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냉면
장옥관
겨울을 먹는 일이다
한여름에 한겨울을 불러와 막무가내 날뛰는
더위를 주저 앉히는 일
팔팔 끓인 고기 국물에 얼음 띄워
입안 얼얼한 겨자까지 곁들이는 일
실은 겨울에 여름을 먹는 일이다
창밖에 흰 눈이 펄펄 날리는 날 절절 끓는 온돌방에 앉아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 말아 먹으니 이야말로
겨울이 여름을 먹는 일
겨울과 여름 바뀌고 또 바뀐
아득한 시간에서 묵은 맛은 탄생하느니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 깊은 샘에서 솟아난
담담하고 슴슴한 이 맛
핏물 걸러낸 곰국처럼 눈 맑은 메밀맛
그래서일까 내 단골집 안면옥은
노른자위 땅에 동굴 파고 해마다 겨울잠 드는데
냉면은 메밀이 아니라
간장독 속 진하고 깊은 빛깔처럼
그윽하고 미묘한 시간으로 빚는 거라는 뜻 아닐는지
----장옥관 시집,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에서
아름다움은 가장 이상적이고 순수한 형태이며, 우리는 아름다움을 만날 때마다 곧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꿈과 희망, 사랑과 미움, 선과 악, 진리와 허위, 질투와 시기 등을 다 잊어버리고 아름다움 속으로 들어가 그 아름다움과 함께 산다. 아름다움은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이며, 모든 상업적- 경제학적인 잣대를 퇴출시킨 ‘순수미 자체’라고 할 수가 있다.
장옥관 시인의 [메일냉면]은 ‘메밀냉면’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며, ‘순수미 자체’라고 할 수가 있다. ‘메밀냉면’을 한여름에 먹는 것은 “한겨울을 불러와 막무가내 날뛰는/ 더위를 주저 앉히는 일”이며, “팔팔 끓인 고기 국물에 얼음 띄워/ 입안 얼얼한 겨자까지 곁들이는” 한겨울을 먹는 일이다. 하지만, 그러나, 한겨울에 ‘메밀냉면’을 먹는 것은 “창밖에 흰 눈이 펄펄 날리는 날 절절 끓는 온돌방에 앉아/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 말아 먹으니 이야말로/ 겨울이 여름을 먹는 일”이라는 시구에서처럼, 겨울이 여름을 먹는 일인 것이다. 한여름에 메밀냉면을 먹는 것은 한겨울을 먹으며 무더위를 쫓아내는 것이고, 한겨울에 메밀냉면을 먹는 것은 펄펄 끓는 온돌방에서 한여름을 먹으며 겨울 추위를 쫓아내는 것이다.
한여름의 더위와 한겨울의 추위, 메밀냉면은 단순한 메밀냉면이 아니라, 폭염과 혹한을 퇴치시키는 음식이자 삶의 철학의 진미라고 할 수가 있다. “겨울과 여름 바뀌고 또 바뀐/ 아득한 시간에서” 탄생한 메밀냉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 깊은 샘에서 솟아난/ 담담하고 슴슴한 이 맛/ 핏물 걸러낸 곰국처럼 눈 맑은 메밀맛”, “냉면은 메밀이 아니라/ 간장독 속 진하고 깊은 빛깔처럼/ 그윽하고 미묘한 시간으로 빚는” 메밀냉면----. 장옥관 시인의 [메밀냉면]은 단순한 ‘안면옥의 메밀냉면’이 아니라, 장옥관 시인이 온몸으로, 온몸으로 쓴 ‘메밀냉면의 시’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노른자위 땅에 동굴 파고 해마다 겨울잠”에 들듯이, 그는 그 메밀냉면의 아름다움과 그 맛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장옥관 시인의 [메밀냉면]은 ‘순수미 자체’이자 ‘최고급의 행복 자체’라고 할 수가 있다.
명인이나 명장이 되려면 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부터 다녀오지 않으면 안 된다. 가장 어렵고 힘들고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가장 손쉽고 군더더기 하나도 없이 해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고 수없이 기존의 허물을 벗지 않으면 안 된다. 강원도의 명인이라는 한계, 서울의 명인이라는 한계, 뉴욕의 명인이라는 한계, 런던의 명인이라는 한계, 대구의 명인이라는 한계를 돌파하고, 자기 자신만의 앎과 그 비법(철학)으로 전인류의 명인과 명장이 되는 것이다.
천재란 하늘이 빚어낸 사람이며, 그의 고귀하고 위대한 업적은 신의 능력과도 비견할 수가 있을 정도이다. 어느 누가 호머를, 셰익스피어를, 괴테를 함부로 폄하하고, 어느 누가 베토벤을, 모차르트를, 니체를 함부로 폄하하고 깎아내릴 수가 있단 말인가? 한겨울에 한여름을 먹고 한여름에 한겨울을 먹는 전인류의 명인과 명장이 되기 위해서는 ‘고통의 지옥훈련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고, 이 ‘고통의 지옥훈련과정’ 끝에서만이 전인류의 명인과 명장이 탄생하게 된다.
한겨울에 한여름을 먹고 한여름에 한겨울을 먹는 수사학적인 과장과 허풍을 동원하여 한여름의 더위와 한겨울의 추위를 퇴치시키는 장옥관 시인의 [메밀냉면] 앞에서 어느 누가 존경과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장옥관 시인의 [메밀냉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 깊고 그윽한 한국어의 역사와 전통 속에서 그가 온몸으로, 온몸으로 써낸 천하제일의 별미(명시)!!
반경환, 사상의 꽃들 1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