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의 95년작 <적멸> 대중가요 <대전부르스>의 가사 일부가 주제와 딱 맞아떨어진다.
해질녘이면 도서관을 찾는다. 서울 광화문 부근 조그만 벤치, 그날은 낙엽 하나가 발단이었다. 의자에 앉아 감았던 눈을 떴는데 나뭇잎 하나가 스르르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니 이철수 선생의 목판화가 떠올랐다. 작가는 떨어지는 붉은 잎 하나를 나무에 새겨 종이에 찍어두곤 <대전 부르스>의 가사를 옆에 흘렸더랬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오래전 보았던 판화 속 풍경과 노랫말을 소환한 채 눈앞의 나뭇잎을 한참 바라봤다. 외로운 낙엽 한 장에 물끄러미 눈길이 머무는 가을, 중년의 시작이었다. 젊은 시절, 나는 언제나 술집에서 저녁을 보냈다. 회사 근처에는 술집들이 즐비했다. 광화문, 북창동, 무교동, 종로에 걸쳐 정글처럼 얽힌 술집들을 전전하며 참 많이도 마셨다. 당시 광화문 일대로 출근하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누적 음주 순위를 매기면 아마 난 100위 안에 들지 않았을까. 20년 넘는 시간 동안 퇴근 후 주점에서 시간을 보내며 일상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중년의 저녁까지 침침한 술집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를 치유해 줄 특별한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바로 도서관이었다. 술집 대신 도서관에서, 알코올 대신 책에 취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금세 '서울도서관'의 단골이 됐다. 옛 시청 사옥에 자리한 서울도서관은 술집들에서 멀지 않다.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 제목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술집 옆 도서관'인 셈이다. 화려한 네온사인, 왁자지껄한 말소리, 거나한 취기를 뒤로 하고 오래된 나무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며 중년의 가을을 가꾸기로 한다. 눈 깜짝할 새 찾아든, 머잖아 겨울에 자리를 내줄 내 인생의 가을엔 고전을 읽고 싶었다. 이번에 읽지 않으면 영영 읽지 못할 것 같은 고전을 찾아 도서관 서가를 기웃거렸다. 그러다 고전 중의 고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집어 들었다.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서양의 2500년에 걸친 철학은 죄다 플라톤 철학의 각주라고 했는데 나는 서구의 서사는 모두 호메로스의 동어반복이라고 생각한다. 《오디세이아》를 읽어야 고대 그리스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단 말을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이 작품을 집어든 건 언젠가 책 소개 TV프로그램에서 들었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지극한 방랑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도 외로웠을까? 방랑 중에 자주 술에 취했을까? 궁금했다. 오디세우스는 집을 떠나 트로이의 전쟁터에서 10년을 보내고, 이후 집에 돌아오기까지 10년을 방황했다. 먼저 10년이 《일리아스》에 담겼고, 나중 10년의 이야기가 《오디세이아》다. 두 이야기 모두 지중해 연안과 섬을 무대로 삼는다. 2층 서가에서 비교적 손을 덜 탄 판본을 발견했다. 책을 집자마자 뒤표지를 확인했다. 책을 사거나 빌리면 책 전체를 상징하는 문구나 발췌가 담긴 뒤표지부터 살핀다. 책 뒤표지는 편집자의 마음이 담긴 곳. 초고 상태의 원고를 여러 달에 걸쳐 사유하며 읽고 매만지는 그들의 정성을 헤아린다. 그렇게 힘겹게 뽑아낸 책의 정수를 들여다보며 본문을 읽기 전 작가의 사유를 상상하는 건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이다. 《오디세이아》의 뒤표지에 적힌 한 문장에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나는 내면에 항상 조각난 마음을 안고 떠돌아다녔다.' 아마 오디세우스의 독백이리라.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냈다. 짧은 문장 한두 개를 적었다. 눈으로만 읽으면 읽는 순간 사라질 문장들이 하얀 종이 위로 간소한 몸을 얹었다. 노트 위에 또 하나의 세계가 구축된다. 한 글자 한 글자 펜으로 눌러쓰며 다시금 문장을 읊조렸다. 오디세우스는 상처 많은 사람이었을까. 조각난 마음이 아니었다면 싸움도 방랑도 그에겐 없었을지 모른다. 세상에 온전한 마음은 없다. 누구나 불화하고 방황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세이렌은 매혹적인 음악과 노래하는 목소리로 인근 선원을 유인하여 섬의 바위투성이 해안에서 난파를 만나게 하는 위험 한 반인반조의 생물이었습니다.(문헌 :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
《오디세이아》를 읽기 전부터 귀동냥으로 알던 장면이 있다. 바다에 출몰하는 요정 세이렌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뱃사람을 흘려 물에 빠뜨린다. 세이렌에 미혹 되지 않기 위해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은 스스로 기둥에 묶어 결박한 채 몸부림치며 세이렌의 노래를 듣는다. 왜 자신은 귀를 막지 않았을까. 그렇게라도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었던 걸까. 누군가 내게 물었다.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 자유를 옥죄고, 그 대가로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게 좋은 거야?" 세이렌의 에피소드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먼저 찾아 읽어보고 싶었다. 방대한 서사를 축약해 둔 책 후미의 역자 후기에서 세이렌 에피소드의 위치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다른 풍경에서 멈춰버렸다. 10년의 방랑 여정 중 오디세우스는 요정 칼립소의 섬에서 7년을 지낸다. 그런데 연인 오디세우스를 떠나보내기 싫어한 칼립소는 급기야 '불멸'을 제안한다. 수락하지 않으면 큰 고난에 처하리란 겁박도 서슴지 않는다. 오디세우스의 대답이 궁금해 칼립소가 등장하는 부분을 먼저 찾아 펼쳤다. 오디세우스는 과연 불멸을 받아들일까.
'어떤 신이 검붉은 포도줏빛 바다에 나를 난파시켜도 가슴속, 고통을 견디는 용기로 참아낼 겁니다. 나는 이미 엄청 많은 일을 겪고 고생 했는데, 파도와 전쟁에서죠. 여기에 이 고초가 더해지라 하지요.' -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중-
오디세우스는 왜 불사의 삶을 거절했을까. 내가 오디세우스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중년의 가을, 고민과 사유가 깊어진다. 오디세우스의 방랑에 푹 빠져있다 보니 어느새 밤 9시다. 곧 도서관이 문 닫을 시간이다. 사서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나도 이만 책을 덮고 일어날 채비를 한다. 가방을 정리하며 '도서관에서 중년의 가을을 지켜줄 궁극의 문장 하나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고전의 울창한 숲을 헤매자'고 결심했다. 그 속에서 만나는 전설적 대가들의 문장을 필사적으로 필사하면서. 도서관을 나오자 서글픈 취객 하나가 길 건너에서 달을 바라보고 있다. 그도 초저녁엔 나처럼 이별의 말도 없이 낙하하던 잎새 하나를 한참 동안 보았을까. 글 이지형(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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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과 음악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고운 걸음으로
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10월의 첫 주말
쌀쌀한 아침입니다 ~
행복한 휴일 보내세요
동길짱 님 ! ~
반갑습니다
사랑천사 님 !
고운 걸음으로
공감주셔서
감사합니다 ~
일교차 큰 환절기,,
건강과 보람으로 미소짓는
행복한 10월보내세요
~^^
안녕하세요...망실봉 님!
올려주신 고전의 숲을 방랑하는 계절
좋은 글 과 음악 감사합니다
조석으로 날씨가 차네요
늘 건강 유의 하시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반갑습니다
고운 방문길 흔적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하루
아침이 밝아오는 건
새로운 기회와 기쁨을
누리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늘 건승하시고
행복한 주말보내세요
yyuu 김 님 !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공유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다 ~
가을이 무륵익어갑니다
환절기 감기 유의하시어
건강하게 지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