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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문학 응모실 (수필) 숙박계를 쓰던 시절
유현덕 추천 0 조회 215 24.08.06 18:35 댓글 1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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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08.06 19:02

    첫댓글 스무살시절에 여친과 함께 여행을 다니셨군요
    저는 술취하거나 기차를 놓쳐서 역전앞 여인숙에 몇번 가서
    잔적이 있고 20대초반에 여행가면 주로 텐트를 치고 잤었지요
    그시절 아련한 추억입니다

  • 작성자 24.08.06 21:53

    맞습니다. 예전에 여인숙은 첫차를 타려는 사람이나 막차를 놓친 사람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요긴한 숙박업소였습니다.
    요즘엔 찜질방이 그런 용도를 대신하고 있지요. 저도 장거리 산행을 할 때는 텐트를 가져간 적이 많았습니다.
    그산님과 한 시절의 추억을 공감할 수 있어서 참 좋네요.ㅎ

  • 24.08.06 19:17

    많은 걸 일찍 체험한 경우인데..ㅎ

    그랬죠..60-70년대는 무전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많았고..
    간첩도 많이 내려왔고..그래 통금도 있었고..
    그러다보니 임검이라해서 숙박업소 임검이나
    심지어 극장에서도 임검석이 있었고..
    전력난이다보니 두방을 연결해 형광등 하나로 사용하는 경우 많아
    글에서처럼 에피소드도 많았던거 같습니다.

    가만보니 유현덕님은 10년 선배들과 같은 조숙한 삶을 살았는데..
    오늘 우리가 잊고 지내던 지난날의 풍속도 그림을 아주 잘 그려주셨습니다~~^^

  • 작성자 24.08.06 21:59

    ㅎ 제가 간첩은 본 적 없어도 무전여행을 다녀왔다는 선배는 있었더랬지요. 저는 무전여행은 못해 봤으나 짠물여행은 자주 했답니다.
    숱한 날들 여행하며 가명 숙박계를 적었지만 임검에 걸린 적은 없었습니다.
    언젠가 딱 한 번 강화읍 여인숙에선가 밤중에 경찰이 와서 숙박부는 보지 않고 주민증을 보자해서 보여준 적은 있네요.

    제가 일찍 사회생활을 해서 몇 년 선배들과 어울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끔 애 늙은이란 소릴 듣기도 했으나 지금도 철이 없기는 여전합니다.
    잘 익은 곶감 빼먹듯 옛 추억을 하나씩 소환해서 나누는 것도 사는 맛이 아닐까 합니다.ㅎ

  • 24.08.06 19:14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 포천군 일동면으로 첫 발령을 받아 근무하던 시절,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주말에 서울 나들이를 했습니다.
    토요일 낮 버스를 타고 가서 내릴 땐 주로 청량리에서 내려서 전철로 종로로 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갈 때는 마장동에서 막차를 탔지요.
    상봉 터미널이 생기니 그 터미널은 참 낯설었어요.
    여인숙의 방 두 개를 한 큐에 비추던 형광등, 숙박계, 우리네 젊을 적 풍경을 불러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

  • 작성자 24.08.06 22:03

    달항아리님이 동마장 터미널의 추억을 온전히 담고 계신 분이네요. 지금은 마장동이 고기 다루는 푸줏간이 몰려있는 곳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터미널이 있던 때는 교통 중심지였지요.
    예전에는 서울역에서 창량리까지 다니던 지하철을 타면 대단한 문명혜택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청량리역 광장에 시계탑이 있던 시절 주말이면 엠티 떠나는 청춘들로 가득했지요. 어쨌거나 여행자의 고단함을 달래주던 여인숙에서 파생하는 추억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감성 풍부한 달항님, 공감해 주시니 고맙습니다.ㅎ

  • 24.08.06 19:32

    마치 바나나 껍질을 벗기다 먹어보지도 못하고 떨어뜨린 기분입니다.
    댓글 모두 샌님들 같아서 저라도 혼자 빙그레 웃다 갑니다.
    작자야 객관적 정경을 소개할 뿐이지만 독자로서 추임새를 넣어봤네요.ㅎ

  • 작성자 24.08.06 22:06

    역시 석촌 선배님은 댓글마저 기발한 위트가 넘쳐 읽을 맛이 납니다.
    먹기도 전에 땅에 떨어진 바나나로 개미들 좋은 일만 시키게 생겼습니다.ㅎ
    경험 풍부한 대선배님 앞에서 빈약한 추억거리로 주름 잡는 것은 아닌가 해서 다소 계면쩍기도 하구요.
    암튼 선배님 추임새는 기막히게 좋습니다.ㅎ

  • 24.08.06 20:45

    옜날 소설읽으면
    그 백열등 스윗치
    때문에 쌈도 일어나고
    그랬는데요~ㅎ

  • 작성자 24.08.06 22:10

    ㅎ 그런 소설도 있었나 보군요. 예전에 읽었던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에도 없던 내용이네요.
    선배에게 제가 본 반쪽 형광등 얘길 한 적이 있는데 당신은 보지 못한 풍경이라고 그러더군요.
    여름에님 열대야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ㅎ

  • 24.08.06 21:18

    이문열씨 자서전 비슷한 산문집에
    당시 돈 없는 숙박객들이 갹출해서 여인숙 방하나에 여럿이 자기도 했답니다
    본인도 생활이 궁핍한 복학생이라 책 몇권든 보퉁이 들고 낮선 이와 한 방에 들었는데 밤새 잠을 못이뤘답니다 잠들면 전재산이던 책과 몇푼의 돈을 훔쳐갈까봐 과거 대학생 참고서 전문 서적은 급하면 맡기고 융통되는 현금이기도 했으니까요 보퉁이를 베개처럼 베고서 잠 못들던 의심의 갈등
    읽는 내내 사람이 가난해지면 그 마음조차 옹졸해지고 나약해짐을 저자와 함께 공감했지요 옛날 일이지요

  • 작성자 24.08.06 22:15

    저도 예전에 이문열 선생의 삼국지를 비롯해 여러 소설을 읽었지만 여인숙 이야기는 읽어 보지 못한 내용입니다.
    선생이 한때 법학을 공부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 시절 풍경이 아닌가 싶네요.
    전공 서적이나 참고서를 사기 위해 청계천 헌책방을 다녔던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에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풍경입니다.

    저도 가난한 여행을 하며 참 구차한 경험들을 많이 했지만 신세타령을 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워낙 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열대야에 운선님과 추억을 공감할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ㅎ

  • 24.08.07 12:25

    @유현덕 제가 제대로 다 쓰지 못했지만 원문에 보면
    그날 작품 속 화자는 모처럼 함께 자게될 동행과 소주 한잔 하면서 꽤나 깊은 대화를 나누었답니다
    인생과 예술 고뇌 가난 젊음 등 그렇게 터놓고 나눈 대화는 간데없이 자신이 고작 책 몆권과 지페로 그를 의심하여 잠을 설친다는 현실앞에 견딜 수없는 인간적 비애를 느꼈다는 골자였지요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ㅎ

  • 24.08.07 07:42

    유현덕님의.
    숙박계를 쓰던 시절의 글
    잘 읽고 갑니다...

    유난히 심한 올 여름폭염
    건강 유의 하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 24.08.07 12:05

    지인 운영자님 못난 글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워도 너무 더운 요즘 날씨 정말 대단한 위력이네요.
    그래도 더운 여름에 곡식이 무럭무럭 자란다고 생각하며 견디고 있습니다. 지인 선배님도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 24.08.07 11:37


    카페에서,
    제가 글 쓰는 방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지금은 기억 속에서 거의 사라진 풍속도 입니다만,
    특히 연령대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분들의 글을 읽고, 공감은 가지만 직접
    경험치 못한 것들도 많지요.

    유현덕님의 글이 좋은 것은 어려운 곳에서도
    주눅듦이 없이, 주위를 비방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당당합니다.
    글, 매우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 24.08.07 12:13

    사람 관계에서 말로 대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글로 소통하는 맛도 대단한 매력입니다. 글쓴이에 따라 결이 느껴지기도 하고 표정이 보이기도 합니다.

    저 또한 다른 분들 글에서 제가 겪지 못한 것을 읽을 때면 공부가 되곤 하지요. 그것이 공감의 덕목이 아닌가 싶네요.
    단아한 분꽃 같기도 한 콩꽃 선배님 댓글에서 저도 여러 가지를 배웁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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