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 법융스님은 출가하여 49세가 되자 건강 우둔산 유서사에 선실을 짓고 살았다.
이 때 너무 열심히 수행하는 것을 보고 새들 조차 꽃을 물고 와서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하루는 선의 4조 도신스님이 와서 법을 설해주고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로부터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법문을 듣고 교화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도신스님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는 이상하게 새들이 더 이상 꽃을 물고 오지 않았다.
우리들 일반 중생들은, 큰스님이나, 도인, 깨달은 자라고 하면 당연히 새들 조차 찾아와 공양을 올리고, 짐승들도 알아보고, 신비한 현상들이 그 분들 주변에 늘 일어날 것이라고 여기곤 한다.
옛날에 알고 지내던 한 노스님은 방 안에서 수행 중에 한 뱀이 나타나 곁에서 지켜보다가 절을 하고 떠났다고 하셨다.
어떤 큰스님은 산에서 수행 중에 큰 눈이 와서 얼어 죽을 줄 알았는데, 눈을 떠보니 살아있고 온기가 있어서, 살펴봤더니 곰들이 찾아와 스님의 정진을 돕느라 곁에서 온기로 죽지 않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은 만들어 내기를 좋아한다.
왜일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도인 같기 때문이다.
수행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인과에 속한다.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하는 것의 결과가 따른다.
수행을 잘 하니 새가 꽃을 따서 공양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수행이라는 인과를 뛰어넘어, 지금 곧장 이 자리에 늘 있던 것을 문득 깨닫는 것은 인과가 아니다.
열심히 할 것도 없다.
그 때는 더 이상 새가 꽃을 공양하지 않는다.
신비한 현상이 사라진다.
이것이 진정한 공부다.
공부를 한 사람 주변에 신비한 현상, 놀라운 현상이 벌어진다면, 여전히 인과 속의 세속일일 뿐이다.
진정한 공부는 그렇듯 신비한 현상과는 상관이 없다.
더없이 평범해진다.
20년 쯤 전에, 한 절에서 우담바라꽃이 피었다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친견을 하며 야단법석을 피울 때였다.
우리 절 내 방앞 창문에도 똑같은 우담바라가 피었다.
난리를 치며 우리 절에도 우담바라가 피었다며 한 법우가 감탄을 하기에, 그 법우를 데리고 가서 우담바라를 한 손으로 뜯어 버렸던 적이 있다.
그런 모양에 현혹된다면 이 공부를 시작도 못 한 사람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