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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니 기타 / 고원의 결투 / Johnny Guitar" O.S.T.
"자니 기타 / Johnny Guitar"
- 페기 리 / Peggy Lee
Play the guitar play it again my Johnny 기타를 쳐주세요 다시 한 번 쳐주세요 나의 자니
Maybe you're cold but you're so warm inside 그대는 겉으로는 냉정한 척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해요
I was always a fool for my Johnny 난 나의 자니를 위해 늘 바보가 되었어요
for the one day call Johnny guitar 사람들이 자니 기타라고 부르는 사람을 위해
Play it again Johnny guitar 자니 기타 다시 한 번 기타를 쳐주세요
What if you go what if you stay I love you 그대가 떠나든 떠나지 않든 난 그대를 사랑해요
What if you're cruel you can be kind I know 그대가 매정한 척해도 상냥한 사람이라는 걸 난 알아요
There was never a man like my Johnny 내 사랑 자니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요
like the one day call Johnny guitar 사람들이 자니 기타라고 부르는
Interlude 간주
What if you go what if you stay I love you 그대가 떠나든 떠나지 않든 난 그대를 사랑해요
What if you're cruel you can be kind I know 그대가 매정한 척해도 상냥한 사람이라는 걸 난 알아요
There was never a man like my Johnny 내 사랑 자니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요
like the one day call Johnny guitar 사람들이 자니 기타라고 부르는
Play it again Johnny guitar 자니 기타 다시 한번 기타를 쳐주세요
영화 '자니 기타 / 고원의 결투(Johnny Guitar, 1954)'는 미국의 영화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 1955)'과 영화 '북경의 55일(55 Days At Peking, 1963)'의 감독으로 유명한 '니콜라스 래이(Nicholas Ray, 1911-1979)'가 감독을 맡은 서부 영화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재즈, 팝 싱어 송라이터이자 여배우로 활동한 '페기 리(Peggy Lee, 1920-2002)'와 '빅터 영(Victor Young, 1900-1956)'이 음악을 맡았고 O.S.T. 주제 테마곡 '자니 기타(Johnny Guitar)'의 곡을 패기 리가 불렀으며 크게 히트한 세계적인 명곡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 영화는 극 중에서 두 여성 주인공인 여성대 여성끼리의 결투 장면이 공개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그 당시까지의 서부극에서 남성 전유물이었던 영웅상의 성적 신분을 여성으로 전환시킨 첫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페기 리(Peggy Lee, 1920-2002)'는 1920년 미국 출신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팝, 재즈 싱어 송라이터이자 여배우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녀의 본명은 '노마 델로리스 에그스트럼(Norma Deloris Egstrom)'이었고 그녀가 4살 때에 모친이 세상을 떠났으며 계모 슬하에서 어려운 유년을 보냈습니다. 미국 노스 다코다(North Dakota) 주 밸리(Valley) 시 라디오 방송국(KOVC)의 신인가수 콘테스트를 통해 발탁되었고 연예계에 진출하였습니다. 17세 때인 1937년에는 파고(Fargo) 시 라디오 방송국(WDAY)의 음악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하게 되었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녀는 이름을 현 '페기 리(Paggy Lee)'로 바꿨고 방송국을 비롯해 호텔 나이트 클럽 등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음악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1941년에는 시카고의 앰버서더 호텔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고 미국의 클라리넷 연주자이며 스윙(Swing), 재즈의 대표적인 주자이자 밴드 리더인 '베니 굿맨(Benny Goodman, 1909-1986)'과 운명적인 만남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페기 리는 1941년에 베니 굿맨의 권유에 의해 '베니 굿맨 악단(Benny Goodman's Big Band)'에서 가수로 활동하였습니다. 여기에서 1942년 그녀 최초의 빌보트 싱글 차트 1위곡인 '누군가가 내게(Somebody Else Is Taking Me Place)'의 곡을 매혹적이고 우아하면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불렀고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그녀의 명성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1943년에는 미국의 블루스 가수이자 송라이터인 '릴 그린(Lil Green, 1919-1954)'의 히트곡 '잘하세요(Why Don't You Do Right)'의 곡을 불렀고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면서 그녀의 명성을 다시 한 번 널리 떨치게 되었습니다.
페기 리는 1943년 3월에 베니 굿맨 악단의 기타리스트인 '데이브 바버(Dave Barbour, 1912-1965)'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에는 '프랭크 보제이지(Frank Borzage, 1894-1962)'가 감독을 맡았고 '제임스 모나코(James Monaco, 1885-1945)', '프레드 리치(Fred Rich, 1898-1956)', '리차드 로저스(Richard Rodgers, 1902-1979)'가 음악을 맡은 영화 '스테이지 도어 캔틴(Stage Door Canteen, 1943)'에 출연하였으며 극 중에서 노래를 불렀고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어서 '노먼 Z. 맥레오드(Norman Z. McLeod, 1898-1964)'가 감독을 맡았고 '루이스 실버(Louis Silvers, 1889-1954)'가 음악을 맡은 영화 '더 파워 걸(The Powers Girl, 1943)'에도 출연하였으며 극 중에서 노래를 불러 많은 찬사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페기 리는 베니 굿맨 악단을 탈퇴하였고 가사에 전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1944년에 캐피탈 레코드(Capitol Records)사와 손을 잡고 솔로로 독립하였고 싱글 '난 당신에 대해 잘 몰라요(I Don't Know Enough About You)'의 곡을 불렀으며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1946년에는 '좋은 날이에요(It's A Good Day)' 등의 곡을 낮은 톤의 섬세함과 잔잔한 발라드로 불렀고 이 곡이 1948년에 미국 음반 판매고 1위를 차지하면서 그녀가 불러 히트하였던 싱글 '마나나(Manana)' 곡의 음반 판매 기록을 깨기도 하였습니다. 페기 리는 그녀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 목소리로 지구촌 만인들의 심금을 끊임없이 울려주었던 것입니다. 페기 리는 1948년에 NBC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인 '체스터필드 슈퍼 클럽(Chesterfield Super Club)'의 진행에 참여하였고 미국의 가수인 '페리 코모(Perry Como, 1912-2001)'와 미국의 팝 가수인 '조 스태퍼드(Jo Stafford, 1917-2008)'와 함께 교대로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1950년대 미국의 대중음악계는 로큰롤과 스탠더드 팝이 발흥하던 시기였고 재즈는 딱딱한 즉흥연주를 벗어나 화성적이면서 진정한 재즈세계를 탐구하려는 밝고 경쾌한 새로운 물결이 고조되어가던 시기였습니다. 페기 리는 1952년에 '마이클 커티즈(Michael Curtiz, 1886-1962)'가 감독을 맡았고 '레이 하인도르프(Ray Heindorf, 1908-1980)'와 '막스 슈타이너(Max Steiner, 1888-1971)'가 음악을 맡은 재즈를 소재로 제작된 영화 '재즈 싱어(The Jazz Singer, 1952)'에 '대니 토마스(Danny Thomas, 1912-1991)'와 함께 출연하였으며 열연하였습니다. 그녀는 '러버 / 연인(Lover)'의 곡을 열창하는 등 많은 찬사를 받으면서 크게 히트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1927년에 '알란 크로스랜드(Alan Crosland, 1894-1936)'가 감둑을 맡았고 '루이스 실버(Louis Silvers, 1889-1954)'가 음악을 맡은 미국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Jazz Singer, 1927)'를 리메이크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1954년에는 미국의 '니콜라스 래이(Nicholas Ray, 1911-1979)'가 감독을 맡았고 '페기 리(Peggy Lee, 1920-2002)'와 '빅터 영(Victor Young, 1900-1956)'이 음악을 맡은 서부 영화 '자니 기타 / 고원의 결투(Johnny Guitar, 1954)'의 O.S.T. 주제 테마곡 지금 흐르고 있는 '자니 기타(Johnny Guitar)'의 곡을 페기 리가 불렀으며 크게 히트한 세계적인 명곡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어서 같은 해인 1954년에는 이탈리아 영화계의 네오리얼리즘의 선구자인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 1902-1974)'가 감독을 맡았고 '알레산드로 치코니니(Alessandro Cicognini, 1906-1995)'가 음악을 맡은 영화 '종착역(Stazione Termini / Terminal Station, 1953)'의 O.S.T. 주제 테마곡을 리메이크한 '로마의 가을(Autumn In Rome)'의 곡을 불러 히트하기도 하였습니다.
1955년 6월에는 미국 월트 디즈니(Walt Disney)사가 제작한 로맨틱 뮤지컬 코미디 만화 영화 '레이디와 트램프(Lady And The Tramp, 1955)'에 참여하였고 자신이 작사, 작곡한 O.S.T. 주제 테마곡 '시암 고양이의 노래(The Siamese Cat Song)'의 곡을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클라이드 제로니미(Clyde Geronimi, 1901-1989)', '윌프레드 잭슨(Wilfred Jackson, 1906-1988)', '해밀턴 루스케(Hamilton Luske, 1903-1968)' 등이 감독을 맡았고 '올리버 웰라스(Oliver Wallace, 1887-1963)'가 음악을 맡아 명망 있는 가문의 개성파 강아지 '레이디(Lady)'와 철도변에 사는 잡종 건달개 '트램프(The Tramp)'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만화 영화입니다.
1955년 7월에는 '잭 웹(Jack Webb, 1920-1982)'이 감독을 맡았고 '아더 해밀튼(Arthur Hamilton, 1926-)', '레이 하인도르프(Ray Heindorf, 1908-1980)', '데이비드 버톨프(David Buttolph, 1902-1983)', '매티 매틀록(Matty Matlock, 1907-1978)' 등이 음악을 맡은 영화 '피트 켈리의 블루스(Pete Kelly's Blues, 1955)'에 출연하였고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1958년에는 미국의 '리틀 윌리 존(Little Willie John, 1937-1968)'이 1956년에 발표했던 곡을 리메이크한 곡인 '피버(Fever, 1958)'의 곡을 불렀고 폭발적인 인기를 이끌어내면서 급기야 팝, 재즈의 세계적인 정상의 여가수로 우뚝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페기 리는 1969년에 미국의 유명한 송라이터 팀인 작사가 '제리 리버(Jerry Leiber, 1933-2011)'와 작곡가 '마이크 스톨라(Mike Stoller, 1933-)'가 쓴 싱글 '모두가 그래요(Is That All There Is)'의 곡을 불렀고 그레미 어워드 최우수 여성 팝 보컬상(Grammy Award For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녀 특유의 고혹적인 음색을 앞세워 1950~1960년대를 대표하는 팝, 재즈 보컬리스트로서의 입지를 완벽하게 구축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55년간에 걸친 왕성한 활동으로 60여 장의 앨범에 무려 600여 곡에 달하는 노래를 발표하였고 1995년에는 그래미 생애 성적상(Grammy Lifetime Achievement Award)을 수상하는 등 미국의 전설적인 싱어 송라이터로 그리고 팝, 재즈 여가수로 우뚝 서 있었던 것입니다.
페기 리의 노래는 특히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 영화나 소설 등의 소재로 많이 인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캐나다의 유명 재즈 싱어로 그레미상 수상자인 '다이애나 크롤(Diana Krall, 1964-)'은 '그녀의 음악은 많은 아티스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10여 편의 영화 주제가를 작곡하였고 영화에도 출연하였으며 오스카상 여우 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을 해온 세계적인 팝, 재즈 싱어 송라이터이자 배우로 남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사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못하였습니다. 네 번이나 이혼을 거듭하는 등 건강도 나빠지게 된 그녀는 1998년 뇌졸증의 후유증으로 언어장애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그 후 2002년 그녀는 그녀의 나이 81세를 일기로 그녀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 철도 공사에 한창인 서부 애리조나(Arizona)의 너른 들판에 누군가의 역마차를 습격하려는 한 무리의 무법자들이 당긴 총소리가 적막을 가르면서 울려 퍼졌다. 서부에서 명성을 날렸던 유명한 총잡이 '자니 기타 / Johnny Guitar, Logan(스터링 헤이든 분 / Sterling Hayden, 1916-1986)'는 총을 버린지 오래되었다. 지금은 총 대신 기타를 둘러맨 채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는 옛 연인 사이였던 '비엔나 / Vienna(조안 크로포드 분 / Joan Crawford, 1905-1977)'를 만나기 위해 그녀가 애리조나 철도건설 사업과 병행하여 운영하고 있는 살롱(Saloon)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비엔나는 무법자들이 판을 치는 미국 서부 벌판을 누비고 다녔고 미모를 갖춘 서부의 여인이었으며 서부의 당찬 여걸이었다. 그녀는 애리조나 일대의 교통망 확충에 따른 철도 신설사업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이에 비엔나는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해 오래 전부터 연인사이였던 자니 기타에게 연락하여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런데 비엔나 앞에 나타난 자니 기타의 손에는 총은 없었고 총 대신 기타가 들려져 있을 뿐이었다. 당시에 비엔나는 어느 한 곳에 정착하기를 싫어하는 자니 기타의 방랑벽 때문에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서로 헤어진 후 비엔나는 자니 기타가 서부의 황야를 떠도는 동안 애리조나에서 살롱을 운영하며 혼자 살아왔던 것이다.
요란한 웃음소리와 함께 '댄싱 키드 / The Dancin' Kid(스코트 브레디 분 / Scott Brady, 1924-1985)' 일당이 홀 안으로 몰려들었다. 댄싱 키드는 홀 안에서 비엔나가 낯선 자니 기타와 마주 앉아 정담을 나누는 모습을 훔쳐보고 있었고 못마땅한 눈치였다. 댄싱 키드는 비엔나를 자기 혼자 일방적으로 좋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자신의 연적인 자니 기타에 대해 불쾌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이를 본 그의 부하 '바트 로네건 / Bart Lonergan(어네스트 보그나인 분 / Ernest Borgnine, 1917-)'이 자니 기타 쪽으로 다가서더니 시비를 걸고 있었다. 이때 마을 보안관과 '엠마 스몰 / Emma Small(메르세데스 맥캔브리지 분 / Mercedes McCambridge, 1916-2004)'이 들어왔고 그녀가 이끌고 온 마을 사람들도 홀 안으로 함께 들어왔다. 이들은 철도건설 사업을 처음부터 반대해온 사람들이었다.
엠마 스몰과 마을 사람들은 철도건설 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비엔나에 대해서 늘 적대시해왔다. 그녀는 비엔나를 마을 밖으로 쫓아내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옅보고 있는 중이었다. 엠마 스몰은 댄싱 키드를 지나치게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나 댄싱 키드가 자신보다 비엔나에게 더 관심을 두게 되자 비엔나에 대한 그녀의 질투심이 극에 다다르고 있었다. 엠마 스몰은 비엔나 때문에 이 마을에 액운이 닥칠 것이라는 악담과 함께 비엔나는 마녀라고 소문을 퍼트렸다. 이에 마을 사람들도 점점 이성을 잃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엠마 스몰은 자신의 오빠가 탄 역마차를 습격하였고 자신의 오빠를 죽인 무법자 일당이 바로 댄싱 키드라고 몰아붙였으면서도 여전히 그를 좋아하고 있었다.
이렇게 마을 전체가 혼란 속에 빠져있었고 무법자들의 횡포도 갈수록 심해져갔다. 그래서 비엔나는 자니 기타를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자니 기타 역시 지금은 총을 거둔 처지였기에 비엔나는 혼자서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다.
한편 마을 사람들로부터 역마차를 습격했다는 혐의를 반게 된 댄싱 키드 일당은 엠마 스몰 오빠의 장례식을 틈타 은행을 습격하였다. 그때 예금하러 갔던 비엔나는 댄싱 키드 일당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엠마 스몰을 위시한 마을 사람들은 댄싱 키드 일당과 우연히 만나게 된 비엔나까지 은행강도로 몰아붙였다. 엠마 스몰은 검은 상복을 입은 채 흥분된 어조로 마을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비엔나는 무법자 댄싱 키드 일당과 한패라고 말하면서 모두 죽여야 한다고 선동하였다.
마침내 엠마 스몰과 그녀가 이끄는 마을 사람들과 댄싱 키드 일당은 폭포를 사이에 두고 대대적인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댄싱 키드는 총격전에서 비엔나를 보호하려다 엠마 스몰의 총격에 의해 죽고 말았다. 이를 지켜본 자니 기타는 잠자코 있었다. 보안관은 마을 사람들을 향해 총격을 멈추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최종 해결은 두 여성인 비엔나와 엠마 스몰 당사자가 서로의 매듭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비엔나와 엠마 스몰이 결투에 나섰다. 각자의 총 끝에서 총알이 발사되었다. 순간 땅에 쓰러진 쪽은 엠마 스몰이었다. 결투에서 정정당당하게 영웅이 된 비엔나는 폭포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그녀는 자니 기타를 향해 다가갔고 둘은 서로 뜨겁게 껴안았다. 쌍무지개가 하늘 높이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