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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 이학가의 조예와 문제
중국문화의 역사는 대단히 멀고 오래된 것으로, 일찍이 주진(周秦) 시대에 학술사상의 계파는 이미 백가(百家)나 있었습니다. 한(漢)나라 무제(武帝) 시대에 이르러서 무제 자신이 유가(儒家)의 학술을 제창하였기 때문에, 각 계파의 학술사상은 모두 유가로 귀순하여 영도자로 삼고 모두들 유가의 「육경(六經)」 연구를 중시하였습니다. 학술의 원리와 응용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인문 · 정치 · 교육 등에 대한 영향 이외에 처음에는, 공맹(孔孟)학설의 비밀 심전(心傳)을 얻었다고 표시하기 위하여 하나의 학파를 조성하려는 어떠한 동기가 결코 없었습니다.
당시에 동중서(董仲舒)가 영도한 뒤부터 다수는 모두 주해(註解) 고증(考證)의 작업에 종사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유가는 문자와 음의(音義)를 전문적으로 주해하는 훈고학(訓詁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대(代) 한 대 전습(傳習)하여 내려왔고, 무슨 심성(心性)이니 이기(理氣)니 하는 이런 부류의 현묘한 설(說)이 결코 없었습니다.
그런데 북송(北宋) 시대에 이르렀을 때 유가의 학술 중에 갑자기 한 파의 이학(理學)이 굴기하였는데, 이 새로운 이학파(理學派)는 자신들이 공맹 이래 유학의 중심인 심법(心法)을 얻었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 이학의 중점과 종지(宗旨)는 그 이전의 전통유학과도 크게 달라서 유가의 도학(道學)이 되었습니다.
이학(理學)의 강습(講習)은 새로운 면모를 개척하여서 그 가운데 산생한 새로운 설에는 심성(心性) · 이기(理氣) · 성정(性情) · 중화(中和) · 형상(形上) · 형하(形下) · 이발(已發) · 미발(未發) 등의 문제가 있었는데, 이 모두는 그 이전의 유학 속에서는 본 적이 없던 새로운 해석이었습니다.
최초의 이학은 두 파(염락廉洛 · 관민關閩)로 나누어졌다가 뒷날 주희(朱熹)와 육상산(陸象山) 두 사람의 의견만 남아서 서로 대립했습니다. 광명정대(光明正大)한 군자의 입장에서 말하면 의견의 대립은 학술 견해상의 연구토론에 불과할 뿐이며, 일[事]에 대한 것이지 사람[人]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일반 소인들은 오히려 스승의 문하 계파와 강학(講學)의 명의를 빌려서 암암리에 붕당을 맺고 조직함으로써, 뒷날 원우(元祐)와 경력(慶曆) 두 차례의 당금(黨禁 옛날 어떤 파벌이나 그 관련자들의 벼슬길을 막는 것. 당고黨錮/역주) 발생을 초래하였습니다. 학술적인 지선(至善)을 다투기 때문이라고 말하기 시작하였지만 결과는 도리어 좁은 인아(人我)의 다툼으로 흘러들어가 버렸으니 학술적 입장에서는 슬픈 일입니다.
이학가의 학술사상 성취가 도대체 어떠한지를 우리는 잠시 토론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데, 바로 이학가들이 자신들에 대해서 모두 엄격 신중[嚴謹]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스스로 지향하고 원하여 담박한 생활을 하고 물질적 향수(享受)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선악의 구분에 대하여 특히 대단히 진지하였습니다. 하나하나의 행위나 동작이 모두 불가의 대승도(大乘道) 행실을 포함하고 있거나 혹은 출가자가 엄격하고 신중하게 계율을 지킴으로써 자기를 단속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찬탄할 만 덕행이었습니다.
송(宋) 말기 시대의 문천상(文天祥)은 비록 이학가는 아니었지만, 그의 정기가(正氣歌)를 읽어보면 그의 인격의 숭고함이 최후에 조금도 두려워함이 없이 정의를 위해 희생하고 도를 위해 죽는다[殉道]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학문수양이 천인(天人)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절대로 그렇게 해낼 수 없는 것입니다.
명대에 왕양명(王陽明)은 시대적인 공훈업적을 창조했으며, 이이곡(李二曲) · 황종희(黃宗羲) · 고염무(顧炎武) 등 이런 분들의 학술과 수양도 모두 이학 속에서 도야(陶冶)되어 나왔기 때문에 비로소 충실함과 찬란함[光輝]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학가는 인성의 훈도(薰陶)에 대하여, 인륜 도통(道統)의 격려에 대하여, 공로가 뚜렷합니다.
이학의 전체적인 체계를 종합해보면 하나의 대강(大綱), 두 개의 종지(宗旨), 세 개의 방법으로 열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대강 : 바로 학문과 도체(道體)를 합일(合一)시켜 ‘극고명이도중용(極高明而道中庸)’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희와 육상산 두 파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두 개의 종지 : 주자(朱子)의 ‘도문학(道問學’과 육자(陸子)의 ‘존덕성(尊德性)’입니다. ‘도문학’은 반드시 옛 성현의 언어행위를 많이 인식하고 이해함으로써 지식학문의 확충을 위주로 하는 것이며, ‘존덕성’은 심성본연(心性本然)의 체험을 위주로 하는 것인데, 근본이 있으면 자연히 도가 건립된다는 것입니다. 두 개의 종지는 주자와 육자의 다른 두 개의 종지인데, 종지는 비록 다르지만 두 파는 모두 공부(工夫)로부터 입문할 것을 주장합니다.
세 개의 방법 : 용공(用功) 방법으로는 경(敬) · 성(誠) · 정(靜) 세 개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방법이든 유가에는 모두 비교 대조하고 실행할 수 있는 선례가 없습니다. 맹자(孟子)의 교화는 결코 이런 방법의 범위에 도달하지 않았습니다.『대학』속의 지(止) · 정(定) · 정(靜) · 안(安) · 려(慮) · 득(得) 등의 단계순서는 강요(綱要)를 제시하였을 뿐입니다.
사실 ‘공부(工夫)’라는 명사는 불법의 선정(禪定)에서 기원(起源)합니다. 당송(唐宋) 시대의 선종 문도들은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모두 선정에 힘썼습니다. 유가의 사람들도 선정 공부를 본받아서 일종의 설을 제창했는데, 학문을 하는 방법과 노선은 마땅히 정(靜) 중에 닦고 배워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유가에서 말하는 ‘주경(主敬)’과 ‘존성(存性)’은 모두 지정(止靜)의 공부입니다.
불가에서의 선정 성취에는 많은 구분이 있어서, 털끝만큼의 차이가 있어도 모두 지극히 큰 차이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정 속에서의 최고의 성취는 불법 가운데서 단지 정해탈(定解脫)의 범위에 속할 뿐 아직은 혜해탈(慧解脫)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학가들은 정정(靜定)의 공부에 대해 확실히 한 번의 심득(心得)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학의 정정 방면에서의 가장 큰 성취도 초선(初禪) · 이선(二禪)의 경지에 맞먹는 것일 뿐입니다. 만약 범부를 뛰어넘어 성인의 경지로 들어감을 말한다면 이학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승조(僧肇)법사가 “하늘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어찌 하늘이나 사람이 할 수 있는 바이겠는가[能天能人者, 豈天人之所能]?”라고 말한 대로입니다. 선종의 삼조(三祖)도 “옳고 그름의 상대적인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어지러워져 진심(眞心)을 잃어버린다[纔有是非, 紛然失心].”고 말했습니다. 이학가들은 실제로 이 시비(是非)의 마음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만약 뛰어넘을 수 있었다면 남북 송 시대의 이학은 면목이 틀림없이 달랐을 것입니다.
송명 시대의 이학이 담론한 심성(心性) · 이기(理氣) · 성정(性情) · 중화(中和) · 형상(形上) · 형하(形下) · 이발(已發) · 미발(未發)의 도리에는 모두 독창적인 견해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스스로 인정하기를, 이미 심신성명(心身性命)의 근본과 우주만유의 본체를 투철하게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들의 생각은 좀 경솔함을 면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이학의 독창적 견해는 단지 심리상의 최고 수양에 도달하여 심의식(心意識)으로 하여금 씻고 연마하여 깨끗해지도록 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망심(妄心)을 깨끗하게 씻어서 하나의 가없이 넓고 걸림 없는 청명(淸明) 경지를 남겨두고 그것을 망심이 다 깨끗해진 천리유행(天理流行)으로 여긴다면, 그건 크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유식(唯識)의 표준으로 가늠해본다면 그 청명담적(淸明湛寂)하고, 탕연무애(蕩然無碍)한 경지는 바로 제7말나식(末那識 : 意根)의 보금자리입니다. 만약 선종을 수학하는 사람이라면 이 경지에서는 바로 방할(棒喝)이 한 번 필요합니다. 그래야 학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아직은 최고도에 도달하지[到家] 못했음을 알도록 해 줄 수 있습니다. 그 속의 도리는 많지만 잠시 토론하지 않겠습니다.
이학가가 수양하는 목적은 인간의 사욕(私欲)을 없애고 천리(天理)의 정대함[正大]을 보존하는 것으로, 정명도(程明道)가 “천리 두 글자는 자신이 자세히 체험해서 나오는 것이다[天理二字, 是我自家體帖出來].”라고 말한 바와 같습니다. 정이천(程二川)도 말하기를 “사람이 하나의 천리만 있고 오히려 그를 보존할 수 없다면 또 무슨 사람이 되겠는가[人只有個天理, 卻不能存得, 更作甚人].”라고 했습니다. 주돈이(周敦頤)는 ‘성(誠)’을 주장하고, 평생 동안 늘 묵좌(黙坐)하여 자기의 마음을 맑게 하고 천리를 체득하고자 했습니다. 정이천과 주희(晦庵)는 ‘경(敬)’을 주장했습니다. 정문(程門) 사대(四大)제자 중에 사량좌(謝良佐 : 上蔡)는 ‘상성(常醒)’을 주장했고, 양시(楊時 : 龜山)는 주장하기를, 정(靜) 중에서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아직 발동하지 않은 상황을 관찰하여 기상(氣象)으로 삼고, 화정(和靖)하는 방법으로써 마음으로 하여금 한 물건도 용납하지 않는 정도에까지 거두어들이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이학가들의 방법은 비록 독창적이며 치밀한 곳도 있지만, 그러나 최고의 성취는 여전히 하나의 맑고 고요한[澄湛] 경지일 뿐입니다. 이 경지는 불학의 입장에서 말하면 여전히 ‘식음구우(識陰區宇 남회근 저 송찬문 번역『능엄경대의풀이』제7장을 참고 하기 바람/역주)’에 속합니다. 만약 선종 문하에서라면 아직은 아프게 몽둥이로 한 방 때려서 학인으로 하여금 내려놓고 곧바로 한 번 크게 죽음에 도달해서, 모든 망상을 철저하게 부정하여[貶軋] 몸을 숨길 곳이 없게 합니다. 그런 다음에 몸을 돌려 한 걸음 더 박차고 나아가야 비로소 저 하나의 원래의 문호(門戶)를 알 수 있습니다.
이학이 도달한 이 경지 같은 것은 그들이 스스로 인정하기를 범부를 뛰어넘어 성인의 경지로 들어간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들은 선종의 저 지해종도(知解宗徒 세간 일반의 지식에 기초해서 불교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역주)조차에도 비교가 못 되었으며, 더더욱 증오(證悟)했다고 말할 나위가 못되었습니다.
이학이 토론하는 우주본체는 여전히 사량분별(思量分別)의 마음을 떠나지 못하고, 단지 자기 마음안의 우주로써 마음 밖의 만유의 우주를 가상[設想]하였을 뿐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추측이지 결코 투철하고 원만한 이치가 아닙니다.
선종의 심법은 사량(思量)분별심을 멀리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학가의 이론이 만약 철학사상의 범위에 들어간다면 취할 점이 있습니다. 만약 이학이 도(道)에 가깝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도리어 크게 문제가 있습니다.
명 왕조의 대유학자인 왕양명은 육상산의 심법을 계승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왕양명의 학술은 이미 선종에 가깝다고 여깁니다. 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학술사상의 중심은 바로 그의「사구교(四句敎)」입니다,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이 성(性)의 본체이고(無善無惡性之體), 선도 있고 악도 있는 것이 의지(意志)의 움직임이다(有善有惡意之動). 선도 알고 악도 아는 것이 양지이며(知善知惡是良知),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는 것이 격물이다(爲善去惡是格物).”
만약 왕양명의 이 네 마디의 말을 선종의 심법과 같은 자리에 두고 논해도 된다고 여긴다면, 정말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체(體)가 본래 선(善)도 없고 악(惡)도 없는 것이라면, 이 심체(心體)는 바로 하나의 무용지물[廢物]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의지가 움직이면 곧 선악이 생겨나온다면 이 선악의 뿌리는 또 어디에 있을까요? 심체와 만약 서로 관계가 없다면 또 구태여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할 필요가 있을까요?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함이 심체와 또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마음의 체에 영항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체는 본래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첫째 잘못된 곳입니다.
마음은 체로서 선악의 의지가 움직임이 없기 전에는 절대로 선악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선악이 체(體)중에 잠복해있는 것일 뿐입니다. 이런 마음은 ‘성선(性善)’이라고 불러도 되고, ‘성악(性惡)’이라고도 불러도 됩니다. 왜냐하면 선악 두 성(性)이 모두 잠복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말하기를 마음의 체가, 의지가 움직임이 없기 전에는 깨끗하고 밝아[淨明] 허물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마땅히『대학』에서 말하는 지극한 선[至善]과 같거나 혹은 마땅히 순자(荀子)가 일컫는 본악(本惡)이어야 하는데, 왜 선도 없고 악도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없다[無]’와 ‘있다[有]’의 의미는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서 모두 절대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천하의 ‘무(無)’가 어떻게 ‘유(有)’를 생겨나게 할 수 있을까요? 이미 마음의 체가 있다고 말한 바에야 또 선도 없고 악도 없다고 말함은, 변증(辯證) 명사의 관점에서 보면 역시 도리에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無)’자를 아니다는 의미의 ‘비(非)’자로 고치는 것이 비교적 합당합니다. 이것이 왕학(王學)의 두 번째 잘못된 곳입니다.
왕양명의 사구교 가운데서, 닦고 배움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하나의 ‘지(知)’자입니다. 왜냐하면 양지(良知)가 있어야 비로소 선악을 변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는 공부를, 의지가 움직이기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하나의 방법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나 왕양명의 설은 의지가 움직이기 이전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이라고 하니, 시험 삼아 묻겠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用功] ‘무(無)’로 되돌아가는 게 또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무용지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또 심성을 알려고 해서 뭐하자는 것입니까?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이해할 수 없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지(知)’자인데, 도대체 어디로부터 생겨나는 것일까요? 만약 ‘양지’가 심체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심체는 무용지물이 아니게 됩니다, 만약 ‘양지’가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심체와 관계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 하나의 ‘지(知)’는 의지의 움직임일까요? 의지의 움직임이 아닐까요? 만약 의지의 움직임이라면 선악의 범위 속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만약 의지의 움직임이 아니라면 ‘지’는 바로 마음의 체가 된 것이 어찌 아니겠습니까? ‘지’가 바로 마음의 체인 바에야 ‘선도 없고 악도 없음이 마음의 체이다’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세 번째 잘못된 곳입니다.
왕양명은 한 시대의 유학 대가로서, 그의 사구교 강령은 이렇게 엄중한 잘못이 있는데도 다들 이해하지 못하고 의외로 여전히 왕학을 심성이학(心性理學)의 최고 성취로 여기고 있으니, 식견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말 안타까워하게 합니다. 이전에 저의 유학 선생님인 침석(針石)노인께서 글을 지어 왕학의 잘못을 변설(辯說)하여 자세히 해석하였습니다.(사구교에 대한 보다 자세한 강의는 남회근 저 송찬문 번역 『역사와 인생을 말한다』 부록 ‘인성의 진상을 말한다’를 참고하기 바람/역주)
(남회근 선생 저『선해려측(禪海蠡測)』에서 뽑아 번역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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