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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화
짹짹... 파다닥~ 날씨 좋은 파란 하늘에 새들이 기분이 좋은 듯 활기찬 소리를 내며 무리를 지어 날아가고 있었다. 무리의 선두에 있던 녀석이 마음에 드는 나무를 발견했는지 방향을 틀어 나뭇가지에 걸쳐 앉자 뒤를 따르던 새들도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뭔가 서로에게 그렇게 할 말들이 많은지 쉴 새 없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 한 오피스텔 안... 잘 빠진 몸매의 젊은 여성이 속옷만 입은 채 침대위에서 이불을 돌돌 말고 빈둥거리고 있었다. 침대 주변에는 아무렇게나 벗어둔 옷가지들 -그러나 그렇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꽤 고급스럽게 보이는- 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유서를 공개한 이후에 오랜만에 혼자 살던 오피스텔에 왔다.
평소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며 여자의 품행은 이래야 한다는 등, 이번 모임에는 이런 옷이 잘 어울리니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등, 예절에 관한 것이라면 항상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잔소리 -특히, 식사 예절에 관해서라면 침까지 튀어 가며 열변을 토해내는- 하는 비서 -니콜이 일기장에 쓴 표현을 빌리자면 “모기 마냥 주위를 맴돌며 귀찮게 구는”-도 없고,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딸의 신변이 걱정된다며 아버지가 붙여주신 터미네이터 같은 불편한 보디가드들도 없고... 몇 주 전부터 부탁해서 겨우겨우 갖게 된 자신의 특별한 단 하루의 휴일을 침대에 누워 만끽하고 있었다. 전날 리치몬드FC 창단에 관련된 행사에서 마신 술 때문인지 오후 늦게 되서야 일어난 니콜 마리 리치몬드는 숙취 해소를 위해 뭔가 먹을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간간히 사람이 와서 청소를 해준 탓에 집은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었지만 부글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아무리 열심히 뒤져봐도 먹을 것이라고는 물 밖에 보이지 않았다. 유서를 공개 한 후에 자신은 아무것도 안해도 일이 척척 진행 될 줄 알았는데, 갑자기 구단주가 된 뒤로 자신의 취향과 성격에 맞지 않은 불편한 복장을 하고 바쁜 스케줄을 다녔던 니콜 -사실 축구팀 창단에 관한 모든 계획은 거의 니콜 자신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단, 자신이 구단주가 되는 것은 빼고...- 은 오늘만큼은 작정한 듯 트레이닝복에 운동화를 꺾어 신고 모자를 눌러쓴 채 집을 나왔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언론에 수없이 노출이 되어 팔자에도 없는 유명인사 -니콜의 미모가 언론의 관심을 더 부추겼는데 니콜 자신은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 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라면 사람들이 더 알아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마트에서 니콜이 산 물건을 계산하던 직원이 카드에 찍힌 이름을 보고 도난 카드 아니냐며 신고 한다는 것을 각종 라이센스와 사진 대조 -쌩얼과 사진을 비교하며 도저히 못 믿겠다는 눈치였지만- 를 통한 본인 인증으로 겨우 막았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다.
재미있는 경험이긴 했지만 나온 김에 나중에도 이런 때를 대비해야겠다는 짧은 생각이 본인 스스로를 곤란에 빠뜨린 것이다. 두 손에 든 짐의 양의 보니 의심받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인스턴트식품 잔뜩과 당장은 필요 없는 생활 용품까지 이것저것 미련하게 많이 사긴 샀다.
최근 축구팀 창단이 몇 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그에 관련된 미팅과 행사가 평소보다 많아졌고, 경기장 건설에 관련된 담당자들, 또는 시에서 나온 공무원들과 밤낮으로 씨름하느라 많이 지쳐 있었는데 좀 전 마트에서의 사소한 소란까지 일어났던 터라 기분을 좀 전환하고 싶어 좋은 날씨의 볕을 쬐고자 가로 지르던 공원의 벤치에 잠시 앉았다. 두 손에 든 짐의 양이 너무 많아 힘들었던 탓도 있었다. “쳇... 어떻게 갖게된 휴일인데...벌써 하루의 반 이상이 훌딱 지나가다니...”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내일부터 다시 시작할 현실에 잠시 인상을 찌푸린 채 눈을 감았다 뜨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영국의 여느 공원들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공터에는 골망이 온전하지 않은 축구골대 몇 개가 서로 짝을 이루어 마주보며 서있었다. 그 사이를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포지션도 없고 인원도 제대로 맞지 않아 보였다.
축구를 하고 있는 한 무리에서 골키퍼로 보이는 한 선수가 골대에서 멀리까지 공을 몰고 나왔다가 상대선수에게 빼앗긴 후 쉽게 실점을 당하자 골을 넣은 팀은 ‘와아~’하고 소리를 내며 우루루 몰려가 티비에서나 나올법한 세레머니를 흉내냈다. 실점을 허용한 팀원들은 골키퍼에게 달려가 욕설을 퍼부었다. 그래도 싸움은 커녕 한결같이 즐거운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공원의 가장자리 부근에는 사람들에게 그늘과 휴식을 마련해주기에는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나무들이 곳곳에 서있었고 언제든 앉아서 쉴 수 있는 잔디와 벤치가 있었다. 마침 휴일이여서 공원에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가족 단위로 잔디에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손을 잡고 다정하게 공원을 거니는 연인들도 보였다. 니콜도 공원 한쪽에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양팔을 벤치 상단에 걸치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로 얼굴을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상쾌한 바람을 만끽하고 있었다. “좋구나~” 니콜이 앉아 있는 벤치 뒤 쪽으로 자리한 언덕 위에서 아이들이 뭐가 좋은지 깔깔대며 놀고 있었는데, 니콜이 아이들을 상당히 좋아하기도 했지만 요즘 바빠서 만나지 못한 조카들이 생각나 비스듬히 돌아 앉아 두 팔을 벤치 상단에 포개어 턱을 대고 기대어 앉아 한참을 흐믓한 표정으로 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이쪽으로 던져! 하하하” “이리 줘~!” “잡아봐라~크크크~” “내놔~!” 처음엔 아이들끼리 놀이를 하고 있겠거니 생각하고 보고 있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자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니콜은 자세를 고쳐 잡고 그 상황을 자세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사내아이 넷이서 여자아이의 곰인형을 빼앗아 자기네들끼리 던지고 받으며 여자아이를 놀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자아이의 머리 위를 오가며 힘없이 춤을 추는 곰인형은 인형을 돌려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여자아이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만큼 사내아이들 사이로 힘없이 깡충 깡충 뛰어다니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다. 얼굴에 심술기가 가득한 주근깨 많은 짧은 머리의 뚱뚱한 아이가 대장처럼 보였는데, 자신에게 곰인형이 오자 잠시 던지는 것을 멈추고 여자아이 얼굴 앞으로 곰인형을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니네 오빠한테 또 일러봐” “안돼! 또 오빠를 때릴꺼잖아~” “그럼 넌 이 곰인형을 다시는 갖지 못할껄~! 크크크” 또다시 하늘을 날아다니는 곰인형이 다시는 자신의 손에 닿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이 든 여자아이는 급기야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래도 오빠를 데려오라는 사내아이들의 강요에도 자신의 힘으로 곰인형을 되찾기 위해 끈질기게 매달리며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자 니콜은 잠시 고민을 했다. “이거 곤란한걸...아이들 일에... 괜히...” 니콜이 나설까 말까 망설이고 있던 순간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여자 아이를 놀리던 뚱뚱한 아이가 잔디에 나뒹굴고 있었고 멀리서 금발의 사내아이가 그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넘어진 아이의 옆으로 공 하나가 덩그라니 굴러가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뛰어 오던 아이가 공을 던져 맞춘 듯 했다. 대장으로 보이는 아이가 뒤로 발라당 넘어지자 나머지 사내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곰 인형을 바닥에 집어 던지고 새로 온 아이를 재빠르게 둘러쌓다. 새로 온 금발의 아이가 자신을 둘러싼 사내아이들을 향해 몇 번의 주먹질 해보았지만 소리없이 허공만을 가르기만 할 뿐 소용없는 행동이었다. 기회를 엿보던 한 아이가 뒤에서 발로 차자 주먹을 휘두르던 아이는 크게 휘청이며 바닥에 넘어졌다. 처음부터 혼자서 셋을 당해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공에 맞아 넘어졌던 뚱뚱한 아이도 어느샌가 합세하여 바닥에 넘어진 아이에게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넘어져 있는 아이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머리를 감싸자 자신들의 우월함을 뽐내듯 계속해서 발길질을 해댔다. 그 모습에 옆에 서 있던 여자 아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더 크게 울었다. 갑자기 일어난 소란에 주위 사람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 주저할 이유가 없어 보이자 니콜은 장을 봐온 물건들이 벤치 한쪽에 잘 올려져 있는 것을 곁눈으로 확인하며 꺾어 신었던 운동화를 고쳐 신고 아이들에게 소리치며 뛰어갔다. “야~! 거기~ 너희들 무슨 짓이야~!?”
2화 끝 |
<여신의 그라운드> 축구만화가님의 컴백을 기다리며...
첫댓글 잘봤습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계속 봐주시고 응원해주세요~! ^^
왠지 금발의 남자가~~~~ 프랜차이즈 스타플레이어가 될듯한 느낌~~~~~이~~ 흥미진진하네요~
흥미진진하다는 말씀이 너무 감사하네요~ ^^ 어떤 선수가 등장할지 관심있게 봐주세요~!
금발의 아이가 주축선수될 삘인데요 ㅋㅋㅋ 잘 보고 갑니다~~
눈치빠르신 박씨님~! 전도 박家랍니다~! 하지만 전 LG팬이라는...ㅋ
오.. 소설이 재밌네요.
감사합니다~! 계속 쭈욱~ 읽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