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심심한 위로’라는 표현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위로는 위로인데 지루한 위로인가? 엉뚱한 해석을 했더랬다. 알려진 대로 ‘심심하다’는 심할 심(甚)과 깊을 심(深)자를 쓴다. 직역하자면 ‘심히 깊은 위로’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대개 상담이란 게 제 속풀이나 후련히 하자는 것 아닌가. 특히 연애 문제는 푸념을 가장한 은근한 자랑으로 끝나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이번엔 달랐다. K는 성격이 깔끔해서 헤프게 고충을 털어놓는 이가 아니었다.
K는 새로 부임한 직장 상사와 마음이 어긋나 괴로워했다. 그의 눈시울이 붉게 젖어 드는 걸 짐짓 못 본 척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이야기보따리를 줄줄 풀어놓았다. 전업 작가가 되기 전 오랫동안 직장을 다녔던 터라 얄미운 상사에게 시달렸던 일을 떠벌렸다. 제풀에 신나서 떠들다 보니, 아차 싶었다. 내가 더 열성으로 하소연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딴에는 고민을 덜어주려고 한 소리였는데 어쭙잖은 충고를 한 무더기 얹어준 셈이었다.
지난봄 K는 나를 집으로 초대해 점심상을 차려 준 적이 있다. 멸치 육수를 낸 시원한 냉이된장국에 갓 지은 솥밥, 신선한 양상추샐러드와 우엉 등 간소한 반찬이 알맞게 그릇에 담겨 있었다. 나는 밥그릇을 달게 비웠다. 그때를 떠올리면 진심이니 연민이니 하는 그럴싸한 관념보다 구체적인 위로는 행위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가 나를 위해 수저를 가지런히 놓고, 국의 간을 보고, 장을 본 것이야말로 별다른 말이 필요 없는 위로였다.
타인의 고통에 경중을 재지 않는 위로. 섣불리 판단하며 조언하지 않는 위로. 굳이 내 경험을 들먹이며 비교하지 않는 위로. 일찍이 이런 지혜를 뜻하는 것으로 함구개이(緘口開耳)란 말이 있는데, 여기에 하나를 보탠다. “입은 닫고, 귀는 열고, 지갑은 열어라.” 좋은 어른이 되기란 어렵구나. 지갑이 두둑한 어른은 더더욱.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살며 사랑하며] 심심한 위로란 무엇인가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