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된 새로운 길 행16:6-10
9절입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아! 길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는 아주 다른 지역입니다. 생소한 곳!
아직도 처음 전도 여행에서 겪었던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사선을 넘나들던 그 어려웠던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게도냐라니요. 그곳은 헬라 문화권의 본산지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전했던 곳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는 곳이 바로 마게도냐 지역입니다.
멀기도 훨씬 멀고요. 그런데 본문 10절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곧’그랬습니다. 즉시 순종했다는 것이지요.
힘썼다는 말은 시도했다는 말입니다. 바로 마게도냐로 갈려고 움직였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나의 삶! 나의 존재 이유가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신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말입니다.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방향 전환을 했습니다.
내가 원했던 곳과는 전혀 다르고 멀고 힘들고 어려운 곳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비두니아는 잊어버렸습니다. 미련 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게도냐로 가기 위해서 전략을 짜고 배편을 알아보고 비용을 충당합니다.
그랬을 때 헬라철학의 본산지인 마게도냐에 복음의 열풍이 불어 닥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것이
동원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시간대를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인간적인 조급함 때문입니다. 인간은 길어야 100년을 못살고 죽지만
하나님은 과거나, 현재, 미래가 함께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나의 조급함은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 불신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더디고,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계획보다 크십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신앙 인격이 성숙한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극단적인 행동도 불사하지 않는 태도는
“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불신합니다”라고 신앙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날마다 이런 갈등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데 하나님 내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려고 애쓰는데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저는 마게도냐로 못갑니다. 저는 비두니아가 더 적성에 맞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정신이 있으신 겁니까? 없으신 겁니까?
도대체 여기 투자한 시간과 에너지가 얼만데 마게도냐로 가라는 것입니까?
선 한 일에 끼어든 교묘한 인간의 욕망!!! 이것을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조급하고 무례합니다.
비인격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순종하지 못합니다.
절대로 비두니아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끝까지 내 고집과 내 생각만을 이야기 하다가 종래 다시스로 도망치는 요나처럼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우리의 계획! 우리의 욕망!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두렵고 힘들지만,
정말 마음이 무겁고 어렵지만 마게도냐로 걸음을 옮겼을 때
그곳에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오직예수 오직은혜 오직믿음 오직성경 창원반림교회 양성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