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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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를 알게된 것은, 누구나 그러리라 생각됩니다만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에서 뜸금없이 등장한 외국인의 이름으로
으로였지요. 마치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에서 마주친 생뚱맞은(?)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처럼 왜 버지니아 울프를 시인이 읊조렸는지도
모른체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가 어떠했는지 역시 관심가질 틈없이
한 단원의 시는 바람에 술병이 넘어가듯 그렇게 가볍게 넘어가버려습니다.
그로 인해 처음엔 버지니아 울프가 버지니아 지역에 사는 늑댄가?라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 영화 디아우어즈(The Hours)를 통해 비로소 그녀의 삶에 대한
짤막한 인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비교적 오래전
이 책과 동명의 연극이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기억이 납니다.
페미니즘이 바야흐로 시대의 화두중 하나로 부상하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영화 올란도 역시 원작은 버지니아 울프였다는 점, 최근에사 알게 되었지요.
여전히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읽지 못한 상태에서 어느 책소갯글의 깊은
인상에 이끌려 '자기만의 방'을 먼저 펼쳐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가 1928년 케임브리지대에서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여성과 픽션'이란 주제의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고 합니다. 책에 대해 많이 회자된
이야기로 여성이 온전한 글을 쓰기위한 물질적 조건으로 자기만의 방과 연 500파운드의
돈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울프는 강조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그것만이 책의 내용과
결론의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만의 방을 한장 한장 넘기며 느끼게 되는 것은
20세기초 세계 제일의 선진국 영국에서조차 여전히 열악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버지니아 울프의 해박하고 섬세하기 그지없는 영국 및 서구 문학과 작가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평, 그녀의 상상력속에서 살아나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불꽃같은 열정을 지녔으되
결국 16세기적 상황과 제약으로 인해 미처 이를 꽃피우지도 못하고 불우한 일생을
비참하게 마감하고 마는 셰익스피어의 누이로 비유되는 수많은 영국 여성의 삶의 갈피
갈피들, 그리고 대문자 I(나)로 상징되는 남성, 남성 작가들의 보편적 우월의식의 허위성에
대한 비판과 빛나는 성찰의 여정들이었습니다.
결국 버지니아 울프는 문학의 제반 조건으로서 뿐만 아니라 여성이 진정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위한 제반 조건으로서의 물적 기반과 더불어 남녀간 또는 여남간의 구별을
뛰어넘는 인류의 평등과 평화, 화해를 위한 온전한 정신적 조건으로서의 양성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41년 버지니아 울프는 마치 제 할 일을 다한 좀머씨처럼 우즈강으로 들어갑니다.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는,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의 보이지 않지만
그의 목소리는 생생히 남아 여전히 우리의 귓전을 울립니다.
첫댓글 대학때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자기만의 방' 수업을 들었었어요. 너무 좋아서 밑줄 엄청 쳐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