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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역사바로알기 예맥족..그리고 한민족..
새로운변화 추천 4 조회 690 15.04.07 17:42 댓글 3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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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4.08 02:51

    첫댓글 제발 고조선이란 용어를 쓰지 마세요.

  • 작성자 15.04.08 05:11

    그럼 뭐라고 해야하죠? 옛조선 이렇게 해야하나요?

  • 15.04.08 11:10

    @새로운변화 그냥... 조선이라고 쓰면 됩니다. 현재의 북한은 '김씨조선'하듯이 말입니다.
    중 일연이 마약을 먹고 쓰지 않은지담에야 고조선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중 일연 이전의 중국 옛사서를 통털어도 '조선'이라고 나옵니다.

    아마도 고조선이라고 썻다면 이씨조선의 사람이 고쳤을 겁니다.
    임진란 바로 전에 흩어진 사초를 모아 재편집하는 와중에
    역적 이성계가 세운 나라가 조선이니 딜레마에 빠졌을 겁니다.
    이에 매국사학자 이병도를 비롯한 식민사학자들은 만세를 불렀을 겁니다.
    역적이 세운 지들 나라의 이름이 조선이니까...
    지들 유학의 개념을 송두리째 짓밟는 행위인 '고조선'을 제창한 것이지요.

  • 15.04.08 11:24

    @미라보 제가 중국에서 나오는 모든 사서를 뒤져보아도 고조선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고조선을 외치는 무리들도 못찾을 겁니다.
    [고조선]이라는 말은 애시당초 없었으니까요.
    일연 스님은 당시의 율에 따라 당연히 조선으로 썼을 것이고
    (중 일연이 정말 '고조선'으로 썼다면 약빨고 쓴 것이니까요.)
    아까 말한 임진란 바로 전에 재편집을 할 때 고쳤던 것이 분명합니다.

  • 15.04.08 11:57

    @미라보 고조선이란 표현을 처음 쓴 것은 일본의 사학자들입니다.
    지금 한국의 사학자들이 그 표현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쓰고 있을 뿐입니다.

  • 15.04.08 13:39

    @효준 댓글에 이의를 다는 것은 매너에 옳지못하나 참 말을 해야겠기에..
    고조선의 표현은 고려 말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서 처음나왔습니다.
    학식이 높은 스님이 지었기에 당시엔 분명 '조선'이라고 쓰였으리라 미루어 짐작을 하고
    당시 경상도 관리사인 이씨조선 사람이 재편집을 하는 와중에 '고'조선이라 쓰였던 것입니다. 현재 원본은 없기에... 갑갑합니다.

  • 작성자 15.04.08 15:10

    @미라보 음 이상하네요.. 아무리 봐도 이덕일 선생이 조선이 건국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할때를 보면..
    고려는 착취가 심각해서 백성들에게 벌써 민심을 잃었고..
    그 민심은 이성계에게 있었고.. 실제로 조선을 건국한 이는 이성계가 아닌 정도전이라고 봐야한다고 하더군요..
    정도전은 고려의 악습을 타파하고 나라를 바로 세워 만주를 다시 찾고 더 나아가 명나라와 전면전까지 생각했었다고 하던데요..
    역적이라기보다 그 당시에 힘들었던 나라 상황이 조선이 되면서 다시 살아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방원이 왕자의 난으로 강력한 왕권을 다니는데 성공했고.. 그래서 세종대왕 같은 왕이 탄생될수 있었고..

  • 작성자 15.04.08 15:11

    @미라보 세조때인가? 그때 다시 사대부들과 결탁해서 왕권을 찬탈하고 휘둘린다고 하던데요..

  • 15.04.08 16:24

    @새로운변화 그당시 고려가 부패한 것은 맞으나 정권교체의 명분을 갖기에는 불충분했습니다.
    당시 고려의 최영장군이 죽었을 때 저잣거리의 상인들이 달포여 철시를 했을 정도로 고려는 명분을 잃지 않았죠.
    그 정권을 무너뜨린 이씨조선이야말로 1대역적 기자조선 2대역적 이성계 3대역적 박정희 4대역적 전두환 5대역적 노태우 순으로 2대역적에 속한다고 봐야겠습니다.
    명나라와 전면전을 한게 아니라 명의 왕에게 "나랏이름으로 동명과 조선이 있는데 어느 것으로 해야 옳으리요"하고 물을 정도인데...
    만주 회복과 명과의 무슨 전면전입니끼?
    그리고, 명의 왕이 "너희가 속한 땅은 조선의 땅이었으니 조선으로 하거라"해서 이씨조선이 탄생한 것입니다

  • 15.04.08 16:37

    @미라보 여튼간에 명의 왕 말에 따라 나랏이름을 지을 정도로
    명이라고 하면 땅에 납작 엎드려서 고개도 못드는 찌질이들이, 무슨 악습타파요 만주회복이요 명과의 전면전입니까?

  • 작성자 15.04.08 19:17

    @미라보 음 고려말 토지정책으로 인해서 백성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소수의 일가들이 나라의 모든 토지를 독식해서 백성들의 삶이 황폐해지고 불만이 많아지는것을 정도전이 바꾸고..
    그 정도전의 정치적인 성취를 하기 위해서 정도전은 이성계를 끌어들였다고 합니다..
    정도전이 고려때 유배되어서 최하층민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과 대화하면서 느낀 나라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이성계를 이용했다고 하죠..
    그래서 개인에게 그나마 토지를 인정해주는 제도가 시행되면서 삶이 나아졌다고 합니다..
    이성계가 그리고 명에게 땅에 납작 엎드렸다고요???
    그런것 자체가 일본이 주장하는 이씨조선설인데요. 님은 지금 일본 주장을 이야기 하는듯 싶네요..

  • 15.04.08 20:58

    @미라보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훨씬 이전인 <삼국유사>에 '고조선'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목록을 보면, 고조선 다음에 나오는 것이 바로 위만조선입니다. 즉, <삼국유사>에서는 위만조선 이전의 조선을 위만조선과 구분하여 고조선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는 이성계의 조선과 구분해 고대의 조선을 고조선이라 하지만, <삼국유사> 에서는 고대의 조선 중에서 위만조선 이전 시기만을 한정하여 고조선이라고 지칭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국유사> 고조선편의 내용에서는 환웅의 강림 이야기부터 시작해 단군왕검 이야기, 기자 이야기 정도까지만 언급이 됩니다.

  • 15.04.09 11:50

    @좋은사랑 이상하네요. 제가 알기로는 정도전이 기자조선을 계승하겠다는 의미로 조선이라는 나라이름을 선택한 것으로 아는데..
    실제 중국에 허락 받은 것은 사실로 알고 있고요.

  • 15.04.09 12:03

    @효준 그 이야기를 제게 왜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정도전이나 이성계가 새 나라의 국명으로 '조선' 을 취하게 되는 과정이 어떠한지는 <삼국사기> 상의 고조선 개념이 무엇이냐와 별 관련이 없습니다.

    정도전이든 이성계든 <삼국유사>의 편찬에 비하면 훨씬 나중의 인물들입니다. (<삼국유사>는 몽골간섭기 초기인 충렬왕 대(1281)에 편찬되었고, 이성계가 새 나라에 조선이라는 국호를 사용한 건 그보다 100여년 뒤(1393)입니다. 112년 정도의 시차가 나지요)

  • 15.04.08 09:05

    고대 조선

  • 15.04.08 10:13

    단재의 경우 부여족을 한민족 정통 뿌리로 보고 있죠.
    실제로 부여족(예맥족)들이 고구려와 백제를 세웠으니까요.
    백제를 세운자가 고구려는 세운 추모왕이었던가요? 하여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었지요.
    주몽이라는 드라마에보면 소서노라고 하는 여자가 주몽을 떠나는 장면들이 나오지요?
    그 사람들이 백제를 세웁니다.
    하지만 한국의 사학자들은 부여를 고구려 옆의 작은 한 나라로 폄하시키고 있습니다.

  • 15.04.08 10:52

    식민 사학자들이 옛날에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계속 주입시키는 데 전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신라의 최고 학자라고 불리는 최치원이었던가요?
    그가 무엇때문에 "고구려와 백제가 최고의 전성기 때는 100만에 이르는 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라고 말합니다.
    오래되어서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대충 고구려와 백제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한 발언을 합니다.
    자신들은 옛 조선이라는 한 나라에서 나온 나라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증거일 수도 있지요.
    부족하긴 하지만, 예전에 생각해 놓은것이 기억이 안나네요.

  • 15.04.08 10:21

    고구려와 중국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중국의 경우에는 민족이 썪이는 걸 별로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의 경우는 이상하게 중국과 민족이 썪이려고 하지 않지요.
    실제로 고구려의 최전성기였던 광개토태왕과 장수태왕 때 고구려는 충분히 중국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단지 조공만을 요구하지요.
    고구려는 자신들의 땅인 만주지역을 가장 신성한 땅으로 여겼고, 우리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별로 중국에 대한 욕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고구려의 말에 연개소문만이 중국의 땅을 도모하려고 하지만, 이미 중국인이라는 인식이 강한 사람들이라
    별로 지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 15.04.08 10:48

    북한의 경우 '고조선'을 '옛 조선' 으로
    조선을 '이씨조선' 으로 부르고 있지요. 이씨조선이라 부르면 은근 듣기 거북하지만 북한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글쓴분께서 '韓국'이라고 표현해주셨는데 잘못입니다.
    실제 '대한민국'에서 '한' 자는 순 한글입니다.
    단지 한자의 음만을 들고 왔을 뿐입니다. 정확하게 쓰면 "大한民國" 이라고 써야 합니다.

  • 15.04.08 10:49

    고구려 왕의 호칭에 대한 문제가 여러 사람들에게 말들이 많은 것 같은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고구려왕의 정확한 호칭이 무엇인지는 사학자들도 모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구려에 대한 자료가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광개토태왕비에 보면 분명히 태왕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후세의 우리들이 '황제' '태제'니 하는 표현은 쓸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실제 고구려인들이 태왕이라는 표현을 썼다면 우리들도 그 표현을 존중해 주는 것이 맞습니다.

  • 15.04.08 10:50

    하지만 어디까지나 당시에 고구려에는 자국의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자를 빌려서 '태왕' 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정확하게 어떤 식으로 썼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 15.04.08 13:47

    두음법칙을 조금 잘못 언급하셨네요. 두음 법칙은 모든 초성의 ㅇ 들이 ㅇ과 ㄹ 이 번갈아 나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초성의 원래 발음이 ㄹ 인 경우에 그것이 '어두'에 나올 경우에 ㄴ이나 ㅇ으로 전환된다는 거죠. 따라서 원래 발음이 ㄹ 이 아니라면 두음법칙을 논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1. 고려의 려(麗): 원 발음이 '려' 입니다. 따라서 이 한자가 어두에 나올 때에는 두음법칙에 의해 '여'로 변환됩니다. 즉, 麗末鮮初를 '여말선초'라고 읽게 뵙니다.
    2. 부여의 여(餘): 원 발음이 '여' 입니다. 두음법칙으로 위치에 따라 발음이 '여'로 바뀐 게 아니라는 거죠. 따라서 한자 발음만 볼 때 夫餘를 '부려' 라고 읽을 순 없습니다.

  • 15.04.08 14:08

    부리야트(Buryat)라는 말의 어원은, 물론 '부여'와 관련되는 단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현재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내용에 의하면 몽골어 또는 부리야트 어로 늑대를 뜻하는 Burte 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몽골비사>(원조비사) 등의 몽골 신화, 전설에서 보듯 몽골 유목민들은 '늑대' 를 매우 신성시했지요.

  • 15.04.08 14:56

    @좋은사랑 이런 생각도 드네요.

    餘은 먹다남은 음식을 의미하는 뜻이라 중국에서 의도적으로 좋치않은 한자로 적지 않았을지 의심이 듬니다.

    치우에서는 어리석을 치
    복희에서는 업드릴 복
    동이에서는 오랑캐 이
    식으로 적용한듯 싶습니다.

  • 작성자 15.04.08 15:22

    예 두음법칙이 초성에 들어가는 여가 려로 바뀌는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몽골어의 의미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솔롱고스가 무지개를 의미하는데 그것은 어떻게 설명해야하는데요? 무지개는 비온뒤 해뜨면 다 떠요..
    그리고 부여란 한자도 음차로 쓰인 한자이고 고구려 구이 구리 구려 고려 다 음차로 쓰여서 같은 말인데 이렇게 여러개로 지금 발음되지 않을까요?

  • 15.04.08 21:06

    @새로운변화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부여의 원 표기가 '부려' 일 수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부여라는 말이 정말로 '부려' 에서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두음법칙과 한자 餘 의 발음으로는 '려' 라는 발음을 재구성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근거를 제시하시며 '부려' 로 읽을 수 있다고 하시면야 당연히 '부려' 라는 주장도 성립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논리는 가능할 겁니다. 백제는 말기인 성왕 대에 '남부여'로 국호를 바꾸고 사비로 천도합니다. 그런데 이 사비는 '소부리'(所夫里)라고도 표기됩니다. 백제가 국호를 남쪽의 부여라는 의미로 남부여로 바꾼 걸 감안하면, 그 수도인 소부리의 '부리' 는 부여(夫餘)

  • 작성자 15.04.08 21:08

    @좋은사랑 음 제 능력으로는 힘든 부분이네요 ㅎㅎ

  • 15.04.08 21:24

    @새로운변화 와 같은 어원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당대의 백제인들에게 부여(夫餘)와 부리(夫里)가 비슷한 발음으로 느껴졌다는 말이 될 것이므로 부여는 '부려' 처럼 발음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외에도 중국측 기록에서 부여를 표기하는 예에서 발음을 비교해 볼 수도 있습니다. <사기. 화식열전> 에서 연나라를 설명하며 부여(夫餘)를 최초로 기록하고 있고, <일주서. 왕회편> 에서 나라/부족들을 언급할 때 부루(符婁)가 언급되어 있는데 확실치는 않으나 부루가 부여를 가리킬 가능성이 없진 않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책에서 부유(鳧臾)를 언급하고 있지요. 이외에도 <산해경>에 불여(不與)라는

  • 15.04.08 21:23

    @새로운변화 족명도 확실친 않으나 부여를 가리키는 것일 가능성이 없진 않습니다. 만약 불여, 부루 같은 명칭도 부여를 가리키는 것이 확실하다면, 부여의 원 발음이 '부려' 에 가까울 가능성은 높아지겠지요.

    이런 식으로 재구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 작성자 15.04.08 22:41

    @좋은사랑 근데 여기서 고구려의 끝음이랑 부여의 끝음이 여,리 혹은 제 추측처럼 려 발음이 겹치는것을 보면 뭔가 상관관계가 있을려나요?

  • 15.04.08 23:25

    @새로운변화 글쎄요. 알 수 없습니다. 양자를 연결시킬 만한 근거가 있다면 좋겠는데, 아시다시피 그 무렵의 자료는 너무 없어서 그런 논의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 15.04.09 03:47

    @좋은사랑
    이렇게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려에 사용되는 한문 麗를 후한시대 반절법 표기를 보면 郎計切로 나옵니다.

    麗을 한국 현실음으로 읽으면 려로 읽히며,
    반절법방식으로 현 한국한자음으로 읽으면 례가 됩니다. 두음법칙을 적용하면 예가 되네요.
    또 麗을 현대 중국식으로 읽으면 리가 됩니다. 일부의 사람들이 고구려를 고구리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즉 麗가 읽는 방식에 따라 려, 례, 예, 리로 읽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려(麗)와 읽는 방식에 따라 예, 례, 리의 소리로 표현 될 수 있기 때문에
    려족(예족) --> 부려(부여) --> 고구려 --> 고려관계도 성립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 15.04.09 11:58

    한 나라의 이름이 여러 가지로 나오고 있다는 말은 한자로 그 나라의 이름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확실하게 고대의 한자의 음과 지금의 한자의 음이 틀릴 확률은 상당히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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