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5일 사순 제4주간 토요일
언젠가 신자들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수준 낮은 강론 들으려고 미사에 와야 해?”
종종 사제가 하는 강론에 관한 품평회를 하고, ‘사제가 미사를 정성껏 봉헌한다, 대충한다.’ 식의 말씀도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미사가 사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사제 없이 미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사는 사제만의 일이 될 수 없습니다. 미사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전체가 그분의 사제직을 수행하며 공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전례 헌장 7항 참조). 즉, 주례하는 사제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행위입니다.
미사가 은혜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제 수준이 낮아서가 아닙니다. 하느님 백성인 신자가 제대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예를 든다면 신자들이 응답하는 기도를 전혀 하지 않고 성가도 부르지 않으며 또 미사 내내 딴생각만 하고 있다면 미사의 은총 안에서 머물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미사가 은혜롭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역시 수준이 낮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준 낮다는 말에 속상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 역시 당신의 선포 말씀에 관한 품평회를 당하셨음을 오늘 복음을 통해 보게 됩니다. 즉,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저분은 메시아시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주님께서 이런저런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더 속상해집니다. 이런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박해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에서도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모습이 보입니다. 나만을 위해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주님, 나만 잘되도록 해 주시는 주님을 소망하는 모습에 발견됩니다. 이런 주님을 소망하기에,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시는 주님을 거부합니다.
예수님을 변호했던 니코데모의 모습을 갖춰야 합니다. 주님의 편에 서서 주님 뜻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될 때, 주님께서 주신 사랑과 은총이 더 크게 와 닿을 것입니다. 수준 높은 주님의 모습을 따라 우리도 수준 높은 신앙인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비록 아무도 과거로 돌아가 새 출발을 할 순 없지만, 누구나 지금 시작해 새로운 끝을 만들 수 있다(칼 바드).
사진설명: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첫댓글 빠다킹신부님 강론입니다.
오늘도 좋은 말씀에
강추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