의안이잖아..나원 참
손님2; 이 장사도 경쟁이 심하긴 하겠지만 참 여러 가지 하누만.
표정하나 안 찡그리고 의안을 도로 박은 죠스는 판돈을 챙겨 주머니에 넣더니만
; 이제 묘기대행진 제 2탄임다요. 지가 오른쪽 눈알도 깨물 수 있을까유 읍쓸까유?
손님3; 뭐야, 그럼 오른쪽도..?
손님4; 설마 그럴 리가, 그럼 장님이게?
대개 짐작은 했어도 골 때리는 점도 있었기에 이번엔 만원 넘는 판돈이 걸렸다. 과연, 죠스는 틀니를 떼어내더니 오른쪽 눈알에 갖다대었다가 무표정히 다시 끼우고는 판돈을 챙겼다. 징그러운 의안이나 틀니로 인해 손님들은 썰렁해져버렸다.
손님5; 젠장, 술맛 잡치게 뭔 짓거리야..
손님6; 난 묘기대행진이라서 뭔가 했더니만 기껏..
죠스; 자, 열화와 같은 성원에 보답코자 묘기대행진 3탄 고별쇼를 하것써유.
손님7; 열화같은 소리하고 있네. 이번엔 팔이나 다리를 떼었다 붙일 건가?
손님8; 머리를 떼었다 붙인담 모를까 그만해둡시다.
죠스; 그럼 지를 도와줄 성님 두분을 모시것써유.
하더니 밖을 향해 이덕화처럼; 부탁혀유~~
하자, 문이 열리며 후랑켄슈타인과 터미네이터같이 생긴 두 사나이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각기 야구배트와 오토바이체인을 들고 있었는데 살기등등한 표정들이었다.
싸늘한 기운이 스쳐가고 손님들은 삽시간에 얼어버렸다.
후랑켄과 터네터는 양쪽의 출구를 딱 막고 서서는 잡아먹을듯이 손님들을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숨막힐 듯한 정적속에 용과 미꾸리도 당연 오금이 저려올밖에 없었다.
죠스; 인자 마지막 문젭니다유. 우리 성님들이 손님들을 때릴까유, 안때릴까유?
하더니 신문지로 싼 돈?뭉치를 진열대에 탁 내리치며
; 지는 안때린다에 이백 걸었씨유!
; 어느 쪽에 걸건 손님들 자유니께 빨랑 거시유. 돈놓고 돈먹긴규!
... 모두 아연했다...
결국 때린다에 걸면 안 때릴 것이고 안 때린다에 걸면 두둘겨 팰 것이니.. 죠스의 말인즉 때린다에 걸고 얌전히 져달라는 것인데...이게 무슨 묘기냐, 강도질하려는 거냐, 당신 진짜 주인이 맞느냐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욱이 죠스는 한손엔 바구니, 한손엔 식칼을 든 채로 손님 한사람 한사람씩을 갈궈갔으니...
; 지금 농담허는규? 난 이백걸었는디 천원이라니..니가 양심이 있는 새낀규?
; 쎈타해서 돈 나오면 만원당 손꾸락 한 개씩 댕강할 건디 좋컸니..유?
; 돈없음 예펜네도 잡혀먹는 시상에 그게 무신 문젠규, 반지랑 목걸이 시계도 상관읍쓔
; 지금 개기는규? 길을 막고 물어 봐유, 세상에 돈따고 그만 두는 놈이 사람새끼냐규.
; 시파! 놋돈은 채워야지, 내기판에두 공중도덕이 있는겨!
; 우리 집에두 니 나이쯤 먹은 꼰대가 있는디 금이빨 빼도 좋겠니유?
; 사내새끼가 본전은 찾아야지 잃고 말어? 등신같은 시킬..칵 그냥
; 이 여자랑 애인이여? 어이 여자, 충고하는데 이런 한심한 새끼랑 결혼할 생각일랑 아예 허덜 말어. 돈 오만원도 안가지고 다니는 새낀 좃도 안슨다구.
드디어 용과 미꾸라지 앞에 온 죠스는 미꾸리가 내놓은 이만원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 있는 새끼들이 더 지독하다더니 젓가터서 원..이걸 돈이라고 내놓니유?
얼굴이 시뻘개진 미꾸리는 치욕을 참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십만원짜리 수표 한 장을 내놨건만.
죠스; 그래도 이 괭이 새끼가 농담 따먹기 하자네유?
; 첨에 여기 들어올 때부터 성님들은 두당 최소 오십짜리란 걸 알아봤단 말여..유.
그러면서 죠스는 감히 용더러
; 어이 군고구마엉아, 그래유 안 그래..유?!
용의 얼굴도 붉게 달아올랐는데 그의 인내심과 내공은 상당한 것 같았다.
죠스; 근데 이 군고구마가 귀가 먹은겨, 내 말이 말같지 않은겨?
죠스가 신경질적으로 용의 목덜미를 툭툭치자, 미꾸리는 황급히 지갑을 꺼내어 수표 몇장과 현금등을 모두 털어 놓았는데 백만원은 실히 될듯 했다.
죠스; 그래, 진작 이리 협조적으루다 나왔어야 양심적인 새끼지 말여..
; 첨이라 봐주는디 조심혀, 인생 고따위로 살지 말란 말여.
하며 제자리로 돌아가더니
; 좋았어유, 놋돈도 채워졌으니 인자 정답을 공개허것써유.
; 성님들, 손님들을 때릴규, 안 때릴규?
후랑켄이 무표정한 얼굴로; 새꺄, 우리가 약먹었냐? 선량한 백성들을 조지긴 왜 조져!
하자, 죠스는 반갑지도 않은 기색으로; 얼라? 그럼 내가 이긴개비네?
죠스; 에또...이것으로서 묘기대행진 공연을 마치것써유. 동남아 순회공연관계루다 바뻐서 이만 퇴장허것시유. 술값은 좀 있다 주인이 오면 계산하든지 말든지 꼴리는 대루들 허시구..
; 혹여 어디가서 개나발 까면 좋지 않을규, 우린 어디까지나 친선적으루다 인간적으루다 내기를 헌규, 노름판에서 돈 잃고 신고허는 놈이 젤 등신인규.
; 충고허는디 앞으룬 행여 노름판일랑 절대 끼지 마슈..바이바이 씨..투마렁. 아디오스...사요나라~
녹림도들이 물러가자마자, 손님들은 주인도 오기 전에 황황히 사라졌는데, 거의 동시에 검은 양복에 헤드폰을 낀 007과 008이 고꾸라질듯이 황급히 뛰어들어왔다.
미꾸리; 비상버튼을 누른지가 언젠데 이제야 기어오는 기고!!
007; 포장마차들이 워낙 많고 사람들이 많아서 혼선이 있었습니다.
008; 그런데 무슨 긴급사태라도..?
뭔가 말하려는 미꾸리를 제지한 용이 고개를 저었다
; 아니, 아무 일 없었네. 나가봐들.
미꾸리는 깨달았다. 역시 익명인채 묻어두는 것이 최선이지, 떠벌여서 백성들에게 쪽팔리는 일을 자청하는 건 바보짓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공인의 신분이었으니까.
그-래-셔-- 전설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런 건은 전설이 안될래야 안될 수가 없다.
그렇다. 용의 신분은 당대의 진짜 龍이었던 것이다! 물(水)용이라고도 불렸지만 인내심 많기로도 유명한 용이라면 여러분도 짐작할 것이다. 옛날 용의 사복微行을 흉내내어 시정의 민심을 살피러 나왔다가 그런 봉변을 당했으니 그 심경이 어떠했으리오?
007과 008이 물러간 후 용은 눈꼬리에 붙은 한방울의 玉淚를 씻어내며
; ..내 가장 친한 친구인 ‘본인’도 내 목덜미를 건드린 적은 없었거늘..
아는 분은 알겠지만 용의 목어림에는 비늘이 거꾸로 돋은 逆鱗이란 것이 있다. 자고로 역린을 건드리면 피바람이 분다고 했다.
미꾸리; 하지만 이대로 삭여서는 안됩니더. 단단히 보복을, 아참...응분의 조치를..
이를 악문 용의 얼굴엔 살기마져 감돌았다; 그야 물론이지!
아아~ 1988년도, 많은 포리스와 아전들이 동원되어 장안의 포장마차와 노점상을 깡그리 작살낸 력사를 여러분도 기억할 것이다. 겉으로야 88올림픽을 앞두고 도시환경 정비겸 폭력배의 이권다툼 때문이라는 핑계였지만 영세민의 생계에 괴멸적 타격을 가한 그 血事의 나변에는 실로 그런 숨겨진 비화가 있었던 것이다.
좌우간 조심들하시라, 당금의 용이 당신 바로 곁에서 술을 기울이며 귀를 쫑긋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新 전설의 고향 3화 끝
어지간하면 믿겠는데 이 썰만은 도저히 못 믿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저러다 명예훼손과 유언비어날조로 클날 수 있지 않느냐, 어쩜 국가보안법에 걸릴 수도 있다며 작가를 걱정해주는 분도 많을 것 같아 실명까지 공개한다.
아~ 말리지 말라, 무이도 막나갈 때는 양식이 바닥나버린다.
먼저 제보해준 미꾸라지는 박철언도 차지철도 아닌, 김형욱이고 그 당대의 용은....... ‘유동근’이여따!
유동근이가 한 때 龍이었다는 걸 모르는 한국민은 아마 없으리라, 헌재에 제소해서라도 난 이길 자신이 있다. 전직 용이었던 유동근씨가 나를 명훼로 고소해주기만 한다면... 나는 뜬다! 실토하자면 나는 뜨고 싶어 환장한 넘이다.
결정적 증인인 김형욱이가 죽었다는 첩보도 있지만 천만에, 어제 내게서 정선카지노에 갈 차비를 꿔가기까지 했는걸^^ -
2006.9 잠파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