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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 농성장 ‘탈시설지원법 제정’ 촉구하는 결의대회 열려
“우리도 다양한 경험과 감정 느끼는 사람, 보호 아닌 ‘실패할 권리’ 달라”
“탈시설, 왜 10년 안에 해야 하나?” 조롱한 이준석 규탄도
서지원 장애여성공감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얼마 전 JTBC ‘썰전 라이브’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는 거주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의 만족도를 이야기하며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당사자성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탈시설 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기준은 누가 정하나?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가? 장애여성공감은 ‘실패할 권리’를 외친다. 시설이란 폐쇄적 공간 안에서 보호란 명목으로 ‘안전하게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록 위태해 보일지라도 불안정한 일상을 살아보려고 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물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다. 모든 장애인은 독립된 주체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 (서지원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김현아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80명이 함께 사는 ‘해맑은 마음터’에서 6살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살다가 이후 그룹홈에서 22살까지 살았다. 중학교 때부터 자립하고 싶었지만 빨래하는 법도 모르고 음식 만들고 청소하는 법도 몰라 그룹홈에서 살았다. 그룹홈에선 네 명이 함께 살고 도와주는 선생님이 있었다. 시설에서 살 땐, 나가려면 선생님께 매번 허락받고 정해진 시간 안에 돌아와야 했다. 아침 7시, 점심 12시, 저녁 5시에는 꼭 밥을 먹어야 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9시에 자야 했다. 더 자고 싶은 날에도 일찍 일어나야 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는 없었고 눈치를 봐야 했다. 지금은 자립해서 사니깐 자유가 생겼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밥도 먹고 싶을 때 먹는다. 시설에 사는 발달장애인들이 나처럼 자유롭게 자립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탈시설지원법이 생겨야 한다.” (김현아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활동가)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중결의대회가 15일 오후 2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주최로 장애인권리보장법·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위한 여의도 이룸센터 앞 농성장에서 열렸다. 이들은 국회에 1년 5개월 넘게 계류되어 있는 장애인탈시설지원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피플퍼스트센터 활동가들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지난해 12월부터 ‘출근길 지하철 탑시다’ 투쟁을 진행해 온 전장연은 지난달 29일 인수위와의 면담 후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멈췄다. 이들은 현재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까지 인수위에 답변을 요구하며 경복궁역에서 삭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전장연은 인수위에 내년도 장애인권리예산 반영과 장애인권리민생 4대 법안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 중이다.
전장연은 줄곧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에 대한 중앙정부의 책임을 요구해왔다. 탈시설은 2014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권고한 사안이다. 이러한 국제 패러다임에 맞춰 전장연은 인수위와 기획재정부에 내년도 탈시설-자립지원 시범사업 예산 807억 원, 활동지원서비스 예산 2조 9천억 원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29일 SBS 보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와 기재부는 “활동지원예산을 한꺼번에 늘릴 수 없다”, “탈시설은 3년간 시범사업을 해봐야 한다”, “탈시설과 관련해 장애인단체 간 이견이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전장연은 “활동지원 24시간은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을 만드는 예산”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복지부는 하루 최대 16시간까지만 지원하고 있으며 나머지 예산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의 책임을 거부하고 있다.
또한, 전장연은 “탈시설은 이미 서울, 경기, 부산, 대구 등 14개 시‧도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으며, 중앙정부가 법적 근거를 확보하여 전국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단계”라면서 “최초 탈시설 정책이 2009년 서울시에서 발표된 것을 고려할 때 2022년에 와서 ‘탈시설은 시범사업을 해봐야 한다’는 정부 태도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근거한 탈시설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승권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유승권 집행위원장은 15일 오전, 인수위에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며 삭발했다. 사진 강혜민
- 지역사회 서비스 충분히 지원되면 탈시설 반대하는 부모 없을 것
지난 7일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1년 5개월 만에 장애인권리보장 및 탈시설 지원 관련 법률안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에서 탈시설은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닌 권리 주체로 인정하고, 시설 중심의 장애인 복지 패러다임을 지역사회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주되게 나오며 정부 책임에 관한 질문이 연이어졌다.
그러나 일각에선 탈시설을 반대하는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에 대해 유승권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은 “만약 정부가 탈시설로드맵을 이야기할 때 ‘걱정하지 마시라. 지역사회에는 많은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고 설명하면 부모들은 탈시설에 대해 고민은 해도 반대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지역사회 서비스에 대한 충분한 지원과 안내 없이) 시설 폐쇄만 이야기하니 반대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 책임을 강조했다.
정민구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정민구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또한 “거주시설에 자녀를 보낸 부모님의 이야기를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들어보면 이들은 탈시설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이들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원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정 활동가는 “정치인들이 지금 해야 할 것은 탈시설 반대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을 법률로써 보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3일에는 안동의 한 장애인거주시설에서 10년간 장애인 학대가 지속해서 발생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내부고발자의 제보를 통해 공개된 영상 속 시설 상황은 끔찍했다. 법인 이사장 일가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시설은 이사장의 처조카가 중증 발달장애인에게 발길질하고, 또 다른 영상에서 거주인은 뒷짐 지고 무릎을 꿇은 채 벽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다른 거주인들은 그 상황을 고스란히 다 보고 있었다. 시설에선 학대뿐만 아니라 횡령도 일어났다. 그럼에도 매년 안동시가 진행하는 지도점검에서 해당 시설은 ‘문제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 활동가는 이러한 사실을 전하며 탈시설지원법에 명시된 ‘원스트라이크아웃제’(단 한 번의 인권침해 발생에도 즉각 시설 폐쇄)와 ‘10년 이내에 모든 시설을 폐쇄한다’는 조항이 절대 삭제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설은 구조적 특성상 인권침해가 발생해도 외부에 알려지기 어렵다. 이 시설에선 10년간 폭행이 지속됐음에도 2004년 설립 이후 인권침해로 처벌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서 “수면 위로 드러난 한 번의 인권침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하나의 사건이 드러나기 전까지 수많은 인권침해 사건이 물 밑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10년 안에 모든 시설 폐쇄하는 게 왜 무리인가. 20년, 30년간 시설에서 살아가며 학대받고 착취당한 장애인 당사자가 이미 존재한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조사에 따르면 지난 5년간 180번의 인권침해 사건이 적발됐다고 한다. 적발된 것만 한 달에 세 번꼴이다”면서 “지금 이 시각에도 누군가는 시설에서 학대당하고 있다. 여전히 폐쇄 찬반 논쟁을 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고 전했다.
임정득 문화노동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강혜민
임정득 문화노동자의 노래에 환호하는 사람들. 사진 강혜민
- “민주당, ‘검수완박’ 추진하듯 탈시설지원법 추진하라”
이날 결의대회에는 지난 13일 JTBC ‘썰전 라이브’에서 있었던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의 토론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토론에서 이준석 대표는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요구하는 박 대표의 질의에 대답은커녕 지속해서 회피하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탈시설에 대해서는 “문제 있는 시설은 극소수인데 왜 탈시설 해야 하냐, 왜 10년 안에 해야 하냐”며 탈시설에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만을 적극 옹호했다.
장종인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은 이러한 상황을 내외부의 비판에도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초고속으로 추진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비유했다. 장 집행위원장은 “지금 정치권이 검수완박으로 시끄럽다. 민주당은 검수완박을 우선 추진하고 부족한 것은 나중에 채우자고 한다”면서 “탈시설지원법 이야기할 때마다 지역사회가 준비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추진하느냐고 한다. 그런데 탈시설의 방향이 맞다면, 민주당이 검수완박 추진하듯 탈시설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으냐”고 질타했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탈시설은 생존의 문제다. 코로나19 시기에도 시설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나고 많은 장애인이 죽었다. 그러나 정부는 탈시설에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매년 수백억씩 시설 예산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탈시설한다고 하면서 왜 시설에 돈을 쓰고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명숙 활동가는 8년 전 세상을 떠난 고 송국현 활동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꽃동네에서 탈시설하여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던 송 씨는 당시 장애등급이 3급이라는 이유로 필요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그로 인해 집에 혼자 있던 사이 발생한 화재를 피하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불타 죽었다. 결의대회가 열린 저녁에는 송 씨의 8주기 추모제가 열리기도 했다.
명숙 활동가는 “이준석 대표는 ‘탈시설하면 장애인이 위험해진다’고 하더라. 그러나 탈시설한 사람들은 탈시설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 지역사회 서비스가 없어서 죽었다. 그래서 권리예산 책정하라는 게 우리의 요구다. 우리는 존엄한 인간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저녁 5시에 여의도 농성장에서는 탈시설자립생활운동가 고 지영 9주기와 고 송국현 8주기 추모제가 함께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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