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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하나님이 너희 모든 필요를 채우시리라/ 빌립보서 4:19
(설교자: 마경훈목사)
(1) 하나님이 너희 모든 필요를 채우시리라(빌립보서 4장 19절) -마경훈목사 - YouTube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빌립보교우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빌립보교우들은 바울의 사역을 물질로 후원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후원이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말하고는 본문에서는 자신의 사역을 후원한 빌립보교우들을 축복했습니다.
이 구절을 압축하면 “하나님이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입니다. 이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채우심의 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빌립보교우들의 필요를 채우시는데 어떻게 채우십니까? 네 가지입니다. ①나의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②그리스도 안에서 채우십니다. ③영광가운데 채우십니다. ④그 풍성한 대로 채우십니다. 오늘 설교는 분문을 압축한 “하나님이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는 이 문장과 이 문장을 꾸며주는 내용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나의 하나님이 되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남편이 아내의 적극적인 전도에 못 이겨서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예배당에 들어가자마자 의자에 앉아서 기도했습니다. 남편이 보니 아내가 “하나님 아버지!”라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아내 옆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아내를 따라 기도합니다. “하나님 장인어른!” 하나님이 자기 아내에게 아버지시니 자기에게는 장인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셔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있고 ‘당신의 하나님’이라고 고백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복음을 깨달았고 복음 안에서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분명하게 정립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바울과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사도가 되었다고 확신했습니다. 바울은 신약성경의 절반인 13권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습니다. 대부분의 바울서신의 서두에 보면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대부분 1:1에서 그런 고백을 한합니다. 고전 1:1을 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 된 것은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고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가 사도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분명하게 정립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못하고 ‘당신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선지자나 제사장 같은 중재자가 필요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 어떤 이는 하나님 앞에 서기에는 무엇인가 막힘이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광야를 횡단할 때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일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벌하시는데 사울에게 그 일을 맡기셨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왕에게 그들의 모든 것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힘을 주셔서 아말렉과 전쟁에서 이기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모든 것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말렉 왕 아각과 좋은 양과 소를 남겼습니다. 이일로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갈멜에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났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사무엘은 기가 막혔습니다.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양과 소의 소리는 뭡니까?” 사울이 대답했습니다. 삼상 15:15입니다.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사울은 사무엘에게 핑계를 하면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아니라 ‘당신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사울에게는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을 보겠습니다. 시 18:1,2입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려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힘이라고 고백했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이, 나의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이셨습니다. 그가 이렇게 놀라운 고백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막힘이 없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정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의 고백 하나를 더 보겠습니다. 시 118:6,7입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시 118편의 저자와 저작 시기에 대한 견해 중에 하나는 다윗이 사울의 추적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여유를 찾았을 때, 혹은 다윗이 많은 고난의 시기를 거치고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즉위하였을 때 지었다는 견해입니다. 저는 그 견해에 동의합니다. 중요한 것은 저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정립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편이시며 자기를 돕는 분이었기에 담대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당신의 하나님’이십니까? 저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에게도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답은 하나님의 구원의 도를 믿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면 영혼이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저에게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시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우들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하게 채우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때는 항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과 관계하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드리실 때 참된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모든 복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없지만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근거해서 우리 죄를 사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1983년 시카고에서 세계 종교 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각 종교 지도자들이 자기들 종교의 좋은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힌두교, 불교, 유교, 이슬람교 등등. 그 때에 기독교의 대표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종교에는 사람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그러자 모두들 입을 다물었습니다. 기독교 대표는 답을 못하는 그분들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십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의 죄를 사해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응답 되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요 16:24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인간은 아무리 잘나고, 큰 공을 세웠어도 자기의 의로는 기도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기도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잖아요? 그런데 너무 긴장이 되면 마무리가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시골 교회의 수줍음 많기로 소문이 난 김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구역 식구들과 함께 양로원봉사활동을 갔습니다. 그날 뜻하지 않게 김집사님이 대표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김집사님은 떨리는 가슴으로 앞으로 나아가서,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김집사님의 기도는 너무나도 간절했고 은혜가 넘쳤습니다. 이제 기도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집사님이 너무 긴장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김집사님은 얼굴이 빨개졌고, 모두들 “주여, 주여”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예수님의 이름”이라고 말해줘도 되는데 모두 다 긴장하고 정적만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김집사님이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다. “그 때 물 위를 걸으신 그 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가 기도할 때 마무리를 꼭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인격으로는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될 수 없지만 예수님의 공로로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다는 믿음을 갖고 믿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물론 공동체에서 대표기도를 할 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해나 불란의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병고침도 허락하십니다. 행 3:6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베드로가 성전에서 구걸하던 장애인을 치료할 때 선포한 내용입니다.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에게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했고, 나면서부터 40년 동안 한 번도 걸어 본적이 없던 그가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서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습니다.
인도에서 선교사로서 일생을 바친 스텐리 존스(Stanley Jones) 라는 분이 있습니다. 스텐리 존스 목사님이 89세가 가까웠을 때 중풍으로 쓰러졌습니다. 수개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말도 못했습니다. 이 분이 자기를 간병하는 간호사를 불러서 부탁을 했습니다. “나의 온 몸이 마비가 되고, 또 말을 잘 할 수가 없으니, 아침에 내가 잠에서 깨어나면 나를 대신해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고 말해 주세요!” 그래서 이튿날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뜨는 순간에 기다리고 있던 간호사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고 말했습니다. 스텐리 존스는 그 때마다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무슨 병이 낫겠느냐?’고 생각하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스텐리 존스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고,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믿었습니다. 병이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에서 인도의 히말라야 산지로 휴양을 갔습니다. 그곳에 가서도 목사님은 계속해서 간호사들과 힘을 합쳐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고 되풀이 하며 명령했습니다. 그렇게 한 지 얼마 후, 스텐리 존스 목사님은 중풍에서 완치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믿음으로 사용한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게 하십니다. 막 16:17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입니다. 그 중에 첫 번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표적입니다.
귀신은 우리의 삶의 여러 부분에서 역사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삶의 일어나는 문제들 가운데 귀신의 역사를 분별하고, 귀신이 손을 놓고 떠나도록 명령하십시다. 운전하면서 계속해서 귀신을 대적하고, 길을 가면서도, 일을 하면서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내게 역사하는 귀신은 떠나가라. 문제의 귀신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떠나라. 가난의 귀신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떠나라. 병의 귀신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떠나라.” 믿음을 가지고 계속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귀신들이 문제에서 손을 놓고 떠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에게 재정적인 복을 주십니다. 고후 8:9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셨고, 33년간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경제적인 축복을 원하는 분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요함을 요구하십시다.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계속해서 끈질기게 요구하십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를 믿어 구원 받았고, 예수님의 공로로 죄사함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는 응답을 받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고침도 받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냅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가난도 극복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3. 영광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영광스럽다는 말은 위대하시다는 말입니다. 시 145:3입니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에 크게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이 부분은 제 과거의 설교를 요약하겠습니다. 제가 약 3년 전에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설교 했고, 약 2년 전에는 “하나님은 존재가 위대하시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세 부분으로 정리하겠습니다.
①하나님은 존재가 영광스럽고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왜 위대할까요?
첫째,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기에 위대하십니다. 세상에 원인이 없이 존재는 절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누구에 의해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가 위대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이시기에 영광스럽고 위대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고급에서 저급으로 변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시간이 지나면 낡고 쓸모없게 됩니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늙고 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월이 가며 기억력이 약해지거나 무능해지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존재하시기에 영광스럽고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은 본질상 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한 분 안에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삼위로 존재하십니다. 한 분이신데 세 분이 각각의 인격을 가지고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삼위로 계시지만 하나의 본질로 존재하십니다. 신비입니다.
넷째,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기에 영광스럽고 위대하십니다. 사람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없으십니다. 공간적인 면에서 우리는 교회에 있으면 집에 없고, 한국에 있으면 미국에 없습니다. 지구에 있으면 달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십니다. 교회에 계시면서 집에도 계시고, 한국에 계시면서 미국에도 계십니다. 지구에 계시면서 동시에 우주 모든 곳에 충만하게 거하십니다.
다섯째, 하나님은 완전한 하나님, 완전한 인간으로 계기에 영광스럽고 위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가 위대하십니다.
여섯째, 하나님은 믿는 자 속에 내주해 계시기에 영광스럽고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시고 모든 것을 초월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믿는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이 성령으로 믿는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가 위대한 것입니다.
②하나님은 성품이 영광스럽고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의 성품 중에 가장 대표적인 성품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위대한 사랑이 우리를 구속하였습니다.
감사한 것은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믿는 자 속에 오셔서 사랑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구필(口筆) 화가 김준호씨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김준호씨는 대학교 2학년 때 기술병으로 군에 입대를 했습니다. 군대에서 탱크 위에 올라가 작업을 하다가 그만 땅에 떨어져 목이 부러졌고 손과 발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마비가 되었습니다. 그는 한참 활동할 20대 젊은 나이에 손발을 쓸 수 없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처절한 상황 속에서 매일 절망과 슬픔으로 지냈습니다. 너무 오래 누워 있다보니 욕창으로 엉덩이와 어깨 부분이 썩어서 피부 이식도 받았습니다. 하루 종일 천장만 쳐다보고 살다가 자살을 결심했지만 자살도 불가능했습니다.
어느 날 휠체어를 탄 두 전도사님이 심방을 왔습니다. 그분들의 간절한 전도와 눈물어린 기도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러자 어둡던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빛이 들어왔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눈물이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아름다운 간호 실습생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놀라운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는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게 되었습니다.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자니 입술이 부르터서 몇 번이나 좌절하고 포기하려 했지만 아내의 격려와 설득으로 그는 조금씩 예술의 경지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그린 동양화와 서예 수십 점을 모아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회를 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절망 속에 있던 그를 귀한 존재로 만들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은 지금도 우리에게 부어지고 있습니다.
③하나님은 능력이 영광스럽고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6일 만에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능력으로 손으로 만물을 붙잡고 계십니다.
미켈란젤로가 마리아 상을 만든 다음 스스로 도취되어 “사람이 만든 작품이 어찌 이렇게 훌륭할 수 있는가?”하며 마리아 가슴 띠에 자기 이름을 기록하고 사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흥분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의 눈앞에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자연, 광활한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그 순간 그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우주를 만드시고 사인도 하지 않으셨는데, 나는 이 작은 작품 하나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도취되어 사인을 하다니...’ 그 후로 미켈란젤로는 모든 작품에 자기 이름을 기록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6일 만에...
우리 같이 고백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존재가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성품이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위대하십니다. 나는 나에게 자신의 능력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누립니다.”
4. 모든 쓸 것을 풍성하게 채우십니다.
우리는 풍성하게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대로 누립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 동안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날마다 새벽이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셔서 단 한 사람도 주리지 않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한 어린이의 오병이어를 가지고 5천 명이 배부르도록 먹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12광주리가 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하게 주심을 말하는 몇 구절을 보겠습니다. 약 1:5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은 기도에 풍성하게 응답하십니다. 지혜가 부족하여 지혜를 구하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면 주십니다. 주시는데 후히 주십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은 그가 구한 지혜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광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데 풍성하게 거두게 하십니다. 농작의 법칙을 봐도 한 알의 씨앗을 심으면 수십 배, 수백 배를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재정적인 부분도 농작의 법칙처럼 주십니다. 눅 6:38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우리가 어려운 사람에게 재정을 심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돌려주시는데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풍성하게 안겨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풍성하게 주십니다. 엡 3:20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 풍성하게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하게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딤전 6:17입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우리가 소망을 두어야 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은 빌 4:19 말씀으로 “하나님이 너희 모든 필요를 채우시리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본문으로 주시는 네 가지 음성을 들었습니다.
1. 나의 하나님이 되셔야 합니다.
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3. 영광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4. 모든 쓸 것을 풍성하게 채우십니다.
첫댓글 감사^^*
하나님이 너희 모든 필요를 채우시리라/ 빌립보서 4:19-(1)
하나님이 너희 모든 필요를 채우시리라/ 빌립보서 4: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