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옹호 직무 삭제, 서비스업 보조 직무 신설
중증장애인 일자리인데 중증장애인은 하기 어려운 일
장애인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망 선고 후 분향소 설치
우정규 전권협 활동가가 앉아 있다. 그의 뒤로 “우리를 해고하지 마세요”, “내년에도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피켓들이 늘어져 있다. 제일 왼쪽에는 국화꽃이 있다. 사진 하민지
“서울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지속가능한 일자리 보장, 내년에도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피켓 아래로 국화꽃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서울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사망했다. 향년 3세. 사인은 오세훈 서울시장, 국민의힘의 하태경·이종성 의원과 김종길 서울시의원의 ‘장애인 탄압’인 것으로 드러났다.
고(故)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분향소는 12일 오후 2시, 서울시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 마련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종로구청 공무원과 경찰병력 수백 명이 분향소 설치를 저지했다. 폭력진압 때문에 조문객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서울형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영정 위로 오세훈 시장의 눈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오후 6시가 다 되어서야 분향소는 공원 한쪽에 마련됐다. 종로구청 공무원은 분향소를 지키는 상주와 조문객들에게 “무단으로 설치한 것이니 철거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한 후 거듭 철거를 시도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망을 애도하는 이들은 분향소를 끝까지 지켜냈다.
이번 사망 사건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서울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은 정작 분향소에 올 수 없었다. 조문한 것이 알려질 경우 ‘집회’, ‘캠페인’ 등에 참여한 것으로 간주돼 서울시가 일자리에서 해고하기 때문이다.
기자회견 현장에 장애인운동 활동가들과 기자들이 와 있다. 사진 하민지
- 최중증장애인 맞춤형 일자리에서 권익옹호 직무 결국 삭제
하태경 의원 등 국민의힘 인사들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를 탄압하면서 서울시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권익옹호 직무가 삭제됐다. 서울시가 2020년 7월에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정책을 시행하고 3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말, 서울시가 발표한 ‘2023년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안내’에 따르면 기존 △장애인 권익옹호 △문화예술 △장애인 인식개선 등 세 가지 직무 중에서 권익옹호 직무는 삭제되고 문화예술과 인식개선 직무는 통합됐다.
서울시가 마련한 새 직무는 △장애친화적 환경조성(온라인콘텐츠모니터링, 장애인편의시설모니터링) △서비스업 보조(체육시설 보조, 병원·검진센터 보조, 도서관 사서 보조) △장애인 인식개선 및 문화·예술 활동(장애인 인식개선 보조 강사, 문화·예술 활동) 등이다.
서울시는 해당 문서에서 “시위, 집회, 캠페인 활동은 일자리 활동에서 제외. 집회신고 여부 불문. 선전전, 촉구·결의·투쟁대회 및 기자회견, 가두행진 등과 유사한 행위도 (직무로) 인정하지 않음”이라고 못 박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유엔협약) 홍보 관련 내용을 전부 삭제했다.
전장연은 이에 항의하며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사망했다’고 선포했다. 이날 마로니에 공원에 분향소를 차린 후 기자회견을 열고, 오세훈 시장을 향해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살려내라”라고 요구했다.
박경석 대표가 발언 중이다. 사진 하민지
- 최중증장애인 노동권 살해당했다… “같이 투쟁하자”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조문발언’을 하며 권익옹호 직무가 삭제되고 서비스업 보조 직무가 신설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 일자리는 지금도 보건복지부에서 장애인 일자리라고 만들어 놓은 일자리입니다. 최중증장애인이 그 일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으면 권리중심공공일자리가 왜 만들어졌겠습니까? 고용시장은 물론 장애인 일자리에서조차 배제된 최중증장애인이 유엔협약을 알아가고, 내 스스로 (유엔협약을) 홍보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그림 그리면서 캠페인 하는 일자리가 권리중심공공일자리입니다.
그런데 하태경 의원은 이 노동을 ‘폭력조장 불법시위’라고 했어요. 하 의원이 말 한마디 하니까 오세훈 시장이 권익옹호 직무를 삭제하면서 뒤통수를 쳤어요. 오 시장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칼로 찔러서 최중증장애인의 노동할 권리가 죽은 거예요.
이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은 유엔협약, 세계인권선언, 헌법에 나온 말 한마디도 못 해요. 이 기자회견 장소에 나타나지도 못해요. 이제 그렇게 하면 해고됩니다.”
이어 박 대표는 자신으로 인해 최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이 피해를 봤다며 눈물을 훔쳤다.
“죄송합니다. 다 나 때문입니다. 내가 지하철 타자고 해서 이렇게 됐어요. 누군가는 전장연 때문에 서울시 추가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줄었다 하더라고요. 죄송합니다. 나 때문입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부활을 기원하는 이 비참한 자리에 무거운 마음으로 모이게 한 것도 죄송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요청드립니다. 같이 투쟁합시다. 이 말씀밖에는 못 드리겠습니다. 같이 싸워서 우리의 권리를 되찾아야지 그거 말곤 방법이 없습니다. 계속 같이 싸워주실 거죠?”
피켓에 “내년에도 일하고 싶습니다”, “파리목숨 위탁기관”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우정규 전국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협회 활동가는 거듭 한숨을 쉬며 조문발언을 했다. 우 활동가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는 대부분 중년에 최중증장애인이며 살면서 최저임금이란 걸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사람들”이라며 “그런데 권익옹호 직무가 없어지면서 최중증장애인이 하기 어려운 직무로 바뀌었다. 이들의 목숨이 날아가게 생긴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라나 중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마로니에 공원이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의 노래와 춤으로 가득 찰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전했다.
이날 종로구청 공무원과 경찰병력은 분향소 설치를 막기 위해 공원 곳곳에 울타리를 설치하기도 했다. 기자회견 이후에도 약 한 시간 정도 대치가 이어졌다.
전장연은 분향소를 중심으로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권익옹호 직무 삭제에 대응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명학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이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하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