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pakhanpyo.tistory.com/1688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겸손이다. 이걸 배워 나 자
신의 삶을 더 높고, 더 넓고, 더 깊게 고양시키는
것이다.그리하여 마음가짐과 몸 가짐을 스스로
관찰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데미안>> 북토
크에서 최진석 교수는 이런 식의 '자기를 향한 부단한걷기'에서 숙고(熟考)를 강조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만 한 가치가 없다'고 했다.
그럼 무엇을 숙고하라는 말인가? 그는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 이것들을 숙고하라고 했다. 작년에 읽은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에서 읽은 것인데, 매우 인상적이어서 노트에 적어 두었던 내용이다. 읽을수록 맛이 난다.
우리가 흔히 안다고 하는 것은 경험에서 나오니 사
실 아는 것은 과거에 안 것이다. 과거에 알았다고
해서 지금도 아는 건 아니다. 소설가 김연수의 설
명이 인상적이다. "지금은 '모른다'에서 '안다'로
가는 어떤 과정 속에 있을 뿐이다. 그걸 가장 잘 표
현하는 동사는 아마도 '산다(生)'가 아닐까? 산다
는 것은 경험을 통해 몰랐다가 알게 되는 과정을
뜻한다. 그런 식으로 보자면, 미래에 어울리는 동사는 '모른다'뿐이다. 정리하자면, '과거=안다', 현
재=산다', 미래-모른다'의 공식이다."
이 공식을 보면, 우리들 인생 문제의 대부분은 자
꾸만 과거 속에서 살려고 하거나, 현재에 일어나
는 일들을 모르거나, 미래를 알려고 할 때 일어난
다. 그 중에서도 문제의 근원은 자신이 지금이나
미래의 일들에 대해서 뭘 안다고 생각하는 일이
다. 소설가 김연수의 주장이 흥미롭다. "미래에 대
해서는 오직 모를 뿐이다. 현재 역시 모르기는 마
찬가지이지만, 적어도 살 수는 있다. 과거는 다시
살 수 없는 대신에 알긴 안다. 하지만 이 안다는 건
지금이나 미래에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그러
니 우리는 지금-여기서 순간을 살아갈 뿐이다. 그
러니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니 잘 살려면,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아는 것
보다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게 더 중요하다.
문제는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모르는 것'이 제곱
으로 많아진다는 것이다. '아는 것'이 무엇이냐는
제자 안회의 물음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
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 아는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다. 지금-여기서 순
간을 살아갈 뿐이다. 살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문제는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다음과 같이 세 가
지이다.
- 과거 속에서 살려고 한다.
- 현재 일어나는 일을 잘 모른다.
· 미래를 알려고 한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그러면
서 자연과 대화를 하며, 걷는 것이 즐겁다. 나는 아
침에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어린 아이
들을 좋아한다. 문제는 다소 감각적이고, 심리적
이고, 본능적인 만족에서 나오는 것을 좋아한다.
최진석 교수는 숙고한 만족, 지적인 만족을 더 강
조했다. 나도 동의한다.
나는 전자의 만족을 즐거움이라 보고, 후자의 만
족을 기쁨이라 본다. 왜냐하면 즐거움과 기쁨은
다르기 때문이다. 즐거움이란 마음에 거슬림 없이
흐뭇하고 기쁜 느낌의 마음으로 어떤 상태라면,
기쁨은 어떤 행위의 결과로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의 즐거운 마음이나 느낌이다. 그래 이런 문장이
가능하다. 많이 가진 자의 즐거움이 적게 가진 자
의 기쁨에 못 미친다.
https://www.goeonair.com/mobile/article.html?no=18398
[김민찬의 인문학 칼럼]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말하였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자신의 모습을 하루에 한 번씩 성찰하고 반성하였다. 그리고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1)하루의 행동을 오늘 한 일이 무엇인지, 2)할 일을 빠뜨린 것은 없는지, 3)규칙에 어긋난 것은 없는지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되, 생각해 보지 않았으면 잠들지 말라.”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성찰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사람들이 강조하고 충고하는 것일까?
성찰이란 자신이 한 일, 말과 같은 자신의 행위 모든 것을 뒤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을 말한다.나는 우리 삶을 도덕적 측면에서 몇 가지 덕목으로 나눈다면 그중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이 성찰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모두 매일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잘못을 한다. 자신을 속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만을 생각하고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지 않는다. 심지어는 인식하지 못하는 잘못도 있다. 인식하지 못하는 잘못은 절대로 고칠 수 없고 계속 반복하게 된다. 이럴 때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성찰은 나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나를 아는 것은 나의 장점은 무엇이며 단점은 무엇인가,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내 삶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등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자신에 대해 충분히 알면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추구하는 가치 중에 비도덕적인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대게 그것이 성찰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자신이 한 일을 반성하고 고치는 과정 그 자체가 성찰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기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는데 여러분은 매일 일기를 쓰는가? 아마 쓰는 사람은 극히 소수일 것이다. 연필로 써도 되고 컴퓨터로 써도 된다. 매일 30분 정도만 투자하면 쓸 수 있다. 일기는 글쓰기 실력도 올려 줄뿐더러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게 되고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이다. 일기를 쓸 때 오늘의 일을 되돌아보고 잘못한 일을 반성하자. 예를 들어서 오늘 길에 쓰레기를 버렸다면 그 쓰레기 하나가 우리 삶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해 보아라. 그리고서 다음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면 진정으로 성찰한 것이다. 이러한 일을 미루지 않고 한다면 잘못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사람들이 본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는 서론에서 잠깐 언급했던 벤저민 프랭클린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정치, 과학, 외교 등 여러 분야에서 경지를 이루었다. 이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의 계획과 덕목에 대한 성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성찰에 대해서 말해보면 그는 덕목을 정해놓고 그것을 지켰는지 표를 만들어 매일 하루를 돌아보며 관리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부족한 점 잘못했던 점을 표시하고 그 표시를 줄여나감으로써 자신을 가꾸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수능 만점, 명문대 입학 등과 같은 성공을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성찰, 반성 따위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삶에서 성공하려면 반드시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하루의 행동을 오늘 한 일이 무엇인지, 할 일을 빠뜨린 것은 없는지, 규칙에 어긋난 것은 없는지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되, 생각해 보지 않았으면 잠들지 말라.” -피타고라스
https://webzine.daesoon.org/m/view.asp?webzine=224&menu_no=3811&bno=6884&page=1
숙고(熟考)와 성찰(省察)이 있는 삶
연구위원 김대현
우리의 일상은 흔히 안정된 습관의 양식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러한 양식은 우리가 생활을 영위하는 가운데 터득하거나 사회라는 공동체의 질서를 따르는 가운데 얻게 됩니다. 스스로 터득했건 공동체로부터 답습했건 삶의 양식은 하나의 습관으로 고착해 우리의 삶을 효율적으로 이끄는 틀과 구조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효율이 매너리즘을 야기한다면 인간의 삶이 기계와 다를 바 있을까요? 정해진 행위의 구조에 맞춰진 삶은 그다지 많은 숙고와 성찰을 필요치 않습니다. 숙고와 성찰의 부재는 인간을 진정한 자유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스스로 만든 틀 속에 속박된 인간의 의식이 그 틀 속에서 잠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일은 언제나 탁월함에 대해 논하고 자신과 이웃을 성찰하는 것이라네, 그리고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는 것이지.”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성찰하고 숙고하지 않는 삶은 내면의 가치가 채워지지 않은 표피적 삶의 흐름에 불과할 것입니다.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가기만 한다면 그 목적지에 이르더라도 행위의 표면적 결과만을 얻은 것이지 내적인 의미는 텅 비어 있게 됩니다. 과연 속이 비어있는 결과를 참된 열매라 할 수 있을까요?
행위의 실체는 정신적인 것으로부터 기인합니다. 내적인 동기가 자율적 의지를 유발하고 쉼과 틈이 없이 그 순간을 느끼고 감동하는 열정이 행위라는 껍질 속에 참된 알맹이를 채웁니다. 분명 수고스러운 일이지만 숙고와 성찰이 바로 시간의 매 계기 속에 의미와 열정을 채우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뜻의 숙고와 반성하고 살핀다는 뜻의 성찰, 이 두 단어로 만든 거울로 내면을 비추는 삶이라면 일상의 순간순간이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의미와 열정으로 채워져 성장한 삶은 은은한 향기와 풍요로운 양분을 머금은 참된 열매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러한 열매를 꿈꿔보는 것은 어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