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수원
3. 그 바람
그날, 무슨 바람이 불어 청수원에 갔을까? 바람이 불긴 불었다. 지독스럽게, 미친 듯이.
건물 삼층에 사는 관계로, 시멘트 벽에 부딫혀 웅웅대는 바람 소리는 심장을 움추리게 할 정도로 가깝게 들려왔다. 해마다 봄철이면 푄현상으로 영동지방에는 태백산맥을 넘어 고온건조한 높새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약간은 서늘한 기운이 있어야 바람다울 터인데 높새 바람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모든 것의 수분을 빼앗아 마르게 하고 그래서 터지게 하고 멀리 날려버린다. 게다가 요즘은 중국 대륙으로부터 황사까지 싣고 오기에 사람들을 더욱 귀찮게 하는 것이다. 그 바람이 훝고 지나가 동해 바다로 달아나면, 사람들의 가슴에는 상처만 남는 것이다. 필연으로 봄이면 영동지방 사람들은 늘 괴물 같은 그 놈을 만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혼자 아무도 지나지 않는 남대천 다리를 지날 때, 온몸이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물론 부실한 내 다리도 한몫 거들었다. 난 겨우 다리 난간을 잡고 걸어 다리를 지나 올 수 있었다. 태백산맥을 넘어온 맹렬한 그 바람은 거칠 것 없이 내 몸뚱이를 흔들었다. 내 몸뚱이를 허공에 날려 동해 바다로 내팽개칠 것 같았다. 다리 난간은 나를 지탱해 준 겨우 잡을 수 있었던 물속의 신기루였다. 문득 난간을 놓아버릴까도 생각을 했다. 비굴하게 살려고 발버둥치는 내 모습이 지겹게 다가왔다.
너는 왜 그렇게 살려고 발버둥치는가. 너는 왜 사는가.
너는 지금까지 왜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는가.
너는 가족에게 어떤 존재였는가. 진정 가장으로서 올바르게 살아왔던가.
한 여자의 남편으로 성실하게 살아왔던가.
너는 진정 두 아이의 아빠인가.
늙은 부모를 모시는 장남인가. 난간을 잡은 내손은,
누구나가 당연하게 알고있는야 이런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을 못하기에 점점 풀어져갔다. 자칫하면 손을 놓아버릴 뻔했다. 그러면 부실한 내 다리는 바람에 갈짓자로 꼬일 것이고 길거리에 내 몸뚱이는 내동댕이 쳐지고 지나가던 차가 나를 갈아 뭉갤 것이고 길바닥에 흐트러진 내 육신은 그 바람에 말라 부서져 동해로 날아 갈 것이 아니겠는가.
“밖에 바람 많이 불죠?”
그녀는 반갑게 나를 맞았다. 역시 예상대로 가게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가 이런 날에 술을 마시러 오겠는가.
“안주는 뭘로......”
역시 그녀는 한결 같았다. 이 십여 년을 술장사를 해오면서 아직도 손님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것은 그녀의 소박함이다. 그 집에 안주라면 눈을 감고도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단골이 되었는데, 여전히 그녀는 안주 주문을 받을 때면 미안해했다. 그 모습은 매일 같이 반찬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술집이야 정해진 안주를 손님상에 내놓고 당당하게 돈을 받으면 그뿐인 것을, 그녀는 마치 집에서 남편에게 똑같은 반찬을 매일 내놓기가 부담스러운 아내의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청수원인 것이다.
“저 사람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는가 보죠?”
텔레비전에는 교황 요한 바오르 2 세의 선종으로 성베드로 성당 앞의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네 보수주의자였지만, 진정한 보수였지요.”
“...............”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껴안을려고 한 사람이었죠.”
“네............”
그녀가 안주를 내 탁자에 올려놓으며 물끄러미 텔레비전만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묻길래 나는 그렇게 대답을 했다.
보수면 보수지 진정한 보수는 뭐란 말인가. 내가 말해놓고도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녀에게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말일 것이다.
교황이 과거 십자군 전쟁과 유태인 학살에 침묵한 것을 반성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평화를 이야기 한 것이 이 작은 나라 소도시에 살고 있는 그녀와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교황의 선종 소식은 다음 화면으로 이어지는 영동지역 산불 소식만큼 관심을 끌지 못했다. 차라리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산불 소식이 우리에게는 더 절실한 것이다.
고약한 그 바람은 온 산하를 불 질러 놓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의 보금자리를 산산히 부수어 놓는다.
“응.....괜찮아. 오늘 일찍 끝나고 갈거야.”
그녀의 전화였다.
“딸아이예요.”
묻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는 것이다. 혹시 딸아이가 아닌 것이 아닐까. 숨겨둔 애인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런 날 걱정스레 전화 해주는 살가운 사내일 것이니 안심은 되었다.
그녀의 대답으로 미루어 명 짧고 돈 많은 늙은 사내도 아닐 것이다. 차라리 그편이 그녀로서는 나을 지도 모르겠다. 나도 사내지만 세상에 믿을 사내가 어디 있는가. 그녀 말대로 괜찮은 남자를 여자들이 그냥 내버려둘 일이 없을 터이고, 유부남이라면 어짜피 가정으로 돌아 갈 것이고 당연히 가정으로 돌려보내야지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다만 그녀의 숨겨둔 애인이 살가운 제비 같은 사내가 아니길 바랠 뿐이다. 아무리 그녀가 남편 때문에 남자 보는 눈이 신중해 졌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역시 순진한 여자 일 뿐이다.
사실 나도 과거에 그녀같이 가여운 한 여자의 애인이었다.
그날 청수원에 가게 된 것은 가혹한 바람 소리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그런 날 손님 없을 것이라는 추측이 한층 더 나를 청수원으로 향하게 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보다도 과거의 내 바람 때문이었다.
모처럼 일찍 집에 돌아와 아내와 대화 도중 그만 내 과거를 건들고 말았던 것이다.
“당신 아직도 그 여자가 생각나지요?”
“무슨 소리야! 이 여자가.......”
“그렇게 지독했었는데 아직 잊을 리가 없지....”
“왜 자꾸 옛날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그래.”
무슨 이야기 끝에 이런 말을 주고받게 된 것인지는 아리송하지만 아내는 기어코 이렇게 결말을 내고 말았고 나는 화를 버럭 내고 혼자 청수원으로 오게 된 것이다.
내 과거의 바람이 아내에게는 아직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을 나는 안다.
알면서도 어루만져주지 못하고 화만 내는 것은 사내로서의 내 못난 자존심인 것도 나는 안다.
가장이라는 직분을 망각하고 가여운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잘한 짓이 아니라는 것도 나는 안다.
불쌍한 그녀를 강제로 떨어지게 한 것도 결코 잘한 짓이 아니라는 것도 나는 안다.
그녀는 청수원의 그녀인 것이다. 어쩌면 아내도 그녀일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성실한 가장도 아니고 살가운 제비 같은 사내도 아니고 명 짧고 돈 많은 늙은 사내도 아닌 것이다.
차라리 청수원으로 건너 올 때 다리 난간을 놓아 버린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거추장스러운 내 몸뚱이를 동해 바다로 훌훌 날려 보내는 것이, 이렇게 아내와 싸우고 술집에서 술이 취해 감상에 빠지는 것보다 나은 일이다.
아내의 상처는 봄이면 찾아오는 높새바람이 사람들의 가슴을 휘저어놓고 동해 바다로 달아나고 남은 상처보다 더 깊은 것일 것이다. 그 상처는 아마 평생을 화석처럼 아내에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헤어진 그녀의 상처는?
그 부분에서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수 밖에 없었다. 그 부분은 애써 외면해야 했다. 마치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덮어두듯이 나는 그렇게 방치 할 수 밖에 없었다.
“누나....애인 하나 사귀어 보세요.”
“애인은 뭘요.”
“이제 딸아이 다 키웠는데 적적하시잖아요.”
“적적하긴요. 지금껏 혼자 살아왔는데.....이젠 남자가 귀찮아요.”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동자도 반짝였다. 좀전의 그 전화가 진짜로 딸아이의 전화가 아니고 숨겨둔 그녀의 애인의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어디......돈 많고 명 짧은 늙은이나 찾아보세요.”
“호호호.....맞아요. 그게 낫죠. 그런데 그게 어디 그렇게 쉽나요.”
“하하하....맞네요.”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억지로 웃음을 만들면서 끝이 나고 말았다.
돌아가는 길은 도저히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술이 취했다는 핑개였지만, 역시 나는 비굴하게라도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속물이었다. 가장도 아니고 한 여자의 올바른 남편도 아니고 당당한 한 사내로서도 아닌 채로 말이다.
택시를 탈 때까지 역시 그녀는 문을 빼꼼이 열고 나를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택시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 소리는 마치 짐승이 울부짓는 소리처럼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