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100]‘책 정리’의 괴로움 그리고 푸념
오랫동안 미뤄온 서재의 ‘책冊 정리’에 이틀 동안 진을 뺐다.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장서藏書라 해봐야 기껏 1천여권이 될 터이지만, 읽었든 읽지 않았든 수십 년간 내 손때가 묻은 것만은 사실이다. 버릴 수도, 읽을 여유도 없는 게 ‘계륵鷄肋’이 된 지 오래, 언젠가는 나만이 할 일인 것을 어이 하랴. 얼마 전 한 대학교수가 이 서재에서 잠을 잤는데, 새벽형 인간인지라 서재의 책들을 둘러본 모양이다. “선배의 독서 취향이 대단하네요. 스펙트럼이 넓어도 너무 넓네요”라고 했다. 하여 “그게 문제요. 교수도, 학자도, 작가도 아닌 것이 무엇이 그리 궁금해 이런저런 책을 구했을까 싶으면 내 발등을 찍고 싶소”라고 답했다.
백기완 선생님께 2005년 겨울, 처음으로 펴낸 ‘진짜로 쪽팔리는’ 『백수의 월요병』이라는 수필집을 드린 적이 있다. 한참 후에 모시는 자리에서 “최부장, 다 읽어봤는데, 잡스러움이 너무 많아, 그러면 배탈이 나”라고 말씀하셔 쥐구멍을 들어가고 싶을만큼 부끄러웠다. 자연계는 전혀 아니고, 인문분야라면 분야를 안가리고 책욕심이 많았다. 물욕은 없는데 어찌 그리 ‘책욕’이 많았던고. 이사할 때마다 곤혹스러웠다. 그때마다 버린다고 버렸는데도 여지껏 ‘우수마발牛溲馬勃’의 책이 어찌 이리 많을고. 한심한 일이다. 이번에는 “버리자, 버리자, 다 버리자” 진짜 큰 결심을 했는데도, 여전히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게 부지기수이다. 이 노릇을 어찌 할꼬?
먼저 내가 좋아하는, 좋아했던 대하소설들은 무조건 묶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황석영과 이문열의 삼국지, 홍명희의 임꺽정(두 질) 등은 주저하지 않았는데, 수 년 전 새로 산 박경리의 토지는 아까웠다. 김지하의 저작 30여종중 시집 두세 권과 강준만의 저작 100여권 중 서너 권만 빼놓았지만, 마음이 아프다. 그들은 왜 말년에 나를 이렇게 실망시켰을까, 생각하면 미웁다. 대신 도올 김용옥 책은 한곳에 모아놓으니, 어지간히 다 있는 것같다. 내가 마치 ‘전작全作주의자’(한 저자나 작가의 책을 몽땅 사는 사람)나 된 것같다, 씨알 함석헌 선생님과 백기완 선생 그리고 이어령과 유홍준 책은 한 권도 버릴 수 없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2권을 어떻게 버릴 수 있나? 읽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며 사놓은 책들도 많다. 죽을 때까지 떠들어볼 수 있을는지? 불가능할 듯하다. 읽지도 않았는데, 친구들이 흥미를 느끼면 그냥 준 것도 제법 되리라.
아무튼, 툇마루에 착착 싸놓으니, 500권이 넘는 듯하다. 헌책방 사장님이 용달을 갖고 온다했는데, 얼마나 주실까? 휴지값으로 치면 5만원? 10만원? 알라딘중고서점에만 가져가면 50만원은 넘을 터인데, 그것도 운반 등 불가능한 일. 어쩌다 이렇게 책이 푸대접받는 세상이 됐을까? 아아- 그냥 그대로 갖고 있고 싶다. 샀을 때 값을 합하면 최소 400만원은 넘을 텐데. 서울 목동에서 판교로 이사올 때에는 알라딘에서 40만원쯤 받아 이사비에 보탰고, 철산동에서 목동으로 이사올 때에는 작은 용달 한 차에 나의 분신같던 책들을 실었더니, 헌책방 주인이 “솔직히 10만원은 많이 준 셈”이라며 가져갔었다. 기분이 매우 꿀꿀하다. 세상엔 왜 그렇게 읽고 싶고, 갖고 싶은 책들이 많을까? 그리고 왜 그렇게 내가 모르고 있는 세상과 학문이 많을까? 에라이- 모르겠다. 앞으론 진짜 포기닷! 친구들은 책을 읽고 싶어도 눈이 아파서 신문쪼가리조차 읽지 못한다고 푸념하는데, 나는 무슨 복이 많아 이리 툴툴대는가?
책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자문해 본다. 나의 삶을 윤택하게(기름지게) 하는 ‘일등 첩경捷徑’(지름길)이라고 생각해온 것같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말이 맞는 것같다. 책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고, 깊게 알게 된 것을 보면 그렇다. 책으로 만난 사람들과 지연地緣과 학연學緣으로 만난 친구는 명확히 다르지만, 나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은 같다. 또 하나를 들자면 ‘술’이겠지만, 술타령을 하면 평생 옆지기가 화를 낼 게 분명하니 줄인다. 한때는 친구, 책, 술, 이 세 가지가 내 인생의 전부일 때도 있었다, 어느 선인先人 흉내를 호號를 ‘삼혹자三惑者’라고 한 치기恥氣도 부렸다.
허나, 반성할 것은 철저히 반성하자. 나는 한우물을 파지도 못했고, 많은 책을 읽지도 못했다. 하여 덜떨어진 놈이 되었다. 나는 작가가 못된 것을, 교수나 학자가 못된 것을 엄청 자책한다. 잡식을 많이 하면 배탈이 난다는 말이 맞다. ‘든사람’도 ‘난사람’도 되지 못한 바에 ‘된사람’은 꼭 되려 했건만, 진작에 시루를 엎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과 함께 ‘100세 시대’ 혹자는 ‘120세 시대’라는 말을 하는데, 지금부터라도 정신차리면 든사람에 이어 된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전혀 그리 될 것같지가 않다. 책 몇 권 버리면서 이것이 쓸데없는 생각인가? 모르겠다.
한때는 한우충동汗牛充棟(책이 아주 많다는 뜻)과 남아독서오거서男兒讀書五車書라는 말을 좋아했지만, 겨우 교양서적 100여권을 꽂아놓고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생각인가싶다. 하지만, 확실히 ‘활자중독’인 97세 우리 아버지처럼 눈 하나만큼은 죽는 순간까지 보는데 지장없기를 바란다. 그것은 ‘깨어 있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보수를 압도하는 진보의 세상, 정의가 불의를 이기는 세상, 분열조국보다 통일조국을, 지금까지 나온 어떤 책들보다 더 좋은, 깊은 책들을 나의 눈으로 똑똑히 보고 읽고 싶기 때문이다.
책은 내용이 그래서 그럴까? 무겁다. 책 몇 권 버리려고 치우는 게 한두 시간이 지나가자 지친다. 힘들다. 중노동이다. 그러니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버리기가 아까워 책을 자꾸 떠들어보느라 시간만 간다. 이틀이 지나 푸념이 지나쳤다. 헤량하시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