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2: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 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떼나 이루었나이다......."
진리 - '확증하다', '신실하다'란 뜻을 가진 동사 '아만'의 파생어로 하나님의 품성의 한 특징인 '성실성' 혹은 '진실함'을 의미한다. 즉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확인된 진실을 가리킨다. 이는 야곱이 지난 20년간의 삶의 여정 가운데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몸소 경험한 데서 비롯된 고백이다.
나는...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 '작은'. '약한'이란 뜻인 '카톤'의 완료형으로 '나는 여태껏 미천하고 보잘 것 없었듯이 지금도 부족함 투성이다'는 의미이다.
이는 곧 자신의 간교했던 행적에 비해 너무나 크신 하나님의 긍휼을 생각하며 감격에 찬 심정으로 현재의 곤고함에서도 자신을 넉넉히 구원하실 것을 믿는 감사와 확신에 찬 기도이다. 지팡이만 가지고 - 20년전 급히 도피하던 처량한 자신의 모습을 강조한 말로서 하나님이 내리신 현재의 축복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삼하 2:6]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은혜와 진리 - 이 두 단어는 하나님의 언약과 관계된 용어들이다.그중 먼저'은혜'로 번역된 '헤세드'는 단순한 관대함이나 인자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적 사랑을 의미한다.
즉, 이는 하나님의 언약대로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어 그의 보호를 받게 되는 은혜를 의미하는 말이다.다음으로 '진리'로 번역된 '에메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식언치 않으시고
그대로 지키신다는 의미의 '진실'을 말한다(삼상 15:29).따라서 다윗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하나님과의 언약 가운데 있으면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풍성한 복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 본문은 9절에 서술한 성육신 사건을 다시 언급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육신'은 육체적 존재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오신 것처럼 보였으나 육체로 오시지 않았으며 그의 수난도 하나의 가상이었다'고 주장했던 영지주의의 가현설을 본문은 '육신'이라는 한 단어로 여지없이 붕괴시킨다.
한편 '사르크스'는 일반적으로 '몸'을 의미하는 '소마'와는 다른 뉘앙스로 쓰였다. 즉 '사르크스'는 주로 부패하고 도덕적으로 연약한 육신을 의미한다. 바울도 이 용어를 하늘이나 영의 영역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쓰고 있다. 즉 하나님의 지혜와 육체의 지혜, 하나님의 권능과 육체의 무기는 서로 반대되며 서로 대적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과 '육체'는 결코 부합 될 수 없다. 그러나 이 용어가 그리스도에 대해 쓰일 경우에는 부패하고 도덕적으로 연약한 '육체'를 의미하지 않으며 단지 인간적인 한계성과 연약성을 지닌 존재임을 나타낸다. 이는 그리스도의 완벽한 성육신을 나타낸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증으로서 본서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잘 보여준다. (1) 피곤 (2) 갈증 (3) 하나님께 의존 (4) 슬퍼 눈물을 흘리심 (5) 분노하심 (6) 갈등 (7) 수난과 죽으심 등.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 '우리 가운데라는 표현은 10절의 '그가 세상에'라는 말과 내용상 일치한다. 즉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졌으며, 우리 인간들 속에서 발생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천막을치다'란 뜻의 동사 '스케노오'의 부정과거 능동태인 '에스케노센'을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역사성을 실증한다. 따라서 본절은 마1:18-2:23과 죽 2:1-20의 성육신 기사를 함축적으로 요약한 말씀이다. 한편 '에스케노센'이란 표현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러한 해석은 시내산에서의 하나님의 현현 장면과 본문의 전후 내용을 비교해 볼 때 상당한 설득력을 제공해 준다. (1) 성육신하신 예수께서 '임시적으로' 이 땅에 계셨음을 가리킴. (2) '하나님의 임재'를 상기시킴. 유대인들이 광야에서 방랑할 때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곳으로 정해진 곳이 바로 '장막'이었으며, 특히 요한이 곧이어 '영광'에 관해서 언급한 사실도 이 해석을 뒷받침한다.
왜냐하면 영광과 장막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3) 모세에게 주어졌던 계시가 예수에 의해 확연히 밝혀졌음을 보여줌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 '보니'에 해당하는 헬랑어는 '놀라운 광경을 보다'라는 뜻의 '데아오마이'의 부정 과거 중간태로서 '놀라운 상태에서 실제로 목격했다'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는 아마도 저자 요한이 예수님의 변모 에 대한 회상을 기초로 하여 사용한 용어인 것 같다. 그때 예수는 거룩한 광채와 함께 나타나 보이셨으며, 하나님의 사랑스런 아들이심을 나타내셨다. 이는 시편 기자의 '주의 영광를 저희 자선에게 나타내소서'라는 간구를 연상테 한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공생애와 부활은 그 자체로서 어둠 속에서 빛이 환하게 비치듯이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사건으로서 우리 성도들의 영광을 위하여 예정된 것이었다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 - 저자 요한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근원이 인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성에 있음을 재천명한다. 즉 1절에서 그리스도의 영원성, 인격성, 신성을 나타냈듯이 본문에서도 '...같이', '...만큼'이란 뜻을 지닌 부사 '호스'를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영광이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영광과 대당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독생자'라고 번역된 '모노게누스'는 '모노스' '유일한)와 '게노스' '종류', '혈족의 합성어로서 누가 복음과 히브리서에서 '외아들' 또는 '외동딸')을 지칭한다. 그러나 요한에게 있어서 이 용어는 오직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으며, 누가복음과 히브리서에서 보다 더 심오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는 (1) 하나님의 자녀중 하나가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서 중보자적 사역을 담당하시는 유일하신 분이며,(2) 하나님과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를 지니신 대등하신 분이며, (3) 이 세상에 하나님을 완벽하게 계시하신 유일하신 분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일부 학자들은 1:1-3절의 내용을 무시하고,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라는 요일5:18의 내용을 증거로 하여 '그리스도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됨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한 것일 뿐이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은혜와 진리'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였다 사도 요한은 앞 문장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광이 대등하고 등질적 임을 묘사한 후에 곧 이어서 하나님의 성품인 은혜와 진리가 바로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성품과 일치함을 보여준다.
이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그의 지상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본성을 드러내셨음을 시사한다 특히 기독교적 측면에서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이 인류 구속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신 그 일방적인 행위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이다. 한편 '가득차서 넘치는'이란 뜻의 헬라어 서술적 형용사 '플레레스'는 은혜와 진리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 속한 은혜와 진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차고 넘치게 흘러 나와 성도들에게 임하여 역사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