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을 감추려고 자료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과 진실을 밝히려고 자료를 찾아내는 것과 어느 쪽이 쉬울까요? 거짓을 감추려고 진실을 알 만한 사람들을 제거해야 하고 끝없이 거짓을 사실처럼 꾸미려고 증거가 될 만한 사실들을 자꾸 찾아내서 없애야 합니다. 대신 진실을 드러내려면 숨겨진 사실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증인이 될 만한 사람들을 찾아내야 하고 증거가 될 만한 자료들을 발굴해내야 합니다. 또 문제가 있습니다. 법정에서 증거로 받아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법정에 나와서 증언해주겠느냐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행여 목숨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면 감히 그 자리에 서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면 뇌물을 받고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법정 싸움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작업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타협하고 끝내라는 것이지요. 그만큼 시간과 돈이 들기도 합니다. 일일이 따라가려면 일반 사람들은 중간에 지치고 말 수도 있습니다. 생업이 날아갈 수도 있고 가진 것 다 날려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입니다. 어쩌면 그냥 포기하고 말지 하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그런데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 다르지요. 죽자 사자 달려들어야 합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것이라면 붙어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민사사건이라면 포기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형사사건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이 때는 국선 변호사가 선임될 수도 있습니다.
과연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살인범이 되어 체포됩니다. 세상에, 그렇게 착하고 다정한 이 남자가 어떻게 살인범이 될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한두 사람도 아니라 여러 사람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답니다.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 사건이 군 시절에 행한 일이기에 군대서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군 재판을 받게 됩니다. 민간인 사건이라 해도 쉽지 않은 사건인데 소위 군법재판입니다. 감히 변호를 맡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일단 변호사인 자신이 남편의 변호를 맡기로 합니다. 그러나 군대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습니다. 군부대에서 떠맡은 젊은 장교가 변호사로 지정되었지만 도무지 믿을만하지 않습니다. 지원군이 필요합니다. 찾아내기는 합니다. 허름한 사무실에 반려견과 둘이서만 지내는 퇴역군인입니다.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습니다. 그나마 하려들지 않으니 도움을 간청합니다.
전직 군 법무관이었던 ‘찰리 그라임즈’도 처음에는 타협하도록 제안합니다. 그만큼 군대 내 재판은 어렵다는 뜻이겠지요. 물론 상대방에게서 타협을 제안받기도 합니다. 타협을 한다면 아무리 잘 해줘도 옥중생활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몇 년이냐 그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를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남편 ‘톰’(실제 이름은 ‘로날드 채프만’)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내인 ‘클레어’도 동의합니다. 군대가 남편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운 것이라고 믿기에 어떻게든 무죄를 주장하고 입증하기로 합니다. 어려운 작업이 시작됩니다. 문제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자들이 방해공작을 벌이는 것입니다. 클레어에게 관계된 사람들이 함께 위협을 당합니다.
본인 혼자서 당하는 아픔이고 고난이라면 그래도 버티고 견딜 텐데 주변 가까운 사람들이 위협을 당하는 일은 그냥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15년 전 톰 아니 채프먼은 엘살바도르에서 비밀작전을 수행하며 비무장 민간인을 9명이나 학살했답니다. 남편이 특수부대 비밀작전요원 소위 킬러였다는 사실부터 생소하고 놀랄 일입니다. 내가 가장 잘 안다던 사람의 과거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기야 그게 대수겠습니까? 그러나 그 무시무시한 훈련을 받은 특수요원이라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서늘한 기분일 것입니다. 아무튼 지금은 누명을 벗기고 남편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위태위태한 방해공작에 마음이 약해지기도 합니다. 어렵게 조금씩 증거와 증인들이 모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 사건의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긴 시간 그 사람도 남편 톰을 찾아다녔습니다. 아마도 언론에 보도가 되면서 그 사람도 위치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클레어를 찾아옵니다. 새로운 사실, 이것을 믿어야 하나? 더욱 헷갈립니다. 군은 군대로 그리고 남편은 남편대로 서로가 숨기는 것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잖아도 사랑하는 남편의 과거를 알게 됨으로 놀라서 한동안 갈피를 잡기 힘들었는데 다시 접하는 또 새로운 사실로 인하여 마음이 혼란에 빠집니다. 그러나 일단 그동안의 증거들로 인하여 톰은 무죄 방면됩니다. 재판에서는 승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동업자 찰리가 함께 하지 않아 서운했습니다.
재판이 끝난 흥분 속에서 찰리의 전화를 받습니다. 옛날 사건 현장에서 전화한 것입니다. 인터넷을 켜고 당시 톰의 행적을 찾아보라 합니다. 놀라움 속에서 클레어는 당시 톰의 행적을 따져 묻습니다. 톰이 갑자기 클레어를 위협하는 가운데 그 때의 목격자가 침입합니다. 사건 속에는 사실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찾아내는 일이 쉽지 않아도 숨기려하는 자들이 놓치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지요. 아주 사소한 것들 말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에 원한을 심으면 언제고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봅니다. 영화 ‘하이 크라임’(High Crimes)를 보았습니다. 2002년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